『좋은수필』, 월간 좋은수필 2018년 3월호, 신작수필23인선 I 둔재의 허욕 - 전병삼
"흔히들 ‘좋은 사람’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는 전혀 좋은 사람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본디 타고난 글재주도 무디고 무딘데다가 성격마저 소심하고 유약한지라, 생각처럼 그렇게 제 구실을 할 만한 글 한 편을 쓸 수가 없답니다.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언젠가는 얼마만큼 마음이 내키는 놈이 불쑥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욕심을 품고, 밤낮으로 캄캄한 머리통만 이리저리 굴려 볼 수밖에요."
둔재의 허욕 / 전병삼
지난해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저와 아내, 그리고 둘째딸네 가족은 오랜만에 경복궁景福宮 나들이를 했답니다. 어린 두 외손녀들의 ‘곱다란 추억 만들기’를 위해서랄까요? 완연한 초가을 날씨 덕분에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점심때까지 마음 놓고 근정전勤政殿을 비롯한 궐내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가 있었습니다. 비록 어린 것들의 갖은 재롱에 홀려서 주마간산 격이었지만, 그래도 고유 명절에 500년 영욕榮辱의 실타래가 엉켜 있는 자취를 둘러본다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지요.
한동안 큰손녀를 앞세우고 촘촘히 들어찬 전각들과 늘어나는 국내외 관람객들을 비집어가며 이리저리 살피고 다니노라니, 왠지 자꾸만 ‘부정한 권력과 사회 부조리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하는, 무능한 소지식인의 자기 반성’을 실토했던 김수영 님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가 설핏설핏 머릿속에 맴도는 것이었습니다.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 50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 옹졸하게 욕을 하고…” 경회루 연못에 어리비친 초라하고 왜소한 저의 몰골이 공연스레 불쌍하게 여겨지더군요. 글줄을 끼적댄다면서 사회의 추악과 탈선, 불륜과 불의를 외면하고 고작 신세 한탄이나 늘어놓고, 애잔한 추억담이나 주절대고, 허풍 섞인 음풍농월에 히죽대는 꼬락서니라니….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 /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작으냐 / 정말 얼마큼 작으냐 ….”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김광규 님의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결국 저의 고개를 경회루慶會樓 연못 속에 떨구게 하더군요.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가 되어 /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 회비를 만 원씩 걷고 /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그래도 그날은 어쩔 수 없이 저는 고궁을 나와 영춘문迎春門 밖, 국립현대미술관 옆에 있는 칼국수집에서 세상 걱정 다 외면한 채로, 허기진 뱃가죽을 움켜쥐고 한참 동안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오직 뱃속을 채우기 위해서 늦점심을 아주 게걸스럽게 먹어댔구요.
바야흐로 한국문인협회에 등록된 문인들만 해도 만여 명이 훨씬 넘는다고 하네요. 다른 여러 문학 단체에 속해 있거나 독자적인 활동을 하는 이들까지 합하면 족히 2만여 명 정도의 문인들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런데 이들 작가들이 주로 다루고 주무르는 작품의 소재들은 과연 어떤 것들일까요?
한때는 ‘순수 문학’과 ‘참여 문학’의 논쟁이 치열하기도 했고, 일부 곧은 소리를 내던 문인들은 불순한 체제 저항자라는 사슬에 묶여 억울하게 영어囹圄의 몸이 되기도 했던 적이 있었지요. 그에 반하면 요즘 작가들은 너무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두드려 봅니다. 그렇다고 혼탁한 정치판이나 정치꾼들만을 꼬집고 그들과 맞서자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에 앞서서 온갖 욕망으로 뒤범벅이되어 타락할 대로 타락한 인륜과 도덕, 사회의 무질서와 혼란을 질정叱正하고 정화淨化하는 데에 문학인들이 나름대로 제법 우렁찬 목소리를 보태보자는 말씀입니다. 하기야 각종 종교 신자가 국민의 절반이 넘는데도 비리와 부정을 근절할 수 없다는 사실에 아연실색할 일이지만, 그래도 은근히 사회의 지성인임을 자부하고 싶은 작가들이 더욱 선명한 목소리를 외쳐보자는 뜻이랍니다.
창작품이 많다고, 작품집의 권수가 쌓여간다고 해서 명망 있는 작가는 아닐 겁니다. 그러므로 작가는 쌓여가는 연륜年輪에만 자족하고 안주해서는 곤란합니다. ‘향을 싼 종이에는 향기가 남고 생선을 꿴 새끼줄에는 비린내가 남는다.’고 했습니다. 글에는 자못 나름대로 독자들의 영혼을 맑게 하는 작가의 그윽한 향기가 배어 있어야 할 겁니다. 자칫 비린내, 구린내, 전내 따위가 나서는 안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글을 쓰는 이의 청결한 삶과 고결한 기품이 전제되어야 하겠지요. 아무리 문장이 유려하고 문학성이 뛰어나고 수사가 화려하더라도 담겨 있는 내용들이 너절한 미사여구의 나열이나 공허한 허장성세에 그친다면 결코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작품들이 단순히 작가의 고독한 신변 독백에 머물러서도 곤란합니다.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해서도 작가의 소임을 다했다고 할 수 없잖아요. 독자들이 추구하는 공동체적 삶의 시대정신을 대변하면서 그들의 갈증을 풀어주고 폐부를 자극해 줄 때 작품은 비로소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님도 “나는 구구한 이론을 많이 쓰기는 싫다. 다시 말하면 독자 여러분의 ‘눈으로 볼 만한 글’을 많이 쓰기는 싫다. 다만 ‘마음으로 읽을 만한 뜻’을 조금 썼으면 족한다.”[<조선 청년에게>(조선일보, 1929. 1. 1.)]고 했잖습니까.
하지만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요? 흔히들 ‘좋은 사람’만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고 하는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저는 전혀 좋은 사람이 아니거든요. 게다가 본디 타고난 글재주도 무디고 무딘데다가 성격마저 소심하고 유약한지라, 생각처럼 그렇게 제 구실을 할 만한 글 한 편을 쓸 수가 없답니다.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언젠가는 얼마만큼 마음이 내키는 놈이 불쑥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허황된 욕심을 품고, 밤낮으로 캄캄한 머리통만 이리저리 굴려 볼 수밖에요.
전병삼 님은 《지구문학》 시 등단, 《수필문학》 수필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