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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필과비평』[2018년 11월호, 통권205호 I 지상에서 길 찾기] 기준 - 최은진

신아미디어 2018. 12. 17. 10:20

아픈 ‘사람’을 만나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을 의사라고 한다는 이야기로 실습 나온 학생의사들을 처음 만난다.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지만 ‘기준’을 향해 내 자리를 움직여 모두의 모습이 조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







   기준    -    최은진


   “기준!”
   교단 위에 서 계신 선생님이 맨 앞줄 중앙의 한 학생을 “기준!” 하고 가리키면 그 학생은 오른팔을 번쩍 치켜들며 “기준!”이라고 복창을 했다. 그리고 다음 구령은 ‘좌우로 나란히’ 같은 열을 맞추라는 지시였다. 여고시절, 교련과목이 있었다. 군인처럼 제식훈련을 받았고, 부목대기와 붕대감기 같은 처치를 배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왜 배우는지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정해진 시간 안에 부목을 대고 붕대를 감느라 볼이 빨개지도록 긴장하며 열심히 손놀림을 단련했었다. 요즈음에는 이런 수업은 상상도 할 수 없게되었겠지 싶다.
   30년도 훌쩍 더 넘은 그 시절의 “기준!”이 문득 떠오른 건 최근의 세상 흐름에 내가 못 따라가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최신 유행의 힙합 가사는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히 알아듣지 못하고, 수많은 채널에서 쏟아지는 텔레비전의 뉴스들은 도무지 모두가 편파적으로만 느껴진다. 좌우로 나란히 정렬하며 오른쪽을 한 번 보고 왼쪽을 한 번 보며 내 자리를 조금씩 움직여 모두의 모습이 조화롭게 보일 수 있도록 하는 연습을 이제는 더 이상 하지 않지만, 내가 바라보고 느끼며 사는 세상에서 나는 어느 쪽을 보고 있는지 어느 쪽을 향해 내 자리를 조금씩 움직여 보아야하는지가 문득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 이름도 유명한 386세대이다. 아니, 이제는 586세대가 되었다.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에 들어갔고 이제 50대가 된 세대이다. 내가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대한민국은 ‘잘살아 보세’를 외치며 가난과 싸웠던 아버지, 어머니의 시대였고, ‘한강의 기적’을 전 세계에 알리며 눈부신 성장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의 모습 뒤에 많은 억울한 희생이 뒤따랐다는 것을 알게 된 대학생 시절에는 거리로 나가 ‘민주주의’를 외치며 뛰어다녔던 시대였다. 그 혼돈의 시절을 지나 직업에서의 정체성을 찾고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이제 다음 세대의 디딤돌을 자처하려는 이즈음, 나는 변화하는 세상의 속도보다 자신의 뜻과는 다른 모든 것을 틀린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세상이 무서워졌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을 이제 구별하고 인정할 줄 알고, 나의 감정과 의견을 존중받고 싶은 만큼 타인의 의견을 존중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마다 저마다의 사정이 있고, 저마다의 능력이 다르고, 저마다의 기대와 만족의 크기와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실패와 좌절을 통해 배웠다. 반드시 그래야만하거나 절대로 아니어야 한다는 조건들이 차츰 없어지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갈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의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가르치고, 광고와 드라마들은 그렇게 믿도록 날마다 떠들어대지만 현실에서는 갑과 을이 나누어지고, 숫자의 권력, 매체의 권력 아래 개인의 희생은 묵과되는 시대에 살게 된 것 같은 위기의식을 온몸으로 느낀다면 너무 심한 표현일까?
   그저께 한로를 지나면서 갑자기 차가워진 밤공기가 깊어가는 가을을 느끼게 한다. 111년 만의 최고의 삼복더위라고 난리를 피우던 여름이 지나고 올겨울은 또 가장 추운 겨울이 될 거라고들 한다. 이런 혹서나 혹한뿐만 아니라 10월의 태풍이 더 강력하게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에 무섭도록 달려와 할퀴고 지나는 것이 우리가 조금 더 편해 보자고 망가뜨린 지구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변화라고 한다. 알게 모르게 참 많은 잘못을 저지르며 살아온 것 같아 다음 세대에게 미안함마저 느껴진다.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하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는 게 전부가 아닌 세상살이에서 다시 ‘기준!’의 오른팔을 든 친구를 쳐다보며 내 자리를 다듬어 서고 싶다. 교단 위 선생님이 정하셨던 기준은 때에 따라 달라지기도 했다. 운동장 가득 모두를 펼쳐 체조를 하게 할 때의 기준은 가장 중앙이었고, 오른쪽 나무 그늘로 모여 쉬게 할 때의 기준은 가장자리였다. 열일곱 살 여고생의 기준이 아니라 중년의 나이가 된 나에게 기준은 어느 쪽이 되었을까? 이제 나는 안전하다고 느끼는 세상에서 살고 싶고, 열심히 일한 뒤 늙고 힘이 없어진 내가 서럽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 나만을 외치지 않고 우리를 부를 수 있는, 가진 것이 중요하기보다 함께하는 것이 의미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다시 바라볼 ‘기준!’을 위해 나는 오늘도 진료실로 들어오는 아이들의 눈을 하나하나 맞추고 이야기하고 진찰하고 웃고 하이파이브를 청한다. 아픈 ‘사람’을 만나 함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을 의사라고 한다는 이야기로 실습 나온 학생의사들을 처음 만난다.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지만 ‘기준’을 향해 내 자리를 움직여 모두의 모습이 조화롭기를 바라는 마음은 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