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월간『수필과비평』[2018년 11월호, 통권205호 I 지상에서 길 찾기] 몸 따로 마음 따로 - 박세경

신아미디어 2018. 12. 11. 15:58

딸네 가족들은 7080년대 할아버지들에게서나 가능한 돈독한 우정이란다. 나는 ‘그래서 이 세상은 살맛나고 살아있는 게 축복’이라며, 그들이 사준 햄버거로 만찬을 대신하자고 했다. 아이들이 찬성이라며 햄버거 한 개씩을 집어 들고는 “브라보, 할아버지 할머니! 브라보, 햄버거!”를 외쳤다."







   몸 따로 마음 따로    -    박세경


   흔히들 LA에서는 영어를 못 해도 전혀 불편할 게 없다는 말들을 한다. 그래도 타국인데 하면서도 용기를 내 이곳에 살고있는 남편 친구네와 약속을 잡은 것은 순전히 작은손자 덕이다.
   손자가 간판이 한글과 영어로 쓰인 한남슈퍼 앞에 우리를 내려 준 시간은 약속 시간보다 20여 분이 빨랐다. 밖은 섭씨 40도를 넘나들어 피서 겸 슈퍼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와−!” 저절로 감탄사가 나왔다. 우선 서울의 대형마트를 뺨치는 규모부터 자부심을 갖게 했다.
   정면에 전시된 삼성과 LG TV 광고가 현란하고 각종 전자 제품들이 산더미처럼 진열되어 있다. 입구 왼편에는 떡과 김밥, 떡볶이, 순대가 깔끔하게 포장되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각종 인삼 제품들을 필두로 국내외 상품들이 없는 게 없고 한글과 영문으로 표기되어 있어 쇼핑에 전혀 불편이 없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 1988년 처음 시작해 지금은 7−8개의 체인점을 가지고 있는 한남체인은 교민들에게는 물론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단다. 넓은 주차장을 중심으로 ㄷ자형의 상가 가운데 위치하고 주변에는 한국의 은행·식당·약국·찜질방까지 한글 간판을 달고 성업 중이라 특히 교민들의 출입이 빈번하다.
   마트 구경을 하는 사이에 시간이 꽤 지난 것 같아 입구로 나오니 제네시스 한 대가 지나간다. 혹시나 했더니 저편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나오는 이들이 바로 남편 친구 내외다.
   남편들끼리 초등학교 동창인 이들 부부는 퇴직 후 미국으로 이민을 와 LA 근교에 자리 잡았다. 한창때는 등산, 골프 모임이 빈번했고 다달이 부부동반 모임도 가졌던 터라 오랜만의 해후였지만 어색하지 않고 그저 반가웠다. 곧 자리를 옮겨 한국에서보다 더 맛깔스런 불갈비냉면을 먹고 드라이브에 나섰다.
   그들은 먼저 우리가 묵을 호텔을 확인한 후, 부근의 명소를 찾아 일일이 설명을 해주고 가장 높다는 곳에 올라가서 커피를 마시며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부인 말에 의하면 그의 남편은 지난해 심장박동기를 세 번째 갈아끼우고부터는 귀도 눈도 어둡고 기억력도 많이 감퇴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은 봉사나 취미활동 등을 모두 접고 교회와 동네 모임, 그리고 가끔 교포들과 어울리는 정도라고 한다.
   한국에서의 그 친구는 활달하고 적극적인 성격이라 늘 앞장서서 모임을 주선하고 주머니도 선선히 열어 어디를 가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마음과는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는 것 같다. 저녁까지 함께하겠다는 남편들과는 달리 그 부인과 나는 해가 지기 전에 작별을 하기로 했다. 헤어지기 전, 그들은 그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즉석 햄버거집을 찾아 잔뜩 사 주고 돌아갔다. 그들을 보내고 돌아서는 마음이 착잡했다. 우리가 점심을 먹은 식당에서 불과 10분 미만 거리인 호텔을 찾는 데 30여 분, 햄버거집을 찾는 데도 같은 길을 여러 번 오간 사실이 생각나서다.
   그들과 헤어져 방에 들어서는 순간 내 재킷이 생각났다. 어디에 두고 왔을까? 분명 차에서 내릴 때는 확인을 했으니 야외 어느 벤치 아니면 커피숍에 두고 왔을 것 같았다. 급히 영수증을 찾아 전화번호를 눌러 짧은 영어실력으로 거두절미하고 “Excuse me. my pink lace jacket…”라고 하자, 다듣지 않고도 “ok, Here you go.” 한다. 얼마나 반갑던지 “thank you very much!”가 터져 나왔다.
   마침 작은손자가 저녁을 함께하려고 여자 친구와 오는 중이라고 해서 영수증을 사진 찍어 보냈더니 잠시 후 그들 손에 내 핑크색 레이스 재킷이 온전하게 들려 왔다.
   우리 또래는 이제 한창때의 패기나 열정은 사라지고 매사에 불량 형광등처럼 껌뻑거린다. 그래도 이렇게 편리한 세상에 산다는 게 즐겁다.
   저녁만찬 자리에서 노인들의 반나절 만남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는 아이들에게 우리들이 가 본 곳을 기억나는 대로 말하고 남편 친구가 겪은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는 독실한 불교 집안의 독자였지만 이민 직후 뒤늦게 딸 내외의 전도로 기독교에 입문했다. 신앙심이 생기면서 자발적으로 주로 한국인들이 많이 모이는 마트 부근에 나와 틈틈이 전도지를 돌렸다. 마침 한국에서 단체 외국관광이 성하던 때라서 종종 친구나 지인들을 만나곤 했는데, 어느 날 한국에 있는 친구가 그에게 은행 계좌 번호를 물어왔다. 이유인즉 “네가 미국 가서 얼마나 어려우면 길에서 광고지를 돌리겠느냐.”면서 몇몇 친구들이 모금을 했는데 꽤 많이 모여서 보내려 한다는 것이었다. 순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고국에 있는 친구들이, 그것도 퇴직해 모두가 백수인 처지인데 그 마음이 너무도 고마워 눈물이 났다는 이야기였다.
   딸네 가족들은 7080년대 할아버지들에게서나 가능한 돈독한 우정이란다. 나는 ‘그래서 이 세상은 살맛나고 살아있는 게 축복’이라며, 그들이 사준 햄버거로 만찬을 대신하자고 했다. 아이들이 찬성이라며 햄버거 한 개씩을 집어 들고는 “브라보, 할아버지 할머니! 브라보, 햄버거!”를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