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인간과 문학/인간과 문학 수상자

[인간과문학 2018년 봄호, 신인추천 / 시부문 당선작] 헛것을 보다 - 김병무

신아미디어 2018. 12. 11. 10:54

본지는 신인상 공모와는 별개로 신인 추천제를 시행합니다. 지난 날 우리 문단은 도제식 창작교육과 문예지 추천을 통해 역량 있고 참신한 문인들을 배출해왔습니다. 다년간 존경받는 스승 밑에서 시인·작가의식과 창작방법론을 수련하여 진정한 시인·작가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합니다.



헛것을 보다    -   김병무


헛것이다
산과 산 넘어가다
건물과 건물 모퉁이 돌다
아무도 몰래 집안으로 숨어들었다
가구도 숨죽인 방에서
두려움에 덜컥거리는 가슴
나를 쫓아다니는 게 누구일까
내가 무엇 때문에 쫓기는 걸까
나는 왜 두려워할까
생각할 여유도 없이 순간
소리 없이 다가선 검은 그림자
소름 돋는 눈빛
음울한 웃음소리
붙잡으려 달려드는 여러 개의 손
달아나려 발버둥 쳐도
수렁에 빠진 발목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소리 지르려 해도
팔을 휘저으려 해도
마음 깊은 곳에서만 몸부림치며
벗어나야 하는데
달아나야 하는데
헛것이다





신인추천 / 수상소감


  쓸쓸하고 건조한 삶이 새롭게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으면

 

   마음에 위로와 감동을 주는 시가 좋아서 시 공부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배우면서 저는 문학이 안개와 구름에 가린 높은 산이라는 것과, 그 산을 오르려고 몸을 구부렸다 폈다 하며 무지한 배밀이를 계속하고 있는 한 마리 작은 애벌레라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저를《인간과문학》에 추천해 주신 유한근 교수님께 머리 숙여 감사 인사를 올립니다. 그리고 제가 힘을 내도록 응원해 주신 아침문학 문우님들 감사합니다. 특히 언제나 변함없이 시심을 잃지 않도록 지켜봐 주시며 격려해 주신 시인 성숙옥 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신인추천 / 심사평


   시정신과 표현구조의 전통성


   김병무의 시〈헛것을 보다〉외 4편을 관통하고 있는 모티프는 ‘헛것’과도 같은 보이지 않는 존재, 그 무엇이다.〈 헛것을 보다〉에서의 그 존재는 “검은 그림자” “음울한 웃음소리/붙잡으려 달려드는 여러 개의 손”으로 표상된 두려움의 대상이며, 리얼리티 시〈산암동 산 1번지〉에서 ‘그 무엇’은 ‘가난’과 ‘추위’을 극복해 주는 ‘희망’과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시〈늪〉에서의 그것은 “상처 입은 작은 말” “험한 말”로 비유되고 있는 언어라는 존재이며, 시〈길〉에서는 “지상과 영원 이어주는 길”이고, 시〈누치〉에서의 그것은 “경계를 떠도는 빈 배”로 표상된 ‘생명’이다.
   이러한 존재들은 인간 삶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필요하지 않은 하찮은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들에 존재 가치를 두고 있는 삶에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치명적인 존재물이다. 그 대상에 대해서 김병무 시인은 간과하지 않고 응시하며, 그것들에게 시적 생명성을 부여하려 한 점에서 일단 호감이 갔다.
   그의 시는 심플하다. 시어도 현란하지 않고 워드 워어즈가 말한 일상어로 단순화시킨다. 겉으로 드러난 그의 시의 모습은 입체적이지 않고 평면적이지만, 그 행간 속에 숨어 있는 의미 층은 입체적이다. 이 점도 그의 시를 주저하지 않고 추천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그뿐만 아니라, 시정신도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시의 표현구조도 한국전통시의 맥락을 잇고 있다는 점에서 김병무 시인을 우리 시단에 소개한다.

추천심사위원 : 유한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