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인간과 문학/인간과문학 수상작

[인간과문학] 제6회 신인작품상, 동화 부문 당선자 '김완수'님을 소개합니다.

신아미디어 2018. 12. 10. 16:15

제6회 인간과문학 신인작품상 동화 부문 당선자 '김완수'님의 동화 전문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방 안에 들어온 하늘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나앉는 내 신세가 딱했다. 게다가 가슴에 이름표 같은 것을 달고 있어야 해 부끄러웠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그동안 싫은 내색 없이 옷을 넙죽넙죽 받아 줬는데, 한겨울에 말도 없이 나를 이렇게 쫓아내다니. 생각해 보니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인의 방에서 함께 지낸 시간이 10년은 넘은 것 같다. 어쩌면 나는 집 안의 다른 친구들에 비해 행복했을지도 모른다. 여름엔 선풍기 덕에 시원하게 지냈고, 겨울엔 보일러 덕에 따뜻하게 지냈으니 말이다. 그래도 서운한 건 서운한 거다. 주인이 없을 땐 내가 방 안의 군기를 잡았는데, 그런 내 마음도 몰라준 주인이 원망스러웠다. 배신감에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그때 찬바람이 쌩하며 불어왔다. 주인이 그나마 가슴을 청테이프로 여며 주지 않았더라면 나는 꼼짝없이 찬바람을 쏘일 뻔했다. 청승맞게 눈물이 나왔다. 내 주위엔 키다리 전봇대 외에 아무도 없다. 외롭다고 생각한 순간 자존심도 없었는지 문득 주인이 보고 싶었다.


   오전 내내 길 한곳에 혼자 있어 머쓱하고 심심했는데, 오후에 이웃집에서 친구를 두고 갔다. 친구는 나보다도 키가 작은 탁자였다. 친구는 이마 오른쪽에 이상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탁자는 등 돌리며가는 주인을 목청껏 불러 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사람들은 우리를 한 번 버리면 다시는 쳐다보지 않아.”
   내가 타이르듯 말했다. 탁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
   “너도 버림받았나 보구나?”
   탁자가 힘없이 물었지만, 나는 인정하기 싫어서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탁자가 또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되긴? 폐기장에서 부서지고 불태워지겠지.”
   내 대답에 탁자의 얼굴이 벌게졌다.
   “뭐? 그건 안 돼! 나는 아직 쌩쌩하다고!”
   “그건 네 생각이지. 사람들은 우리가 늙고 병들면 인정사정없어.”
   탁자는 침울한 표정으로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탁자의 몸을 자세히 보니 이상했다. 탁자는 다리 하나가 불편한지 삐딱하게 서 있었다. 탁자는 내 눈길을 느끼고 반듯이 서려 하는 것 같았는데 그냥 그대로였다.
   “나는 거실에서 살았어. 함께 사는 식구들 대화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지. 근데 매일 짐을 등에 지고 있다 보니 다리에 무리가 오더라고.”
   탁자가 옛일을 떠올리는 듯 눈을 감았다. 나는 탁자의 마음을 이해했다. 나도 다리가 짧아서 그렇지 무거운 옷들을 매일 들고 서 있느라 다리가 여간 쑤시는 게 아니었다.
   “하늘을 보니 곧 눈이 올 것 같아.”
   탁자가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탁자의 말대로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었다. 나는 비가 오지 않기만을 바랐다. 비가 오면 이름표가 떼져 주인이 나를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에 촉촉한 기운을 느껴 눈을 떠 보니 눈이 내리고 있었다. 눈은 밤새 내렸는지 발목까지 쌓여 있었다. 온 세상이 눈부시게 하얬다.
   “깼구나?”
   탁자가 창백한 얼굴로 바르르 떨며 말했다. 마음이 아팠다. 눈이 그칠 때, 저만치서 아이들이 신나게 눈싸움을 했다. 나도 움직일 수 있다면 아이들 사이에 끼고 싶었다. 그때 꼬마 하나가 내 앞으로 왔다. 꼬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미리 준비한 듯 외투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분필이었다. 꼬마는 씩 웃으며 내 몸에 뭔가를 그리기 시작했다. 나는 꼬마가 흉측한 문신을 그려놓은 건 아닌지 걱정됐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볼 수 없었다. 꼬마가 그림을 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들여다봤다. 그때 꼬마를 부르는 아이들 목소리가 들렸다. 꼬마가 아이들을 힐끗 돌아보더니 내게 웃음을 보내고 뛰어갔다. 꼬마가 가자 탁자가 내 몸을 살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런데 탁자가 방긋 웃었다.
   “와, 아까 그 꼬마가 네게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아니?”
   나는 탁자가 빨리 말해 주기를 바랐다.
   “해와 구름이야. 정말 하늘 같다.”
   “정말?”
   나는 탁자가 놀리는 줄 알았다.
   “새만 있다면 더 근사한 하늘이 될 것 같아.”
   탁자가 웃음을 잃지 않고 말했다. 창피하지만 나는 사실 하늘색 옷을 입은 옷장이다. 내 마음이 들떠 있는데, 새 한 마리가 갑자기 우리 쪽으로 날아와 내 머리에 내려앉았다. 나는 깜짝 놀라 얼음이 됐다. 새가 똥을 싸놓는 것인가 해서 불안했다. 탁자도 숨을 죽이고 있었다. 새는 잠깐 발을 동동거리며 놀다가 하늘로 날아갔다. 하늘인지 확인하러 온 것 같아 뿌듯했다. 앞에 거울이 있다면 내 모습을 꼭 비춰 보고 싶었다.

  ~ 생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