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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필과비평』[2018년 10월호, 통권204호 I 지상에서 길찾기]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 오차숙

신아미디어 2018. 11. 27. 18:10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을 쫓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내면세계에 귀를 기울이라고 일침을 가하는가 하면, 좀 더 본질적인 삶의 세계로 돌아가라고 채찍질하는 느낌이 든다."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    오차숙


   달리(1904−1989)는 비합리적인 사람이다.
   괴기한 환각을 사실적으로 창조하는 능력이 남과 다르다.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대상을 한데 묶어 치밀하게 묘사하는 능력이 있다. 눈과 머리로 사물을 인식해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심안心眼으로 대상을 형상화한 사람이다. 고집이 센 야망가로 전해지고 있다. 
   간혹 정신착란으로 인해 간간이 기행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지만, 초현실주의 화가로서 20세기에 앞서가던 예술가다. 그림을 그릴 때는 전통적인 기법에서 벗어나서 다양한 기법과 형식으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곤 했다. 자기 자신을 “세상의 배꼽이다.”라고 할 만큼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달리는 남다른 상상력으로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기법을 즐겨 사용했다. 관습 거부하기, 상식 뒤집기를 통해 사물을 관찰하고, 그 대상을 집요하게 응시하며 실상을 왜곡하기도 했다. 무의식 속에서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이미지를 놓치지 않고 그 세계를 탐구하며 표출했다.
   달리는 무엇보다 잠재의식 속에서 영감을 찾은 예술가였다.
   환각상태로 자기 자신을 유도하며 꿈속의 세계를 묘사해 냈다. 그 속에서 모든 사물을 비논리적인 방식으로 변형시켜 갔다. 인식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위치에 배열하기도 했고, 그 과정에서의 부조화를 표출해 내기도 했다.
   일생 동안 정상적인 것에 익숙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도 했지만, 정상인들의 세계가 자신의 생각과 일치되지 않는 것을 의문스러워하기도 했다.
   기계적인 것, 합리적인 것, 이성적인 것, 일상적인 것에 익숙해 있는 범인凡人들과는 달리, 현실 너머에 있는 초현실, 의식 너머에 있는 무의식 세계를 보여주는 화가였다. 그런 기법을 구사한 달리는 틀에 박힌 20세기 예술의 흐름을 전복시켜 놓고 말았다. 달리보다 20세기 미술에 족적을 남긴 예술가는 흔치 않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의 상상력은 그림을 통해 이 세상을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방법을 제시해 주었기 때문이다.
   달리는 광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적응적 장애는 오히려 그에게 축복에 찬 삶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잘 훈련된 지성과 파격적인 아이디어로 장애적 기질을 당당하게 생각하며 오만할 때가 많았다.
   어린 시절만 해도 고집불통과 안하무인이고, 금기된 것들에 대한 도전으로 가득 차 있던 사람이다. 병적인 그 집착은 부모님이 그가 태어나기 전에 죽은 형과 같은 이름을 사용한 데서 생긴 트라우마다.
   학생 때도 안정감과는 거리가 멀어 문제아인 반면, 미술학교 때도 교수들의 실력을 무시한 탓에 의견 충돌이 심해 퇴학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살바도르 달리 앞에 운명을 같이할 여인이 나타났다. 달리를 남다른 예술인으로 살아가게 한 여성은 마돈나 갈라였다. 갈라는 달리의 친구 폴 엘뤼아르(1894−1952)의 아내였으나, 달리가 파리에서 개인전을 열던 중 서로가 필(feel)이 통해 동반 도주해 잠적했다 돌아왔다. 욕망에 가득 찬 갈라는 1931년 초현실주의 시인 폴 엘뤼아르와 이혼하고 달리와 결혼을 한다. 당시 달리는 열 살이나 연상인 40세 갈라를 아내로 맞이했지만, 그녀를 향해 온갖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내 어머니보다, 내 아버지보다, 피카소(1881−1973)보다, 그리고 돈보다 갈라를 더 사랑한다.”라고 고백했다.
   달리는 초현실주의 시조 앙드레 브르통(1896−1966)과의 불화로 그 그룹에서 제명당하기도 했지만, 갈라는 달리와 한 생을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됐다. 허공에서 휘돌아다니는 천재화가 달리를 지상의 천재로 만드는 데 일생을 바쳤다. 달리가 늙어가자 갈라는 젊은 남자들과 간간이 염문을 뿌리기도 했지만, 달리는 개의치 않고 갈라를 사랑하며 의지했다. ‘나의 그림은 갈라의 피로 그려진 것’이라며, 자신의 작품에 ‘갈라와 살바로드 달리’라고 서명하곤 했다.
   달리는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지만 갈라만을 사랑했다. 단테에겐 베아트리체가 있었던 것처럼, 달리에겐 마돈나 갈라가 존재했다.
   몽환적인 작품, <기억의 지속>을 보더라도 그 영혼은 자유스럽게 날아다니곤 했다. 잠재의식 속의 환영들과 꿈속의 형상들을 캔버스에 담아내며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형식적인 면에서는 구상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해도, 내용면에서는 추상성이 강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기억의 지속>은 달리가 두통을 앓는 과정에서 그린 그림이다. 그것은 무의식적 그림으로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그 그림의 배경은 달리의 고향 스페인 카탈루냐 해안으로 권태와 외로움, 황량함이 서려있다. 흐느적거리는 시계도 멈추어진 시간에 대한 은유로서 시계로서의 기능을 상실했음을 상징한다. 그 그림에는 달리가 그리고자 하는 오브제가 녹아들어가 있어 괴기성과 편집증이 있다 해도 예술로 승화되었음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더욱 작품이 높은 가격에 팔려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게 했다.
   하지만 갈라가 세상을 떠나게 되자 달리도 6년 더 병환에 시달리며 불안한 노년을 보내다가 1989년, 여든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마감했다. 
   달리의 천재성과 그 솔직함, 괴팍함과 야만성이 들리는 것 같다.
   눈앞에 보이는 현상만을 쫓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내면세계에 귀를 기울이라고 일침을 가하는가 하면, 좀 더 본질적인 삶의 세계로 돌아가라고 채찍질하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