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좋은수필/좋은수필 본문

『좋은수필』, 월간 좋은수필 2018년 2월호, 신작수필20인선 I 포인트 적립 - 강인철

신아미디어 2018. 11. 21. 14:45

"무지개 빛 추억이 꽃보다 아름다울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냐하면 추억이란 ‘가슴에 남는 마지막 연인’이니까."

 

 

 

 

 

   포인트 적립         /    강인철

 

   ‘여유와 낭만’ 가슴 설레는 말이다. 그런데 그게 꿈속에서 맴돌기만 했던 적이 있었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은 그 꿈속의 로망이라는걸 누릴 수 있어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월급날 월급봉투의 두툼한 촉감이 행복지수였던 시절이었다. 어쩌다 아이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면 들으려 하지도 않거니와 믿어주지도 않는다. 아마 상상이나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눈치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많은 게 탈인 경우를 다반사로 겪으며 산다.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버리고 차고 넘치는 자동차 홍수로 편리와 불편이라는 아이러니가 어지러이 교차한다. 격세지감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요즘은 현찰이나 수표가 오가지 않아도 인터넷이 알아서 처리해 주고 시내버스는 물론 밥값에 차 한 잔까지도 00카드 1장이면 거칠 것이 없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런 것 조차 필요 없는 세상이 올 것이라는 보도다. ‘참 좋겠다’라는 생각보다는 왠지 ‘섬뜩하다’고 여겨졌다면 ‘영락없는 할배’라 할 것 같아 씁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찰 지불이 아니면 물건값을 치르지 않은 것 같은 헛헛함을 더러 느끼곤 했는데 최근 그와 비슷한 일을 또 겪었다. 어느 날 백화점 정산코너에서 포인트적립에 대한 장황한 설명을 들었을 때다. 순간 계산이 틀렸나? 어리둥절한 내게 멤버십에 포인트를 적립하면 어찌어찌 좋을 것이라는 식의 장황한 설명을 듣곤 바쁜 사람 붙들고 쓸데 없는 이야기를 왜 저리 강조하나 ‘별꼴 다 보겠네’ 했었다. 물론 젊은 세대들은 그런 게 이미 일상이려니 여기고 있었으나 나와는 무관하다 여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캐나다에서 잠시 살아보니 그게 그런 게 아니었다. 그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카드로 살고 있었으며 언제 어디서 누구나 적립식 포인트를 허투루 외면하지 않았다. 노상 자동차를 몰고 다니며 주유소를 제집 드나들듯 하면서도 포인트라는 걸 꼬박꼬박 챙기고 있었으며 그 흔한 햄버거 한 쪽, 커피 한 잔에도 예외가 없어 처음에는 놀랍기까지 했다. 도대체 그 시시한 걸 그렇게 알뜰살뜰 모아 무얼 어쩌자는 건지 “쩨쩨하기는…” 했었다.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건 예삿일이요 그에 부응해야 함도 마땅한 일이건만 빠른 세태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때맞춰 쫓지 못한 자신을 새삼 돌아보았다. 기성세대라고 젊은이처럼 살지 말란 법은 없다. 아니 젊은이처럼 살지 않으면 뒤쳐진 퇴행 인생일 수밖에 없음이 엄연한 현실이다. 해외나 국내나 지금은 분명 카드시대다. 따라서 그것을 사용할 때마다 포인트라는 걸 생각해야 하는 것 또한 일상이 되었다. 그건 쩨쩨함이 아닌 삶의 한 방편이요, 지혜임을 뒤늦게나마 되새김해본다.
   비행기가 태평양을 건너오며 그런데 그게 그뿐만이 아니라는 걸 속삭인다. 반복되는 일상 중에 모아지는 것이 어찌 적립금이나 카드포인트만이냐고 묻는다. 하루하루가 쌓여 만들어진 추억도 그때 그때 나날이 적립시킨 자신의 귀한 삶인 걸 몰랐느냐고 채근한다. 캐나다 속담에 ‘추억이 없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라고 했다. 돌이켜 보면 물건값으로 카드를 쓰면서 얻은 포인트보다 훨씬 더 의미깊고 값진 게 추억 포인트라는 걸 그들은 예부터 은근히 암시하고 있었던 것 같다. 세월의 나이테처럼 하나 둘 쌓여가는 추억을 돌아보면 그 두께가 곧 지나온 내 삶의 그림자였음을 왜 모르느냐고 되묻는 것 같다. 내일이 오늘로 또 오늘이 어제라는 이름으로 삶의 페이지를 넘기며 지금 이 순간도 추억 포인트는 쌓여가고 있다.
   이야깃거리가 넉넉한 부자로 살 수 있도록 많은 추억 포인트를 적립해 볼 일이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 소중한 인연을 맺고 가보지 않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 신나는 경험도 챙기며 새로운 일이나 배움에 도전장을 내고 당당히 맞서 더 많은 포인트를 쌓고 싶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기쁘고 좋았던 기억들만 반추하기에도 모자란 것이 추억 공간이다. 그 삶터에 불필요하고 언짢았던 일들일랑 죄다 털어내고 내일의 기쁨이 될 수 있는 여운만을 추억 포인트에 소중히 적립해보자. 무지개 빛 추억이 꽃보다 아름다울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왜냐하면 추억이란 ‘가슴에 남는 마지막 연인’이니까.



강인철 님은 한국대표기행문학100선 작가. 기행집 『세계일주 시작이 반』, 수필집 『이름이 뭐길래』 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