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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필과비평』[2018년 09월호, 통권203호 I 사색의 창] 달 밝은 여름밤에 - 김대원

신아미디어 2018. 11. 20. 13:36

잠 못 드는 이 밤, 어느새 큰 소나무 두 그루가 호위하듯 지키고 있는 벽송사 삼층탑 앞에 환한 달빛을 받으며 정좌하고 있는 나를 떠올린다."







   달 밝은 여름밤에    -    김대원


   열대야 현상으로 잠 못 이루며 뒤척이다가 거실로 나왔다. 열린 주방의 쪽문 유리창으로 한줄기 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다가가 머리를 숙이고 내다 본 밤하늘에 둥근 달이 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엊그제가 보름이었다. 나는 그 환한 달빛에 이끌려 구부정한 자세로 한참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골목길 좌우로 늘어선 집들이 달빛을 받으며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유 한 잔을 들고 거실에 앉았다. 달빛은 식탁을 넘어 거실바닥까지 길게 따라와 앉았다. 달빛이 가슴에 닿게 자리를 옮겨 정좌靜坐했다.
   “고맙습니다, 달님. 빛으로 제 가슴을 보듬어 주셔서.” 마음으로 인사를 했다.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보면 달은 음陰이오, 해는 양陽의 기운을 나타낸다. 흔히 사람들의 체질을 태양太陽, 소양少陽, 태음太陰, 소음少陰의 사상四象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나는 소음인少陰人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글이글 타오르듯 떠오르는 태양도 싫지는 않지만, 하얀 명주明紬 같은 달빛을 더 좋아한다.
   6·25전쟁 때였다. 당시 드물게 영어회화에 능통했던 큰외삼촌이 어느날 미군 짚Jeep차를 타고 우리 집에 오셨었다. 집 앞 넓은 과수원엔 미군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다. 우리 집 대청마루 옆방을 숙소로 사용하고 있던 미군부대장과 우리는 난생처음 듣는 말이었고 당연히 알아들을 수도 없는 영어로 대화를 나누셨다. 나는 외삼촌이 얼마나 멋져 보였던지 동네 애들에게 우리 큰외삼촌이라고 으쓱거리며 자랑했던 기억이 미소 짓게 한다. 까만 중절모를 쓰고 달빛처럼 환한 흰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 머플러까지 명주로 만든 차림이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멋져 보였던지 지금도 달을 보면 그때의 외삼촌 모습이 눈에 선하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달도 기우는지 달빛이 내 가슴에서 발치 끝으로 내려앉았다. 조금 있으면 식탁을 넘어 창가에 머물다 이내 떠날 것이다. 사람 사는 것도 이와 다름없지 싶다. 초승달에서 반달을 넘어 보름달로, 다시 조금씩 모습을 바꿔 반달에서 그믐달로 변하는 것처럼. 나는 어디쯤에 와 있을까. 보름달이었던 시절은 아득하고, 보름 지난 반달의 언덕길을 넘어 이제 그믐달로 걸어 내려가고 있다. 달은 기울었다 다시 차오르지만, 인생은 한 번의 과정으로 끝이다. 하지만 슬퍼하지 말자며 스스로를 단속하며 지낸다. 생사불이生死不異라, 삶과 죽음이 다르지 않을지니, 자연의 섭리대로 순순히 따라가는 것이 평정심을 유지하는 길이지 싶다.
   집 밖의 세상은 여전히 밝은 달빛이 고울 것이다. 문득 언젠가 읽은 벽송대사碧松大師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전통적으로 불가佛家에서는 나라에 위란危亂이 일어나면 스님들은 분연히 일어나 참전하여 전공을 세웠지만, 그 공에 집착하지 않고 다시 산문으로 돌아갔다. 벽송당碧松堂도 그러하였으나, 좀 경우가 다르게 그는 승려가 되어서 참전한 것이 아니고 일반인 신분으로 전란을 평정한 후에 깨달음이 있어 불문佛門에 귀의한 것이었다. 그는 조선 성종 22년(1491) 정월에 함경도 변경에 야인이 난을 일으키자 종군하여 크게 전공을 세웠으나, 곧 느끼는 바가 있어 ‘대장부가 이 세상에 나서 마음 밭을 지키지 못하고 세사에 치달아 전공을 세워 헛된 이름에 매달리겠느냐.’ 하고, 곧 계룡산으로 들어가 삭발하였다. 대사大師의 법명은 지엄智嚴이요, 호는 야노野老이고 벽송碧松은 그의 당호이다.
   중종 3년(1508) 금강산 묘길상妙吉祥에 들어가 《대혜어록大慧語錄》을 보다가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는 화두에 의문을 품어 마침내 깨우쳤다.
   벽송 대사의 시문詩文 중에 ‘달’이 들어간 시 한 수를 읊어본다.


月皛山前後(월효산전후) 달은 산 앞뒤에 밝고
風淸海外中(풍청해외중) 바람은 바다 안팎에서 맑구나
問誰眞面目(문수진면목) 참모습을 어디에다 물으랴
更有點天鴻(갱유점천홍) 저기 하늘에 점찍는 기러기


   달은 어디에나 밝다. 어둠이 있다면 제 그림자에 제가 가린 것이다. 바다가 더 시원하다고 찾지만 바람은 어디나 같다. 내 마음이 답답하면 선풍기 바람도 싫다, 참모습이 어디 있는 것이냐. 중천에 떠 있는 기러기 한가로이 보이지 않느냐. 기러기 하늘에 떠서 한가로이 보이지만 기러기는 땅에 서있는 내가 한가로이 보일 수도 있다. 시시비비는 나에게 있는 것이다. 내 마음이 가라앉으면 우레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경남 함양에 가면 벽송사碧松寺라는 고찰이 있다. 몇 년 전에 내가 전국전통사찰기행을 다닐 때 들렀던 곳이기도 하다. 절은 오랜 세월 미인송美人松과 도인송道人松으로 불리는 두 그루의 큰 소나무가 양쪽에서 지키고 있는 삼층석탑(보물 제474호)의 양식을 볼 때 신라 말이나 고려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절을 조선 중기인 중종15년(1520)에 서산대사로 알려진 청허淸虛 휴정休靜의 스승인 벽송지엄碧松智嚴(1464~1534)대사에 의해 중창되어 벽송사라 하였다고 한다. 벽송 대사를 비롯하여 부용, 환성, 서룡 대사 등, 조선 선맥禪脈을 빛낸 8분의 조사祖師가 이곳에서 수도하여 한국 선禪과 벽송사의 인연은 각별하다고 한다. 아마 지금도 청허당晴虛堂과 안국당安國堂이라는 당호를 가진 두 선방에서는 벽송대사의 선맥을 이어 많은 스님들이 용맹정진하고 있을 것이다.
   잠 못 드는 이 밤, 어느새 큰 소나무 두 그루가 호위하듯 지키고 있는 벽송사 삼층탑 앞에 환한 달빛을 받으며 정좌하고 있는 나를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