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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필과비평』[2018년 09월호, 통권203호 I 세상마주보기] 천년의 섬에 노닐다 - 홍은자

신아미디어 2018. 11. 10. 19:20

변화의 큰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지 당당하던 한라산도 먹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뜻밖에 난민 문제로 시험대에 올려진 우리의 현실이 답답한가 보다."







   천년의 섬에 노닐다    -    홍은자


   비양도로 향했다. 갈 때마다 어선을 타고 갔었는데, 오늘은 솔박(나무를 파서 만든 바가지)만 한 작은 객선이다. 백여 미터의 비양봉이 섬 전체를 차지하고 있어 제주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2014년에 섬 전체가 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탐방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에서 마지막 화산 분출로 형성됐다는 비양도, 하늘을 이게 된 세월이 천 년을 넘었다. 전에 비양리 이장에게 들은 말인데 섬주민들은 누구나 자가용으로 어선을 한 척씩 갖고 있다 한다. 이는 생업이 바로 어업이라는 말이다. 그런 비양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태양광 발전 설비와 풍력발전기, 거기에 에너지 저장장치까지 갖추었다. 식수는 한림항에서 해저 상수도관이 연결되어 문제없다. 쉰여섯 가구가 사는 작은 섬에 있을 건 다 있는 것 같다.
   십여만 평쯤 되는 이 섬은 해안 둘레가 3.5킬로이다. 동쪽은 길 공사 중이라 어쩔 수 없이 서쪽 방향으로 향했다. 집들은 선착장 주변에만 모여 있다. 작고 나지막한 집들 가운데 보건지소와 어촌계 사무실은 이층 건물이다. 팔각정은 ‘오름 가는 길’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다. 전에 안 보이던 커피숍 간판도 보인다. 나지막한 담 울타리 위로 망을 치고 소라껍질로 장식했다. 아마도 외지인의 아이디어인 모양이다. 원래 이 섬은 인구수가 그리 많지 않은 섬이었는데 지금은 제법 늘어나 백여 명을 넘는다.
   조그만 키에 까맣고 깡마른 사람이 스쳐 지나간다. 예멘 난민인가 보다. 어업 관련 취업설명회를 통해 일선에 참여하게 된 사람이지 싶다. 난민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불쌍하기도 하지만 사건을 일으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왠지 불편한 심사다. 벌써 난민 반대 청원이 칠십만을 넘고 있다니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 것도 같다. 그러는 가운데 제주에 들어온 오백 명 이상의 예멘인들은 난민신청을 마쳤다.
   난민심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체류비용이 다 떨어져 궁지에 몰리면 무슨 사고를 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도움의 손길은 시급한데 정부의 지원은 없고, 민간에서 도움을 준다 해도 한계가 있지 않은가. 그나마 얻은 일은 결국 견디지 못해 그만두는 자들도 속출하고 있다 한다. 난민들은 육지로 나가게 해 달라 애원하고 있다. 조선시대 출륙금지령처럼 출도제한명령은 안타깝게도 이들을 꼼짝없이 섬에 가두는 장치가 되어버렸다.
   돌이켜보자. 제주 4·3 당시 일만여 명 넘는 사람들이 현해탄을 건너 일본으로 가지 않았는가. 70년이 넘도록 저들은 돌아오지 못했다. 섬을 지킨자들도 떠난 저들 못지않게 모진 세월이었다. 아직도 그 아픈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분단의 비극이 끝나지 않은, 더군다나 경제활동을 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제주도로 삽시에 난민들이 몰려들었으니 이 일을 어이하리.
   난민으로 떠난 건 아니지만 막냇동생은 미국으로 간 지 이십 년이 넘었다. 과학자로서의 인생을 살겠다고 발버둥치고 있는 상태다.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에서 황인종의 입지는 그리 호락호락해 보이지 않는데도 견뎌내는 걸 보면 기특하기도 하다. “끝까지 살아남아라, 너는 한국인이다!” 그 외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타국 땅에 발붙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짐작만 할 뿐이다.
   미국과 달리, 한국사회에서 예멘인들은 과연 어찌될까. 한 번도 이런 경우를 당해보지 않은 우리가 난민문제로 골머리를 앓게 될 줄이야.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것이 현실로 닥친 지금 우리가 끌어안을 만한 수준이 되고는 있는지, 받아들이라 말라 갈등의 골만 깊어지고 있다. 제주어를 모르는 내국인의 이주도 늘어나 문화가 뒤바뀌는 형국인데 난민에 불법체류자일지도 모를 수상한 사람들까지, 의사소통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고 있다. 배려심보다 배타심이 강한 것도 어쩌면 언어가 안 통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안타까운 현실을 생각하며 망망대해에 떠있는 섬의 해안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비양도는 섬 전체가 노천 화산박물관이다. 지질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기도 하다. 화산활동을 통해서 남겨진 결과물들이 신의 작품처럼 섬 여기저기에 자리하고 있다. 거대한 화산탄도 그렇고 일명 가스분출구라고 하는 호니토는 비양도의 명물이다. 높이 8미터의 호니토는 아이를 업고 있는 모습이라 하여 ‘애기 업은 돌’로 불린다. 아이를 원하는 사람이 이곳에서 소원을 빌면 아이가 생겨난다는 설이 있다. 또한 그 앞에서 예를 갖추어 절을 하지 않으면 액운을 만날 수 있다고도 한다. 바다에 의지해 사는 주민들의 민속적인 신앙인가 보다.
   자연은 어느 것 하나 신비스럽지 않은 것이 없다. 비양도 해안에서 자맥질하는 해녀는 태초의 신비 그 자체다. 그녀들이 잡은 보말(제주고동)로 끓인 ‘보말죽’이야말로 최고의 보양식이 아니던가. 감사할 일이다.
   변화의 큰 파도에 휩쓸리고 있는지 당당하던 한라산도 먹구름 속으로 사라졌다. 뜻밖에 난민 문제로 시험대에 올려진 우리의 현실이 답답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