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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수필』, 월간 좋은수필 2018년 1월호, 신작수필 22인선 I 닉네임 - 이윤협

신아미디어 2018. 11. 9. 15:56

"항상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눈에 띄는 들꽃을 볼 때마다 “아~아, 예쁘다.”, “정말, 색깔도 곱네.”를 연발하던 ‘모현’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솔밭을 흔들며 달려온 바닷바람이 이마 위에서 시원하게 부서진다."

 

 

 

 

 

   닉네임         /    이윤협

 

   자월도로 향하던 도보 길에 차질이 생겼다. 길잡이인 ‘토박이’가 자월도 행 배편의 출발 시각을 확인하지 않은 결과였다. 오전 9시 30분에 출발하는 배를 타려고 방아머리 선착장까지 왔는데, 오전 8시와 오후 2시 배뿐이란다. “지난번에는 분명 9시 30분에 배를 탔는데, 시간이 바뀐 모양입니다. 죄송합니다.” 하며 ‘토박이’는 얼굴을 들지 못했다. ‘토박이’의 무안함을 덜어주기 위해, 우리는 “그럴 수도 있죠, 뭐.” 하면서 자월도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각자의 표정 뒤로 감추었다.
   갑자기 틀어진 일정을 메우기 위해 ‘불허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배를 타지 않고도 갈 수 있는 영흥도 숲길로 방향을 바꾸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영흥도로 이동하고 보니 벌써 해가 중천이다. 우리는 영흥도 숲길에 들어서자마자 점심을 먹기 위해 자리를 깔았다. 나는 ‘좋은 생각’ 맞은편에 접이식 낚시 의자를 폈다. 전략적 위치 선점이다. ‘좋은 생각’은 매번 맥주와 치킨을 가지고 오는데, 차게 얼린 맥주의 시원함에 모두들 열광했다.
   조용한 성격의 ‘은수기’도 내 옆으로 와서 앉았다. 처음에 뒷모습을 보고는 부모님을 따라온 고등학생인 줄 알았는데, 서른 살의 아들이 있다고 한다. ‘은수기’랑 항상 붙어 다니던 ‘샤르’는 보이지 않는다. ‘샤르’는 산길, 들길을 가다가 마주치는 모든 생명들에게 큰소리로 인사를 하곤 했다. “와~아, 이 꽃 좀 봐. 너는 어쩜 이리 앙증맞게 생겼니?”, “어머, 얜 개구리 아냐. 넌 왜 벌써 나왔니? 춥지도 않니?” 동행한 사람들의 감탄사를 모두 대신하는 셈이다. 처음엔 좀 수선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런 풍부한 감정 표현을 즐기고 있다.


   ‘불허샘’, ‘예술처럼’, ‘알테’, 그리고 닉네임이 떠오르지 않는 또 한사람이 ‘좋은 생각’ 좌우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오늘의 깃발인 ‘토박이’까지 합류했다. 가지고 온 음식을 서로 나누고, 시원한 맥주가 한 잔씩 돌자, 분위기는 왁자하게 흐트러졌다. ‘불허샘’이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중이라고 자랑을 삼았고, 동참할 사람이 있으면 같이 갈 수 있게 자리를 주선해 보겠다고 나섰다.
   “‘불허샘’ 님은 정말 산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아니에요. 지난 달에 시어머님과 친정어머님이 동시에 많이 아프셔서 꼼짝도 못했거든요. 그래서 이달엔 죽기 살기로 다니는 거죠 뭐. 지난달에 엄청 손해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아무튼 대단하시네요. 백두대간 종주까지 하시다니.”
   작년 가을부터 나는 나 홀로 산행을 포기하고, 둘레길을 함께 걷기로 했다. 나이 들어 혼자 산에 다니는 게 위험하기도 하거니와, 우울해지는 것 같기도 해서다. 도보 여행 카페를 하나 골라서 가입을 하려고 하니 닉네임을 요구했다. 기억하기 쉽고 나름대로 의미도 있는 어휘를 찾아보려고 머리를 굴렸다. 깜찍한 형용사를 하나 골라 볼까? 아니야, 역사적 인물로 한 번 찾아보지 뭐. 의성어나 의태어는 어떨까? 하고 고민을 하다가 ‘조조’라고 쳐 넣었다.
   금세 후회가 되었다. 조조란 이름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하지만 기억하기 쉽다는 장점은 있겠다 싶어 그대로 두기로 했다. 나중에 회원들과 이야기해보니 조조할인의 조조로 인식한 사람이 많아서 의외였다. 사실 ‘조조’는 불어인 조조떼(zozotte)에서 따왔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 제일 좋아하는 것, 뭐 그런 뜻이다.
   익명성을 보장받기 위한 목적으로 탄생한 것이 닉네임이다.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온라인상의 각종 커뮤니티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분야의 동호회 카페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닉네임 사용도 보편화되기에 이르렀다.
   닉네임 사용의 또 다른 장점은 서로에 대한 편견을 어느 정도 배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로 간에 최소한의 정보만을 공유하기 때문에 선입견으로 인한 어색함이 훨씬 덜한 게 사실이다. 어느 지역 사람인지,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 나이가 몇인지 하는 것들은 굳이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만 같은 목적, 같은 취미만 가졌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닉네임에도 자기 표현이나 주장은 담겨 있다. ‘얼씨구’는 우스갯소리를 잘하고, ‘하하’나 ‘삐삐’는 성격이 활달하다. ‘상록수’는 꼿꼿하고, ‘지고’ 는 회원들을 위해 뭔가를 많이 짊어지고 다닌다. ‘커피향’이 맛있는 커피에 목을 매리라는 것과 ‘오페라’가 음악 애호가라는 것은 굳이 확인할 필요도 없으리라.
   본명을 써서 교류하게 되면 사람들 간의 만남이 좀 더 진지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깊이 엮이고 싶지도 않고, 필요한 정도로만 가볍게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모임에서는 닉네임 사용도 자연스러운 것 같다. 옛날 선비들의 호가 자부심과 긍지였다면, 오늘의 닉네임은 자신의 캐릭터나 삶의 바람을 담은 재치가 아닐까 싶다.
   오늘은 도보 길의 분위기가 많이 가라앉아 있다. 계획했던 자월도에 가지 못한 아쉬움이 커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영흥도 숲길에 대한 탄성과 환호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항상 카메라를 목에 걸고 다니면서 눈에 띄는 들꽃을 볼 때마다 “아~아, 예쁘다.”, “정말, 색깔도 곱네.”를 연발하던 ‘모현’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솔밭을 흔들며 달려온 바닷바람이 이마 위에서 시원하게 부서진다.



⁕ 이윤협님은 수필가. ≪수필문학≫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