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2018년 11월호, 제205호 신인상 수상작] 아버지의 문패 - 권경수
"고향 집에 가면 버릇처럼 문패에 먼저 시선이 간다. 문패를 찬찬히 바라보면 아버지 얼굴이 떠오른다.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얄궂다. 콧날이 시큰해 온다. 문패에 집을 맡기고 대처로 떠나 살아야 하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아버지의 문패 - 권경수
고향 집은 온통 잡초 밭이다. 홀로 계시던 친정엄마가 입원하신 후 잡초 세상이 되고 말았다. 한 해만 묵혀도 세를 불리는 개망초와 민들레, 거름기 많은 텃밭에는 게으른 농부로 낙인을 찍는 바랭이와 쇠비름까지 꽉 들어차 보기도 민망한 묵정밭이 되었다.
기둥에 걸린 문패들도 허허롭기만 하다. 아버지 함자가 멋들어지게 새겨진 한자漢子 문패가 위에 걸려 있고, 아래에는 농협에서 만들어준 내외분 성함이 나란히 적혀있는 한글 문패가 걸려있다. 함께 걸려있는 아버지의 자부심이기도 했던 ‘6·25 참전용사 권○○’이라고 새겨진 휘장도 빛이 바랜지 오래다.
본디 조부에게 물려받은 고향 집 나무 문패는 할아버지 함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런 초가집은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새마을운동 바람을 타고 기둥과 서까래는 그대로 둔 채, 한 자도 넘는 묵은 이엉을 걷어내고 얇은 함석으로 지붕이 바뀌었다. 두꺼운 이엉의 초가지붕은 뜨거운 햇살과 영하의 찬기운을 막아주었지만, 모든 걸 바로 내치는 함석지붕은 소낙비가 쏟아지면 ‘따따닥’거리는 소리로 잠을 이루지 못했고, 염천에는 바짝 달궈진 열을, 엄동설한에는 차디찬 기운을 집안으로 밀어넣었다. 우리 가족이 함석지붕에 적응해 갈 무렵 지붕은 슬레이트로 다시 바뀌었다.
연중행사로 이엉을 바꿔야 했던 번거로움도 없어지고 함석지붕처럼 시끄럽지도 않아 동네 집들 대부분 슬레이트로 지붕을 교체했다. 마을 어른들은 각자의 취향에 맞게 색을 입혔고, 아버지는 산뜻하고 고운 초록 저고리를 지붕에 입히셨다.
어느 해, 큰 물난리로 집이 침수되어 정든 집을 헐어내고 새집을 지었다. 온 가족이 매달려 몇 달의 고생 끝에 지어진 집에 아버지는 문패를 거셨다. 아버지는 문패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뿌듯해하셨고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그을음이 매달린 행주치마로 그렁그렁 고인 눈물을 훔치기도 하셨다.
강원도 영월의 산골 빈농의 아들이었던 아버지는 평범한 농부였다. 어머니와 결혼을 하며 받은 유산이라고는 초가 한 채와 작은 텃밭과 얼마간의 빚이 있었다고 한다. 유년의 우리 집은 대가족이었다. 할머니와 사촌오빠 둘도 한집에 살았다.
비록 초가집이었지만, 네 칸의 방이 있어 안방은 부모님이 아랫사랑은 장가든 큰오빠가 쓰고, 윗사랑은 할머니와 작은오빠, 우리 형제들은 좁은 윗방에서 지냈다. 방은 좁았으나 마루도 있었고 넓은 마당도 있었다. 식솔이 많다 보니 끼니때면 두 개의 두리반에 밥상이 차려지곤 했다. 어머니의 고통을 알 리 없는 철없던 시절에는 사람이 북적이는 것이 좋았고, 주전부리를 챙겨주는 할머니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이 마냥 즐거웠다.
일찍이 아버지는 근처에 집을 지어 할머니와 사촌오빠들 살림을 내주면서 물려받았던 텃밭도 함께 주셨다. 내 땅이 없던 부모님은 남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지으셨다. 그런 부모님에게는 가난을 이기는 것보다 자식들 배불리 먹이는 일이 더 중요했다. 그러자니 남보다 먼저 밭으로 나서야 했고, 어둑어둑해서야 집으로 돌아오실 수밖에 없었다.
논둑을 깎는 사각거리는 아버지의 낫질 소리는 풀벌레의 소리보다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둠이 내려앉을 때면 바소쿠리 가득 꼴을 지고 사립문으로 들어오시면, 꼴짐이 아버지 키보다 한참 높아 마치 커다란 산이 집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 같아 마음이 든든했었다.
기억 속의 아버지 신발은 늘 검정고무신이었다. 들에서 귀가해도 외양간과 닭장을 돌보고, 집 안 구석구석을 살피다가 어두워서야 피곤한 몸을 씻으며 흙 묻은 고무신도 수세미로 쓱쓱 문지를 수 있었다. 그럴 때 등을 보인 아버지의 러닝셔츠는 구멍이 숭숭 나 있었다. 검정 고무신과 구멍 난 러닝셔츠는 아리게 남아있는 기억 속의 유품인 셈이다.
집 없는 설움이 많은 사람일수록 자신의 집에 문패를 달고 싶은 욕망이 크다. 밤을 낮 삼아 지은 아버지의 집에, 당신의 함자가 새겨진 문패를 걸 때의 뿌듯함과 기쁨이 얼마나 컸을까. 아버지 돌아가시고 10여 년이 지났지만, 우리 형제 누구도 아버지의 문패를 뗄 생각을 하지 못한다. 말 없는 문패는 언젠가 집으로 돌아올 자식들을 기다리며 집을 지키고 있는 듯하다.
고향 집에 가면 버릇처럼 문패에 먼저 시선이 간다. 문패를 찬찬히 바라보면 아버지 얼굴이 떠오른다.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 얄궂다. 콧날이 시큰해 온다. 문패에 집을 맡기고 대처로 떠나 살아야 하는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권경수 ---------------------------------------------
강원도 영월 출생, 경희사이버대학 한국어문화학과 졸업, 농협은행 정년퇴임, 청주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교실 수료. 우암수필문학회 회원.
당선소감
오랜 출근생활을 마감하면서, 그동안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을 시작해 보기로 했습니다. 글쓰기를 배우는 일입니다. 하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한 수필공부는 제게는 어렵기만 했습니다. 살아가면서 보고 느낀 일들을 써내려가면 글이 될 것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던 것 같았습니다. 쓰고 싶다는 욕구만 가득했을 뿐, 재능도 인문학적 소양도 부족했나 봅니다.
수필공부를 시작한 지 두 번의 가을이 지났습니다. 내면의 진실을 드러내지 않고는 누군가에게 공감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제 삶에 다시 가을이 옵니다. 글 숲에서 행복한 웃음을 날리고 싶었던 꿈이 영글어가나 봅니다.
부족하기만 한 글을 선정해 주신 수필과비평사와,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게으름 피우지 않고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따뜻한 손길로 이끌어주신 지도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격려와 응원을 보내 주신 문우님들께도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