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월간『수필과비평』[2018년 09월호, 통권203호 I 세상마주보기] 3일간의 장마 - 이재숙

신아미디어 2018. 11. 5. 10:53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흠뻑 젖은 모습으로 울고 있었다. 고개를 앞뒤로 젖히면서 울고 있었다. 장마도 아닌데 비는 3일간이나 계속되었다."







   3일간의 장마    -    이재숙


   자갈인가? 했지만 분명 새알이었다. 닭알도 아니고 새알이 분명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최상층이다. 가장 높은, 하늘에서 가장 가까운 집이다. 그래도 새가 알을 낳거나 물어다 감춰 놓을 수는 없다. 집엔 새알을 가져다 감춰 놓을 식구도 없다. 처음엔 현실감이 없었다. 작은 베란다 쪽 유일하게 밖으로 터진 에어컨 실외기 안쪽 귀퉁이에 작은 새알이 딱 하나 있는 것이다. 슬쩍 만져보았다. 돌도 아니고 플라스틱 질감도 아니다. 딱 새알인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새가 날아 들어올 수 없는 구조여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알 주변에 지푸라기 반 줌 정도가 빙 둘러 놓여 있었다. 막 자기가 낳은 알의 구역을 표시하고 있었다. 충분히 표시가 되었다. 손을 넣어보기가 어려웠으니까.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처음 들여다보는 새둥지라니 그것도 아주 은밀히….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언제 새가 어떻게 드나들어 알을 낳을 수 있었나? 일단 훤히 내려다보이는 앞 동 지붕을 살펴보았다. 비둘기 몇 마리가 난간에 앉아있었다. 귀를 쫑긋, 그간 혹 들려왔을지도 모르는 새 울음을 생각해보았다. 뻐꾸기, 검은등뻐꾸기, 까치, 까마귀, 소쩍새, 참새… …. 없다! 새소리에 빈약한 내가 집에서 들었던 걸로 착각되는 유일한 새소리는 비둘기 소리뿐이다. 그럼 알의 주인은 앞 동 어딘가에 앉아 이곳을 살피고 있을 비둘기가 틀림없었다.
   나에게는 그때부터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집 주변의 비둘기들을 살피는 것이었다. 내 집 베란다 구석만 온통 살피고 있을 녀석을 찾는 일 말이다. 하지만 하루가 다 지나가도 알의 주인을 찾을 수 없었다. 모든 비둘기들이 여기만 바라보는 것 같았다. 또 자세히 살펴보면 그 어떤 비둘기도 내 집에는 관심이 없는 듯해 보였다. 그래도 알이 한 개 놓여 있는데 그럴 리가 있나? 나는 수시로 베란다 문을 열고 들여다보곤 하였다.
   다음날 아침 일찍 잠이 깨어 문득 알이 궁금해 베란다 문을 열었더니 푸드덕 날개 소리가 나며 순식간에 에어컨 실외기 밑으로 무언가가 휙 빠져나간다.
   얼마나 놀랐을까? 그 날개는, 무심히 문을 연 나도 혼비백산하여 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았는데…. 그랬다! 비둘기 한 마리가 알을 낳아 놓고 아무도 모르게 살살 드나들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제법 알 주변으로 마른가지와 지푸라기가 두툼해져 있었다.
   그날부터 나는 진짜 일이 생겼다. 일단 멀리 있는 딸에게 전화하고, 친구들에게도 전화하고, 나에게 이제 비둘기 알이 하나 있으며 알을 품은 비둘기가 나에게 새끼 비둘기를 보여 줄 거라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조용히 소리 나지 않게 문을 열지 않고 들여다보는 정도로 행동을 바꾸었다. 놀라지 않게 해야 알을 품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다음날 나는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알이 두 개로 늘어난 것이었다. 알이 새끼를 칠 리는 없을 것이고 그랬다면 어미가 알을 하나 더 낳았다는 이야기인데 알을 품으려는 새는 알을 하나만 낳는 게 아닐 거라는 생각이 그제야 퍼뜩 들었다. 그리고 어미 새가 조용히 몸을 살살 돌리며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그날, 밤 깊을 때, 긴 시간 동안 볼 수 있었다.
   이른 아침 딸아이의 전화는 몹시 긴장되어 있었다.
   “엄마, 아무래도 그 비둘기 알을 치워야 할 거 같아. 비둘기는 엄마처럼 좋은 주인 만나면 계속 번식하는 새야. 비듬도 엄청 떨어지고 똥도 싸고 알을 보름 이상 품고 아빠 비둘기랑 같이 번갈아가며 품어! 적어도 4마리의 식구 꼴을 보아야 하는데 그 좁은 공간에서 안 될 거 같아.”
   “뭐? 너랑 손주랑 오면 보여주려고 벼르고 있는데? 알이 두 개야, 두 개. 엄청 이뻐. 품고 있는 어미 모습은 더 이뻐.”
   “아냐. 흥분 가라앉히고 생각해봐. 지금 치워야지 새끼 생기면 정말 못없앤다! 더구나 그렇게 구석진 곳은 청소나 돌보기가 더 힘들어 차라리 집을 지어주고 기르던가, 엄마 잘 생각해 봐요.”
   긴 침묵이 시작되었다.
   ‘사랑은 끝까지’라는 두고 써먹는 나의 신조, 사랑한다면 저 비둘기가 새끼를 낳고 또 그 새끼가 새끼를 낳아 기를 동안 새끼를 품느라 지친 어미에게 먹이와 물을 제공하고, 분비물을 치우고, 놀라지 않게 실외기 위에 빨래도 널지 않고, 더워지는데 에어컨도 틀지 않고, 조용히 놀라지 않게, 티브이 소리도 낮추고 끝까지, 끝까지, 끝까지 돌볼 수 있을까? 나에게 그런 비둘기에 대한 애정, 아니 비둘기 생명에 대한 존엄심과 사랑이 있는지 묻고 또 물어보았다. 길고 긴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어 판단이 왔다. 다 만들어지지 않은 푸석한 둥지와 갓 낳은 알 두 개를 실외기 위로 고대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어미가 드나들었을 실외기 밑에는 작은 화분을 일렬로 세워 막았다. 문제는 집과 알을 어떻게 어미에게 돌려주느냐 하는 문제였다. 서로 말이 통한다면 원하는 곳에 옮겨줄 수도 있는데. 차라리 실외기 위에서 새끼를 기르겠다면, 나를 믿고 알을 품는다면, 돌봐줄 수 있겠는데, 나는 어미가 찾아오기를 믿고 기다려 보기로 했다.
   앞 동 지붕 위에 비둘기들이 죽 앉아있는데 그중 어떤 새도 날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어두워오고 깜깜한 밤이 되자 나는 더욱 난처해졌다. 두 개의 알 때문이었다.
   내가 화실로 쓰던 작업실에서 쫓겨나면서 집주인에게 소리 질렀던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다.’라는 말을 비둘기도 아는 걸까?
   ‘도시에서 살면서 집도 절도 없는 형편에 흔히 당하는 일이고 이렇게 쫓겨난 적이 한두 번도 아니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잘 먹고 잘 사시오.’ 하는걸까.
   다음날 아침 빗낱이 든다. 하루 종일 비가 왔다. 방송에서도 장마도 아닌데 이례적인 일이란다. 다음날도 종일 비가 왔다. 앞 동의 비둘기들은 어디 비를 피해 들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지붕 난간 끝에 비둘기 한 마리가 머리를 앞뒤로 흔들면서 앉아있는 게 아닌가. 낯이 익다. 지난번 후다닥 실외기 밑으로 빠져나간 그 날개가 틀림없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흠뻑 젖은 모습으로 울고 있었다. 고개를 앞뒤로 젖히면서 울고 있었다. 장마도 아닌데 비는 3일간이나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