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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필과비평』[2018년 09월호, 통권203호 I 세상마주보기] 건강의 가격 - 김재근

신아미디어 2018. 10. 31. 16:14

사람은 아파 보아야 건강의 소중함을 안다. 병원에, 요양원에 누워 있는 많은 사람들, 바깥에 걸어다니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냥 보는 게 아니다. 신선한 공기, 아름다운 자연을 맛보고 걸으면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행복이 너무 부러운 거다. 인생에 있어 건강은 가격으로 매길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가치다."







   건강의 가격    -    김재근


   오랜만에 산에 왔다 계곡의 물소리가 청량하다. 메말랐던 감정도 시원한 물소리를 내는 폭포와 함께 사라지고 싱그러운 숲속의 상쾌한 기운이 온몸을 감싼다. 까치수염도 하얀 꽃을 피우고 땅나리 등 다른 식물도 자신의 디엔에이를 퍼트리기 위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푸른 숲속에도 자연의 법칙이 있다. 갓 태어나는 생명이 있는가 하면 바람에 쓰러지고 병으로 고사한 나무들도 여기저기 눈에 보인다. 청년이던 나무들도 시간이 지나면 고목이 되고 쓰러져 자연으로 돌아가는 법칙에 예외가 없어 보인다.
   자연을 감상하면서 걸어가는데 요양원에서 어머니 혈압이 떨어지고 토한다는 연락이 왔다. 언제쯤 도착할 수 있느냐고 물어서 약 한 시간쯤 걸린다고 했다. 요양원에서 119를 불렀다. 급해서 근처에 있는 H병원으로 모신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가는 중인데 병원에서 응급 조치를 하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라고 하고서 병원에 도착했다. 혈압상승약과 알부민, 포도당 각종 약제 등을 투입하는 호스를 어머니 머리로 올라가는 목 혈관에 주사하고 산소 호흡기를 달았다. CT를 찍고 혈액 검사를 한다. 약물이 제대로 안 들어 간다고, 심장 부근 시술을 해야 한다면서 도중에 사망할 수도 있고 중환자실로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았다. 형제들과 의논한 결과 현재도 목에 주사를 꽂고 있고 다른 곳에도 여러 기계를 달고 있는데, 93세 고령의 노모에게 또 다른 시술은 고통만 안겨 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되었다. 다행히 시술을 하지 않고도 혈압이 거의 정상으로 되어 입원을 결정했다.
   동생과 아내가 왔다 가고, 2박 3일 동안 병실에서 간병을 했다. 소변 체크를 하고 기저귀를 갈고 체위 변경을 하고 병실을 지킨다. 어머니는 욕창까지 겹쳐서 두세 시간마다 체위 변경을 해야 한다. 돌려 눕힐 때마다 목에 꽂혀있는 바늘에 찔리는지 신음소리가 계속 이어져, 밤에 잠자는 5인실 병실의 다른 환자들에게 미안했다. 병원에서 환자들에게 나오는 균형 잡힌 따뜻한 식사는 빠른 쾌유를 돕는다. 하지만 남들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따뜻한 식사를 즐겁게 할 때, 어머니는 따뜻한 밥 한 그릇 잡수시지 못한다. 지난 시간인 만 8년 동안 입으로 음식을 잡수시지 못하고 조제된 환자식인 경관 유동식을 L-튜브를 통해 생명을 유지하시는 어머니다. 손가락 하나도 못 움직이며 누워만 계신 어머니, 말씀도 못 하시고 자식이 왔는지 곁에 있는지도 모르신다.
   응급실에서부터 이어진 각종 약을 넣은 비닐백 외에도 또 무엇이 필요한지 퇴원하는 아침까지 계속 검사를 한다. 퇴원하는 날 아침에 엑스레이 촬영기를 입원실에 가져와서 촬영을 하고, 핏줄도 제대로 없는 몸에 간신히 찾아서 채혈을 하니 말씀도 못하는 어머니는 몸이 대신 움찔한다. 몸으로 들어가던 주사도 오전 10시 이전에 중지시키고, 모든 기계들을 철수시키는데 오늘 아침에 한 내용은 모두 다 불필요한 과잉 진료이자 청구서 같은 느낌만 든다.
   2박 3일 입원하는 동안 직접 간병을 하고, 다시 요양원으로 모셨다. 민간 구호 차량인 129구급차량을 불러 5만 원을 지불했다. 자식이 되어 집으로 모시지 못하고 요양원으로 모신 불효를 한 것이다. 만 9년 전 처음 치매와 감염으로 36일을 입원했다. 그때도 거동을 못하고 누워 계신 상태인 어머니를 직접 간병하고, 집으로 모셨다. 퇴원 후 만 2년은 집에서 대소변 받아내면서 모셨지만, 더 이상은 힘이 들어서 요양원으로 모셨다. 이후 요양보호사 자격도 땄지만 막상 어머니를 모시지 못한 것이다. 이번이 네 번째 입원 후 요양원이다. 요양원에 계신 어머니를 뵈러 그동안 매주 두 번 정도 가는게 전부였다. 요양원에서 미처 돌보지 못한 어머니의 부서지는 손톱을 가끔 조심해서 깎고, 손발에 나타난 종기와 입술에 약을 발라 드린다. 어깨와 팔 다리를 잠시 주물러 드리지만 다리는 이제 완전히 굳어 펴지지 않는 상태다.
   어제 요양원에 가 보니 혈압도 정상이고 체온도 정상이고 욕창도 거의 다 나았다고 한다. 어머니를 보살펴 주는 간호사 요양보호사들에게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요양원에 계신 지 만 7년을 무사하게 보낸 건 이들의 노고에 다름 아니다. 자식도 싫어하는 대소변 처리 등 궂은일에도 박봉에 시달리면서, 사명감 하나로 봉사하고 있는 그분들을 또 다른 천사라 부르고 싶다.
   어머니를 퇴원시킨 안도감에 다시 찾은 산이다. 산은 온갖 생명들을 품어 안는 자애로운 치유 장소다. 아직도 계곡에는 물이 가득하다. 흘러가는 물도 아픔을 느끼는지 소리를 내면서 흘러간다. 사람은 아파 보아야 건강의 소중함을 안다. 병원에, 요양원에 누워 있는 많은 사람들, 바깥에 걸어다니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그냥 보는 게 아니다. 신선한 공기, 아름다운 자연을 맛보고 걸으면서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 행복이 너무 부러운 거다. 인생에 있어 건강은 가격으로 매길 수 없는 가장 소중한 가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