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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좋은수필 2018년 1월호, 신작수필 22인선]  가보지 못한 곳 - 강호형

신아미디어 2018. 10. 24. 14:17

"이제 새해가 밝으면 연륜 한 켜가 또 쌓여 내가 아직 도달해보지 못한 높이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거기서는 무슨 신통한 것이라도 보일지 궁금하다"

 

 

 

 

 

 가보지 못한 곳        /  강호형

 

   내 생애 여든 번째 해가 저물고 있다. 돌아보니 지난 세월이 꿈길처럼 아득하다.
   내가 지금도 떠올릴 수 있는 유년기 기억 중에는 만세 부르는 장면이 있다. 너덧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막내고모는 내가 어쩌다 밥을 잘 먹은 날이면 아주 훌륭한 일을 했다며 나를 번쩍 들어, 방구석에 놓인 앉은뱅이책상 위에 올려 세우고 만세를 부르게 했다. 병약한 체질에 식성조차 꾀까다로워 늘 밥투정을 하는 조카 놈에게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이려고 그랬을 것이다.
   책상 위에 올라서면 어른들의 정수리가 다 내려다보여 내가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고모의 선창에 따라 양팔을 번쩍 추켜올리며 “반자이!”(만세) 삼창을 목청껏 외치고 깡충 뛰어내리면 할아버지 할머니를 비롯한 온 가족이 개선장군이나 맞이하듯 함성을 치며 환호해서 식욕을 부추겼다.
   그렇게 한 살씩 나이를 먹으면서 알고 싶은 것이 많아졌다. 그 중에서도 가장 궁금한 것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봉우리들 위에 올라가면 무엇이 보일까 하는 것이었다.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많은 산봉우리들 중에 내가 처음 오른 곳은 앞동산이었다. 마을 사람들이 ‘도당께’라고 부르는 나지막한 동산 위 소나무들 한 가운데 엄청나게 큰 참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 나무에는 신기하게도 잎이 진 빈 가지에, 겨우살이라는, 까치집 같은 푸른 잎 뭉치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신비감을 더했다. 마을 어른들은 해마다 그 참나무에 금줄을 매고 제사를 지냈다. 내가 어른들을 따라 처음 올라갔던 날도 그 나무 밑에, 눈웃음치는 돼지머리와 떡시루 등이 차려진 제상 앞에 무당 옷을 입으신 순철이 할머니를 필두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나는 제사 장면보다 더 궁금한 것이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니 마을 앞 들판과 그 들판을 가로지르는 개천과 들판 끝자락을 스쳐 흐르는 강물과, 그 위에 떠가는 황포돛단배와 강 건너 산기슭에 연기를 내뿜으며 지나가는 기차까지 다 보였다. 한 쪽이 나무에 가려, 100여 호 남짓한 마을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 놀라운 신천지에 대한 감동은 아직도 내 오감 속에 살아남아 있다.
   다음으로 올라본 곳이 우리 집에서 개천을 사이에 두고 건너다보이는 절 동산이었다. 등성이 바로 밑에 절이 있어 먼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까지 불공드리러 오르내리는 산인데, 펼쳐진 시야가 앞동산과는 사뭇 달랐다. 앞동산에서 이미 본 것들은 물론 마을 전체가 한 눈에 들어올 뿐 아니라 멀리 남·북 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며 그 강 자락을 가로지른 철교까지 어우러져 꿈속에서나 보았음직한 풍경을 펼쳐 보이고 있었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일제 치하의 밀주 단속원들도 이 절 동산을 이용했다고 한다. 미리 밀주 단속 나온다는 소문을 퍼뜨리면 술 담근 집에서는 허둥지둥 나무 광이나 퇴비더미 속에 술항아리를 감추기 마련인데, 절 동산에 올라가서 그 모습을 다 보아두었다가 족집게처럼 들춰냈다는 것이다.
   이처럼 바라보는 높이를 더할수록 세상은 그만큼 더 넓었다. 나는 목마른 아이가 샘물을 찾듯 주변의 높은 봉우리들을 차례로 올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내가 이미 올라 본 동산들이 모두 발 아래 있고 끝없이 이어진 산하를 더듬어나가다 보면 시력이 모자랐다. 그러면 나는 또 보이지 않는 저 먼 곳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막연하게 가보지 못한 곳을 동경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1학년 1학기 말에 해방이 되고, 중학교 입시준비로 학교에서 합숙을 하던 6학년 때 6·25를 만났다. 피난지에서 엄마를 잃고 아버지는 부역자로 몰려 재판을 받으면서 가세가 급격히 기울었다. 중학교 진학도 못하고 농사일을 돕다가 무작정 상경해서 세파에 뛰어들었다.
   서울은 아직도 포연이 가시지 않은 폐허였다. 피난지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이 보내주는 원조물자나 미군부대식당에서 나오는 음식 찌꺼기로 꿀꿀이죽을 끓여 먹으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다. 온 국민이 그다지도 선망하던 서울조차, 지난 날 내가 산등성이에 올라서서 꿈꾸던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목이 타도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는 사막이었다. 가파르고 험준한 산이었다. 폭풍우 몰아치는 바다였다. 나는 사막을 건너고, 산속을 헤매고, 때로는 파도에 휩쓸려 허우적대기도 하면서 4.19, 5.16의 격랑까지 헤쳐와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는 세상이 변해서 그 모두가 추억이 되었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은 것은 높이 오를수록 더 먼 곳이 보이더라는 사실이다. 연륜이 쌓이는 것도 산 높이 같은 것이라면 내 나이도 이제 8000m급쯤 된 셈이니 그만큼 시야가 넓어지고 사려도 깊어져야 하련만 아직도 아둔한 시야에 갇혀 살고 있다.
   이제 새해가 밝으면 연륜 한 켜가 또 쌓여 내가 아직 도달해보지 못한 높이에 올라서게 될 것이다. 거기서는 무슨 신통한 것이라도 보일지 궁금하다.




⁕ 강호형님은 수필가. 월간 ≪문학정신≫으로 등단. 수필집 『돼지가 웃은 이야기』 등 다수. 본지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