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2018년 08월호, 통권202호 I 세상마주보기] 새총과 물고기총 - 김상환
“바로 그 앞에서 한 아이의 엄마가 새총을 함부로 쏘지 말라고 타이르고 있다. 나는 그 아이가 장차 삶의 목표를 명중시켜 만인의 별이 되기를 기원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새총과 물고기총 - 김상환
대공원에서 아이들이 새총을 가지고 놀고 있다. 요즘 새총은 ‘Y’자 모양으로 된 쇠붙이에 고무줄을 매어 만들어졌다. 여기에 돌을 끼워서 쏘는 장난감 총이다.
내가 어렸을 때는 나뭇가지에 고무줄을 매어 만들어 가지고 놀았다. 원하는 목표물은 맞히지 못하고 엉뚱하게 장독대를 깨뜨린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어른들께 꾸중을 듣기도 했다.
나는 새총보다는 대나무로 만든 고무줄총으로 물고기 잡는 일이 더 재미있었다. 물고기총은 대나무 매듭 중앙에 작은 구멍을 뚫고 굵은 철사를 끼워 만든 총이다. 그 총으로 돌 틈에 숨어 있는 고기를 향해 쏘면 고무줄의 힘으로 날카로운 철사 끝이 화살처럼 꽂혔다. 여름철이면 강물에서 불뭉탱이(꺽정이), 빠가사리(동자개)를 잡느라 해 저문 줄 몰랐다. 이와 같이 새총과 물고기총을 가지고 놀았듯이 나는 평생 두 가지의 직업을 가졌다.
첫 번째 직업은 기술도 경험도 없이 아이디어 상품을 개발하는 일이었다. 그 과정이 바로 새총을 가지고 노는 것과 흡사했다. 멈추어 있는 목표물도 맞히지 못하면서 날아다니는 새를 잡겠다고 날뛰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나뭇가지 사이로 본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시골 무지렁이가 쏘아 올린 수많은 돌멩이들을 보고, 파랑새들은 나를 비웃듯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아직 덜 익은 사격 솜씨에 행운도 따라주지 않아 비싼 탄알만 낭비했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잡힐 듯 잡히지 않은 꿈을 향해 정신없이 쏘고 또 쏘았다.
신제품을 개발하려면 상품이 출고되기까지 오랜 시일이 필요했다. 특히 전기 제품을 생산할 때는 인허가 문제와 생산시설을 갖추는 일이 가장 큰 부담이 되었다. 여기에 더하여 상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새총의 고무줄이 갑자기 툭 끊어져 버리는 것과 같은 상황까지 발생했다.
전혀 예측하지 못한 변수로 막대한 비용이, 새총으로 날려버린 돌멩이처럼 되었다. 그 결과 사업은 실패로 이어졌다.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고, 빈 새총을 들고 희망의 숲을 찾아 헤매다 그만 털썩 주저앉고 싶은 순간이 많았다.
새총은 많은 연습을 통해 명중률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살이에는 예행연습이 없다. 더욱이 공식도 정답도 없고 선택만 있으니 항상 긴장하고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
두 번째 직업은 방문판매업이었다. 신상품 개발은, 계획대로 완제품이 출고되더라도 판로를 개척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고 만다. 하지만 방문판매 사업은 현재 잘 팔리고 있는 상품을 취급하여 곧바로 이익을 창출할 수가 있었다.
세상에 혼자서 이룰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는 뜻으로 불능독성不能獨成이라는 글귀가 있다. 이 말처럼 사업이란, 남의 능력을 빌려 쓸 줄 알아야 성공한다. 그런데 돈은 빌려줘도 뛰어난 능력을 선뜻 빌려 줄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신상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기술자에게 의존했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장사는 제조업에 비해 남의 능력을 빌려 쓰기가 쉬운 편이다. 업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방문 판매업은 아이디어 상품을 개발하는 일에 비하면 대나무 총으로 물고기를 잡는 일만큼 안정적이다.
대나무 고무줄총은 탄알이 필요 없고 새총처럼 손이 흔들리지 않아 목표물을 정확히 맞힐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새총은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피나는 연습을 해야 하지만, 물고기총은 간단한 사용법만 알면 된다.
새총은 옷을 멋있게 차려입고 폼을 내며 하늘을 향해 쏜다. 반대로 물고기총은 온몸이 물에 젖은 채 후줄근한 모습으로 땅의 표면보다 더 낮은 곳을 내려다보고 쏜다. 허리까지 굽히고 사냥감을 찾아서 거친 돌밭을 맨발로 밟고 다녀야 한다. 장사꾼의 생활 모습도 이와 흡사하다. 내 몸이 곧 총이고 탄알이 되어야 하는 경우까지 있다.
평생 사업을 하면서 제조업보다 방문 판매 사업은 운이 따라 주었다. 그렇지만 남이 만들어 놓은 상품만 판매하는 것보다는 내가 직접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여 보람과 가치를 함께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계속 제조업에 도전했었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는 말이 있지만, 도전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별로 없다는 생각에 모험을 계속했다. 그러다 보니 도전은 곧 내 삶의 전부가 되었다.
새총으로 새를 잡듯 수많은 연습과 실패 끝에 뜻을 이룰 수가 있다고 생각했다. 설령 실패를 한다 할지라도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들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실패는 성공을 위한 연습이 되고 훌륭한 밑거름이 된다고 믿고, 나는 도전의 끈을 놓지 않았다.
더욱이 우리들의 삶의 가치는 사냥꾼의 포획물처럼 부富의 축적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진정한 가치를 지향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삶을, 먹고사는 데만 쓸 수는 없다고 스스로 마음을 다 잡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런저런 생각에 빠져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보니, 나는 아직도 어린이대공원 연못가에 서 있다. 누가 나를 지켜봤다면 정신 나간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나와 가까운 거리에서, 마침 청춘 남녀가 사진을 찍기 위해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어 보이고 있는데 내 눈에는 새총 모양의 ‘Y’자로 보인다.
바로 그 앞에서 한 아이의 엄마가 새총을 함부로 쏘지 말라고 타이르고 있다. 나는 그 아이가 장차 삶의 목표를 명중시켜 만인의 별이 되기를 기원하며 발길을 재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