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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8년 07월호, 통권201호 I 사색의 창] 본능의 함정 - 하병주

신아미디어 2018. 9. 27. 16:57

"나는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박수를 보낸다. 다만 엉뚱한 부작용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또한 나 자신부터 본능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나는 업무상 1주일에 하루를 예쁜 여자들 속에서 지낸다. 그러므로 언제 어느 방향에서 화살이 날아올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오해의 소지도 남기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펜스 룰(Pence Rule)도 철저히 준수할 것이다."







   본능의 함정    -    하병주


   성추행性醜行 관련 사건으로 온 세상이 시끄럽다. 검찰 지청에 근무하는 모 여검사女檢事가 상급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한 것이 기폭제가 되어 걷잡을 수 없이 연쇄폭발하고 있다. “나도 당했다.”라고 폭로하는 소위 ‘미투(Me Too)운동’이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번져나가고 있는 것이다. 흡사 말벌 집을 건드려 놓은 것만큼이나 소란스럽고 살벌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회사나 관공서 등 직장마다 행여 말벌에 쏘이기라도 할까봐 전전긍긍하고 몸을 사리며 언행을 조심하는 분위기라는 소식이다.


   한때 그 이름도 쟁쟁하던 유명 인사들이 ‘미투(Me Too)운동’에 휘말려 줄줄이 나락奈落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두 사람의 경우가 세인의 관심을 끈다. 시문학詩文學 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왔고, 노벨 문학상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80대 중반의 원로시인과 차기 대선에 유력한 대권 주자로 꼽히던 50대 초반의 현직 도지사가 날개도 없이 추락하고 말았다. 그들의 화려한 명성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지위가 높거나 유명한 사람일수록 추락에 따른 충격은 그만큼 더 크기 마련이다. 높은 나무에 오르면 떨어질 위험성이 더욱 높아지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앞에서 언급한 두 사람이 그 단순한 진리조차도 몰랐을 리 없는데 어쩌다가 그 지경이 되었는지 딱한 일이다.
   여색으로 인한 재난은 아득한 옛날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오죽하면 ‘여색 피하기를 원수 피하듯 하라.’고까지 경고했을까.−(避色如避讐−明心寶鑑 正己萹: 宋나라 洪邁의 夷堅志)
   성추행을 얘기하다 보니 유명한 고사故事 한 토막이 생각난다. 바로 절영지연絶纓之宴에 대한 이야기다. 이 글의 주제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듯하지만 이 또한 성추행에 대한 것이고 내용이 아주 재미가 있다.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 장왕(楚莊王: 재위 B.C. 613−591)이 신하들 100여명과 야외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을 때 갑자기 바람이 불어 촛불이 모두 꺼져버렸다. 그때 장왕의 애첩 허희가 소리쳤다. 어떤 사람이 자기를 끌어당겨 몸을 만지고 희롱하여 그자의 갓끈을 끊어버렸으니 빨리 불을 밝혀 갓끈 끊어진 자를 잡아서 처벌해 달라고 왕에게 하소연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장왕이 명을 내렸다.
   “경들은 모두 갓끈을 끊도록 하라, 갓끈이 끊어지지 않은 자는 오늘 마음껏 즐기지 않은 자이니라.”
   불을 밝히고 보니 모두 갓끈이 끊어져 있어 허희를 성추행한 범인을 알 수가 없었고 연회는 계속되었다.
   그 후 초楚나라가 진晉나라와의 전쟁에서 불리하여 장왕의 생명이 아주 위급한 처지에 놓였을 때 어떤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뛰어들어 장왕을 구해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사람은 바로 연회에서 왕의 애첩을 성추행한 인물이었다고 한다.
   이 고사를 소개한 이유는 성추행을 용인하고 합리화 시켜도 좋다는 취지가 아니다. 애첩 하나 때문에 신하를 처벌하는 우를 범하지 않은 장왕의 넓은 도량과 지혜를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장왕은 제환공齊桓公, 진문공晉文公에 이어 춘추오패春秋五覇의 반열에 오른 영특한 군주였다.
   후세 사람들은 갓끈을 끊은 연회라고 해서 이 연회를 ‘절영지연’이라고 불렀다.
   이성異性을 갈구하고 탐하는 욕구는 인간과 동물이 별로 다를 바가 없다. 이것은 본능이다. 그러나 인간이 본능대로만 산다면 우리 사회는 아수라장이요 난장판이 될 것이다. 본능을 억제하는 자제력을 가졌다는 것이 인간이 동물과 크게 다른 점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미투(Me Too) 운동에 휘말려 아찔한 벼랑에 서있는 시인, 정치인, 대학 교수, 연극계의 대부, 영화계의 유명인사, 검찰 간부, 목사 등 모두가 본능을 억제하지 못 하고 그 함정에 빠진 사람들이다. 이미 구속된 경우도 있고 계속해서 조사를 받고 있는 사람도 있다. 사법적인 처벌을 받는 것과는 별개 문제로 그들의 가정에 미칠 영향 또한 지대할 것이다. 미투 운동에 연루되자 아직 나이 젊은 유명 배우가 목숨을 버렸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또다시 모 대학 교수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참으로 안타깝고 인간적인 연민을 느낀다.
   나는 여기에서 성추행의 기준에 대하여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어느 정도까지의 신체 접촉이 성추행에 해당 되는가 하는 점이다. ‘성폭행’은 바로 강간을 의미하니 설명이 필요 없겠고, ‘성희롱’은 신체의 접촉 없이 말이나 몸짓으로 성적 수치심을 야기케 하는 경우여서 이것도 어렵지 않다. 다만 ‘성추행’의 경우가 매우 애매하다. 남자가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을 때 여자 쪽에서는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남자 쪽에서는 그저 격려 차원이었다고 강변한다. 대법원 판례를 찾아보았다.
   “사회 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관행에 비추어 볼 때, 선량한 풍속 또는 사회 질서에 위반되는 것인지 여부에 따라 결정 되어야 한다.”라고 판시하고 있다. (대법원 1998. 2. 10. 선고 95다39533)
   따라서 성추행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피해자의 주관적 판단만으로는 안 되고 객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역시 딱 부러지게 명확하지 않고 애매모호하기는 마찬가지다.
   또 한 가지 의문점은 미투 운동의 와중渦中에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거나 개인의 사생활 또는 인권 침해를 당한 피해자는 없을까 하는 점이다. 매스컴에 한번 떴다 하면 아무리 실명을 밝히지 않아도 누리꾼들의 신상 털기 대상이 되어버려 피해를 막을 길이 없다. 그래서 성추행으로 정신적 상처를 입은 피해자가 2차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마녀사냥식의 여론몰이로 사실과 다르게 와전 되거나 계획적인 모함으로 억울하게 성추행범으로 몰리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싶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그 기회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자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미투 운동은 중량급 태풍과도 같다. 태풍 앞에서는 익은 감도 떨어지고 땡감도 떨어진다.
   나는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하고 박수를 보낸다. 다만 엉뚱한 부작용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또한 나 자신부터 본능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나는 업무상 1주일에 하루를 예쁜 여자들 속에서 지낸다. 그러므로 언제 어느 방향에서 화살이 날아올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어떤 오해의 소지도 남기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하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펜스 룰(Pence Rule)1) 도 철저히 준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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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펜스 룰(Pence Rule)
    2002년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한 말.
    “아내 이외의 여자와는 절대로 단둘이 식사하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과도한 경계를 의미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