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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8년 07월호, 통권201호 I 사색의 창] 보물찾기 - 서정길

신아미디어 2018. 9. 14. 09:11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책방이 뭐하는 곳인지를 알아냈다고. 책방은 누구나 품어주는 사랑방이고 책을 사는 건 보물을 찾은 거라고.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내 귓가에 여운으로 남는다."







   보물찾기    -    서정길


   책방에 들어서면 심호흡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뭐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책에서 번져 나오는 잉크 향인지 아니면 뇌가 미리 기억해 둔 향기인지 깊은 들숨으로 감지한다. 갓 스물이던 시절, 담배 연기에서 느꼈던 묘한 이끌림이랄까.
   재빨리 자리를 잡고 책을 편다. 시선을 둘 곳이 마땅찮은 지하철에서는 목적지까지 20여 분 거리다. 수필 3편만 읽으면 목적지인 역에 다다른다. 두 편을 읽었을 때쯤이다. 작품 속 주인공이 영락없는 내 어릴 적 모습이다. 해가 저물었는데도 들일을 나간 엄마가 돌아오지 않는다. 동생들이 울먹이며 엄마를 찾았다. 엄마! 애타게 부르며 까마득하게 펼쳐진 논길을 달렸던 그 오래된 기억이 선명하다. 책 속에서 잊고 있던 나를 만난 것이다.
   책을 덮고 눈을 감는다. 파도가 밀려오듯 감동의 파고가 나를 덮친다. 눈도 손도 한순간에 정지되고 만다. 가위에 눌려 나락으로 추락하듯 신음조차 멈췄다. 목적지 역에 내려야 하는데 도무지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치고서야 간신히 내린다. 휘청거리는 몸을 겨우 가누며 지하역을 빠져나온다. 그제야 목을 조여오던 숨이 트인다. 난생처음 겪는 경험이다.
   근처 커피전문점으로 발길을 옮긴다. 중년의 남자가 홀로 들어서는 게 이상한지 빤히 쳐다본다. 망고주스와 커피를 동시에 주문하자 ‘예~에’라며 반문한다. 약간은 퉁명스런 말로 그렇다고 대답한다. 지하철에서 겪었던 황당함이 지워지지 않는다. 두렵긴 하지만 다시 책을 꺼내 뒷부분을 읽는다. 그때와는 또 다른 감흥이다. 책 속에서 만난 어머니를 다시금 떠올려 본다. 떨어진 눈물 한 방울이 활자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한참을 지나서야 어머니도 책 속으로 사라지고 만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듯하다.
   그로부터 한 통의 메시지가 왔다. 시청 뒷길 헌책방이다. 몇 해 전 고서를 구입하려던 친구를 따라 이곳에 왔다가 옻칠을 한 제기 몇 점을 헐값에 구입한 게 인연이 되어 주인 H와는 세상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도움이 될 만한 책 같아 보이니 한번 와보라는 연락을 받고 달려온 터다. 누렇게 빛이 바랜 4권의 표지에는 “포도”와 “鋪道”가 선명하다. 1965년에 창간호를 낸 이후 매년 문집을 펴냈다. ‘달성포도회’는 당시 국도 5호선을 따라 대구로 통학하던 월배(현 달서구), 화원읍, 옥포면. 논공읍역의 고교학생들이 결성한 최초의 문학단체인 셈이다. 글씨체가 조잡하긴 해도 시, 수필과 산문에서 풋풋함이 배어 나온다. 한국문인협회 D지부회장을 맡고 난 이후 소문으로만 듣던 ≪鋪道誌≫를 찾고자 몇 년에 걸쳐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결과는 신통찮았는데 뜻밖에 횡재였다. 
   가로수의 낙엽이 하나 둘 길거리에 몸을 뉜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아닌데도 마음은 차갑게 느껴지는 오후다. 알 수 없는 허전함에 책방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진료를 받고 책방으로 나가는 길이니 곧장 그리로 오란다. 무슨 일일까 걱정을 했는데 안색이 밝다. 차 한잔하라는 그의 말을 뒤로하고 오랜만에 헌책 더미를 뒤진다. 책갈피에서 풍기는 메케한 냄새지만 피하지 않는다. 설화를 묶어 놓은 작은 책자는 표지마저 반쯤 잘려 나갔다. 가로로 쓰인 작은 글씨는 실눈을 하고서야 겨우 읽을 수 있다. 이내 눈이 시려오고 미간이 찌푸려진다. 확대경이 아니고는 읽을 재간이 없다. 이를 지켜본 주인이 차茶를 내왔다. 따뜻한 홍차에서도 헌책 냄새가 난다. 티가 나지 않은 큼직한 찻잔은 헌책마냥 주인의 품성을 닮았다.
   책방을 뭐라고 정의하느냐고 묻는다. 근사한 말이라도 해야 될 것 같은데 마땅한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꾸물대고 있는 중에 그가 또 물었다. 책은 사서 뭐하게요? 말문이 막힌다. 돌아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해 본다. 책방이란 곳도 책을 사는 것도 사람을 만나기 위한 것이라는 걸. 나보다 차원이 다른 사람의 철학이나, 사상이나 사고 등 지식이나 경험을 얻기 위한 것이다. 할아버지가 머물던 사랑방이 바로 헌책방이다. 사랑채는 언제나 동네 할아버지들로 붐볐다. 담배연기 자욱한 방안에서 바둑을 두거나 담소하던 사랑방이 아니던가. 때로는 손자에게 달달한 홍시와 팔베개를 내주며 옛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마치 책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며 알 수 없는 세상에 빠져드는 것처럼.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책방이 뭐하는 곳인지를 알아냈다고. 책방은 누구나 품어주는 사랑방이고 책을 사는 건 보물을 찾은 거라고.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내 귓가에 여운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