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2018년 07월호, 통권201호 I 세상마주보기] 박수 치시라요 - 유인철
"국악 공연엘 가면 소리꾼이 소리를 하기 전에 추임새를 먼저 가르쳐 준다. 얼쑤, 좋다, 잘한다 등등 따라해 보라고 하고, 따라하면 ‘식사를 안 하셨는지 소리가 너무 작다.’며 한 번 더 연습을 시키곤 한다. 판소리에서 추임새는 고수와 더불어 하는 하나의 협연이다."
박수 치시라요 - 유인철
“야 임마, 너 왜 이제 와? 옷은 그게 뭐꼬?”
등교하자마자 교무실로 불려간 나는 선생님에게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음악경연대회를 가야 하는 날이란다. 지금 돌이켜봐도 내가 잊은 게 아니라 선생님이 말씀을 안 하신 거다. 난 평상시대로 반바지에 ‘난닝구’ 차림으로 학교에 갔고. 책보를 그대로 놔둔 채 선생님을 따라 군소재지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경연이 열리는 학교는 3층 건물이었다. 교실이 달랑 6개인 우리 학교랑 비교할 수 없이 컸다. 3층 건물에 올라가 보는 것도 그날이 처음이다.
교무실로 간 선생님은 사정 이야기를 하시고 그 학교 합창단 유니폼을 빌렸다. 바지는 남색, 셔츠는 병아리 색, 깜찍한 스카프까지 달렸다. 사각거리고 새물내가 났다. 딴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무대 뒤에서 출연자들의 노래를 들으며…. ‘에이, 쟤들보단 낫지!’ 속으로 자신했다.
음악경연은 제천군 내 국민학교 대항 합창. 독창대회에 내가 독창 대표로 나간 것이었다. 작은 학교라 합창단은 꾸리지 못했다. 몇 달 전부터 음악선생님으로부터 개인 지도를 받았다. 음악선생님이라 했지만 사실은 트럼펫을 취미로 부는 분이다.
차례가 돼 무대에 서니 웬걸! 그때까지 빵빵하던 자신감이 풍선 터지듯 빠져나갔다. 무대를 바라보는 수많은 눈들을 국민학교 4학년이 혼자 감당하기엔 벅찼다. 자유곡, 지정곡 두 곡을 불러야 한다. 난 자유곡으로 <보름달>을 준비했다. “보름달 둥근달 동산 위로 떠올라 X둡던 마을이 대낮처럼…” 아뿔싸, ‘어둡던’에서 ‘어’를 소리 내지 못했다. 긴장해서 침을 꼴깍하려다 박자를 놓쳤다. 근데 예상치 못한 커다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어?’ 잠깐 의아해 하다 이내 그 이유를 알았다. 바로 옷. 방청객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 학교 학부형들이 내 옷을 보고는 자기네 학교 학생으로 착각한 것이다. 제대로 친 박수건 아니건 간에 기분이 좋았고 긴장이 확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지정곡 <과꽃>은 완벽하게 불렀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시 교무실로 가 빌린 옷을 돌려주고 내 옷으로 갈아입었다. 선생님께선 1, 2, 3등에 들지 못해 도 대회에 나갈 자격을 놓친 걸 아쉬워하셨을 테지만 난 옷을 돌려준 게 더 아쉬웠다.
노래를 부르건 악기를 연주하건 춤을 추건 강의를 하건, 무대에 올라 보면 청중들의 호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바로 알 수 있다. 딴짓을 안 하고 집중해 주고, 큰 박수를 함성과 함께 쳐주면 60점짜리 연주자라도 90점, 100점짜리 연주가 가능해진다. 배구나 농구 시합에서 게임이 잘 안 풀리면 감독이 타임을 불러 “연습 땐 잘했는데 왜 그래? 자 자! 긴장 풀고 연습만큼만 하자. 파이팅.” 하는 화면을 기억하시는지? 운동장에서도 그렇고 무대에서도 흔히 얼었다고 말하는 긴장이 제일 문제다. 그날 자유곡을 실수해 주눅이 들 만한데도 착각으로 친 박수일지라도 큰 박수를 받고 다시 용기를 얻어 지정곡을 잘 부른 것도 그런 연유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목소리에 자신감을 잃어 한동안 노래를 안 하다가 꿈틀거리는 음악에 대한 갈망을 어쩌지 못해 20년 전부터 색소폰을 배우고 있다. 지금은 이런저런 모임에 나가 틈틈이 연주를 한다. 사람들이 잘 들어 주고 열렬히 박수를 쳐주면 신이 나고 긴장이 풀어져 더 잘하려고 온 힘을 다하게 된다. 악기 소리도 당연히 더 좋아질 수밖에. 잘못 친 박수에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진정으로 치는 박수는 어떻겠는가.
폰 선생님이 늘 하는 말씀이다. “연주를 할 때 우리나라 관객들은 어디를 잘하나 보단 어디를 틀리나 보는 경향이 있어요. 그러기에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웬만한 인기 가수가 아니면 노래 부르는 도중 일어나 흔들라 해도 서로 눈치를 보며 주춤거려요. 외국의 공연실황을 보면 시작도 안 했는데 춤을 추는 등 적극적으로 즐기려는 사람들을 쉬 볼 수 있잖아요? 별거 아닌 멘트에도 잘 웃고, 별거 아닌 연주에도 함성을 지르며 좋아들 합니다. 그만큼 열려있는 거죠.”
국악 공연엘 가면 소리꾼이 소리를 하기 전에 추임새를 먼저 가르쳐 준다. 얼쑤, 좋다, 잘한다 등등 따라해 보라고 하고, 따라하면 ‘식사를 안 하셨는지 소리가 너무 작다.’며 한 번 더 연습을 시키곤 한다. 판소리에서 추임새는 고수와 더불어 하는 하나의 협연이다.
초대권이 생겼건 돈 주고 표를 샀건 시간을 내 공연장에 갔으면, 칭찬과 더불어 비판 기사를 써야 하는 문화부 기자가 아닌 이상 맘껏 즐길 필요가 있다. 체면의 옷을 과감히 벗어버리고 좀 들썩거려야 한다. 그러기에 난 일부러라도 크게 박수를 치고 ‘브라보, 원더풀’ 같은 함성을 지른다. 간혹 아내가 어깨를 툭툭 치며 눈치를 줘도 개의치 않는다. 박수는 잘해서 치는 게 아니라 잘하라고 치는 거고, 즐거워서 치는 게 아니라 즐거워지려 치는 거다.
“박수 치시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