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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8년 07월호, 통권201호 I 세상마주보기] 다시 꺼내본다 - 김신희

신아미디어 2018. 8. 29. 20:44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것이 마음을 끄는 그림이라고 한다면 내 안에 시리즈로 들어 있는, ‘복제품’에서 시작 된 밀레의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시 꺼내본다    -    김신희


   1960~70년대 우리나라에서 <만종>과 <이삭 줍는 여인들> 외에도 밀레의 작품들은 요즘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 특히 작품 <만종> 속의 모자를 벗어 양 손에 모아 쥔 남자와 머리를 깊이 숙인 아낙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감동이었다. 하루를 마치고 저녁 종소리를 들으며 감사 기도를 드리는 그림 속 부부. 그것은 시대를 초월한 숙연함과 자연을 존중하는 감사와 고귀한 노동의 가치에서 비롯된다.
   밀레와 나의 만남은 그림 ‘복제품’으로부터 시작했다. 이는 작품 원화原畵에 대한 이해라든가 안목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밀레의 그림이 내게 각인시켜 준 것 중 하나를 들자면 가난도 때로는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그림은 평화로움과 감사, 자연에 대한 순응 같은 것이 강하다. 그것은 아마도 그의 작품이 사실에 바탕한 것이어서 더욱 그럴 것이다.
   노동으로 지친 하루를 마무리 짓는 그림 속 부부의 삶이 감사로 귀결되고 있다. 그림에 대한 안목이 전무했던 나로서는 밀레에 대한 교과서적 이해보다 ‘복제품’과의 만남이 더 친하고 익숙했다. 그림이 액자에 걸리든, 바람벽에 붙든, 이미 그곳은 부동의 공간이며 나만의 영역으로 확장되는 시각적 효과라고나 할까? 밀레의 그림에 대한 내 감정의 순도도 가일층 심화된다.
   그즈음 밀레의 그림은 교과서에도 등장, 한국인에게 친숙한 그림이었다. 그로 인하여 복제품이 확산되었고 그 덕에 내 고향 집에도 밀레의 복제품으로 치장되었다. 이런 현상은 비단 어느 한 집만의 현상은 아니었다. 친구 아무개네 집에도 삼거리 큰길가 이발소에도 거울이 걸린 벽면을 비껴, 기중 잘 보이는 벽면 정중앙을 차지하였다.
   우리 집에는 안방과 건넌방 그리고 마루의 시렁 및 문지방에까지 <이삭 줍는 사람들>, <건초 묶는 사람들> 등 그림은 아주 오랫동안 요지부동 자리를 지켜 주었다.
   무색무취한 것이 초가의 아름다움이라 할 수 있는 한국의 초가에 밀레의 그림은 누가 뭐라 해도 내게는 파격이었다. 아주 언밸런스 하고 아주 이색적이고 아주 낭만적이었다.
   밀레의 이 명화名畵들은 우리 가족이 이사하기 전까지 부동의 걸작품으로 존재했다. 내 안에 정지화면처럼 들어 있는 이 고전古傳한 고향집 바람벽 풍경이 기이하고 지루할 만도 하나 웬걸 심취하리만치 마음을 사로잡던 것이다.
   고향 들녘이 밀레의 그림인 듯 밀레의 그림이 고향의 풍경인 듯 착각과 상상 사이를 넘나들며 심미적 체험에 행복했던 기억들이다. 그 들녘의 노을이 낮은 언덕이, 복제품이라고 하는 딱지에 기념할 만한 감정의 아름다운 정취를 부여해 주었다. 이러한 까닭에 고향의 그 들녘은 더 이상 가난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다.
   들에서 베어 낸 벼이삭을 단으로 묶은 후, 서로 맞대어 논둑에 볏가리 치던 내 부모님의 하루도 그 노을 속에 묻혀 내일을 위한 휴식에 든다. 그리고 다음 날 볏가리를 떼어 들여 와 울 밖에 낟가리를 쌓았다. 그렇게 하면 비가 와도 끄떡없다. 탈곡 후 나온 짚으로는 지붕갈이를 하고 나머지는 짚가리를 쌓아 겨울 동안 소여물과 땔감으로 사용되었다. 일련의 과정들이 밀레 작품 <건초 묶는 사람들>, <건초 더미> 등과 공유되면서 바람처럼 쏘다니기 좋아하는 들꽃 같은 소녀의 감성을 서정적으로 이끌어 주었다. 부모님의 땀과 수고가 아름다운 가치로 내게 기쁨이 되었던 것도 이 복제품 덕이다. 그 효력이 때 없이 나를 그 들녘으로 불러내곤 했다.
   ‘만종 종소리’에 귀 기울이며 감사하는 농부 부부의 하루가 노을을 배경으로 시절의 가난까지도 서정적으로 아름답게 포용한다. 자연을 존중하는 숙연함이 따뜻하다.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지 나는 여전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것이 마음을 끄는 그림이라고 한다면 내 안에 시리즈로 들어 있는, ‘복제품’에서 시작 된 밀레의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