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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8년 06월호, 통권200호 I 지상에서 길찾기] 버킷리스트 여행 - 신창선

신아미디어 2018. 7. 31. 09:29

"“아빠, 버킷리스트여행 자주 해요.” 식구 모두 기다렸다는 듯 합창하며 웃는다. “그래, 그래라. 오래오래 늙어야겠구나.” 갑자기 베푸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온몸이 붕 뜬다. 홋카이도 만추의 밤이 깊어간다. 내일이면 버킷리스트 하나가 지워질 것이다."







   버킷리스트 여행    -    신창선


    삿포로행 비행기가 떴다. 눈의 나라 홋카이도의 풍경이 구름처럼 바다를 수놓고 있다. 미우라 아야코三浦綾子의 소설 ≪빙점氷點≫ 속의 장면들이 떠올라 가슴을 설레게 한다.
   나약한 인간의 슬픈 편린들. 유혹과 배신, 질투와 분노로 휩싸인 ≪빙점≫ 속 가족의 가장 큰 죄악은 ‘위선’이 아닐까. 위선이 빚어낸 비극은 홋카이도의 추위보다 더 매섭고 잔인해 보인다. 빙점은 물이 어는 점이 아닌 마음이 어는 점일 테다. 빙점은 ‘어는 점’이기도 하지만 ‘녹는 점’이기도 하기에 용서하는 세상을 볼 수 있는 소망을 키워드로 사건을 전개하고 있는 듯하다.
   나의 가족이 지금 버킷리스트 여행을 하는 까닭도 위선을 털어내고, 나를 용서하는 계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홋카이도 가족여행은 버킷리스트 여덟 항목 중 하나로, 내가 매달 사십만 원씩 삼 년 동안 적금한 천오백만 원으로 이루어졌다.
   이번 여행은 그동안의 나의 잘못된 삶을 비워내는 답사라는 생각이 든다. 떠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걷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게 여행이라 했던가. 숲을 떠나야 숲이 보이듯이, 집을 떠나야 가족이 보이듯이.
   나이 들어 비로소 철이 들어가고 있다. 그동안 허세와 위선으로, 내 손가락에 박힌 가시가 아팠을 뿐, 가족의 가슴에 박힌 대못은 전혀 보지 못했음을 조금이나마 알았다고나 할까. 막연히 버킷리스트여행을 계획했는데, 의외의 기쁨으로 충만하다. 행복을 찾아, 나를 찾는 여행이었음을 고백해도 되려나.
   이청득심以聽得心,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다는 말이 있다. 하나 나는 70년을 넘겼어도 묵언이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하기에 이번만은 입을 닫고 귀만 열리라 작심하고 이를 큰아이에게만 살짝 귀띔한다. 말을 내뱉는 것은 지식을 소비하는 것이고, 말을 듣는 것은 지혜를 얻는다는 말을 생각하면서. 내 어렸을 적엔, 일흔 넘은 노인은 뭐든지 알고, 뭐든지 쉽게 들어주어 나를 놀라게 했었다. 지금 그 나이를 훌쩍 넘은 나는 어떤가. 당시의 어린애에 지나지 않음을 알기에, 작심삼일이 될지 모르지만 아상我相은 못 버려도 입만은 꼭 다물고 있으리라 다짐하고 다짐한다.
   여행 이틀째. 입 꼭 다물고 웃기만을 반복한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 내가 웃어야 웃을 것이기에. 속 타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지만, 가족의 자유스런 모습이 밉지가 않다. 여태 허세를 부렸던 속물근성이 부끄러워서인지, 가족들의 노예가 되는 일이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가족들의 자유가 나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고 있었기에. 노예가 되어 보아야 진정한 자유가 보이는 것인가.
   여행 사흘째. 이해하기는 오는 게 아니라 가야 하는 것임을, 내가 가족들 마음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임을 배운다. 혹여 이해가 지나쳐도 나는 곧장 살아있거늘, 마음은 쉬운데 몸은 왜 그리 어려웠을까. 붕대를 감아줄 수 없다면 상처를 건드리지 않는 게 사랑임을,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게 행복임을 깨우친다.
   사랑은 소리없이 와 닿을 때 아름답고, 행복은 미래에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있음을 배운다. 사랑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기에 집에 돌아가면 또 사랑을 찾아 헤매겠지.
   그동안 왜 그렇게 바보처럼 살았을까. 조금만 더 여유를 가지고, 조금만 더 하늘을 바라보며, 조금만 더 웃고 지냈으면 그만이었을 텐데. 가족과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한다는 것, 그저 실없이 웃는 일, 이런 사소한 것들이 행복이라는 걸, 세상만사 그렇게 단순한 것임을 왜 여태 몰랐을까. 집에 돌아가면 이번 여행의 멋스러움을 가슴 깊이 문신처럼 새겨 넣을 수 있을까.
   여행 마지막날 밤. 영화처럼, 소설같이 상상했던 여행이 수필 같은 영혼의 떨림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가족과의 동행은 먼 길이 아니었다. 사랑이 나를, 가족을 우주를 지탱하고 있음도 알았다. 성냄도 용서도, 예전엔 미처 몰랐던 사랑이었다. 가을이 잘 익어야 겨울이 오고, 겨울이 잘 익어야 봄이 온다는 자연을 배웠다. 아내의 미소도, 딸애의 수다도, 온천욕장에서 등목을 쳐 주는 사위 녀석의 너털웃음도 훌륭한 대화였다.
   ‘아사히’ 사케 잔을 부딪치며 큰애가 익숙한 건배사를 건넨다.
   “나, 아빠를 사랑해/ 그대, 아빠를 사랑하는가/ 네.” 끈적거림을 참아내면서, 나도 어느 시인의 글귀를 패러디하여 한마디 내민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가족이 그렇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것은 가까운 사람들과의 대화였음을 체득하는 순간이다. 가족은 함께해야 피는 아름다운 꽃이었다.
   따로 또 같이 생각했을 식구들에게, 여행 소감을 짧게 한 줄 써달라는 작은 메모를 내민다. 특별한 생각을 기다린 건 아니기에 식구 모두 한마디씩 거든다. “아빠가 준 최고의 선물, 즐겁고 배움이 가득했던 여행, 버킷리스트 다 이루세요.” 모두들 아부성 발언을 마다 않는다. 막내가 옹알이듯 말한다. “아빠, 버킷리스트여행 자주 해요.” 식구 모두 기다렸다는 듯 합창하며 웃는다. “그래, 그래라. 오래오래 늙어야겠구나.” 갑자기 베푸는 사람이 된 것 같아 온몸이 붕 뜬다.
   홋카이도 만추의 밤이 깊어간다. 내일이면 버킷리스트 하나가 지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