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2018년 06월호, 통권200호 I 사색의 창] 고전古典에서 해답을 찾다−이서침등二鼠侵虅 - 전병훈
"내부 마음에서 비롯되는 욕구와 집착만 통제하여도 고통은 완화될 수 있다. 때문에 무명을 없애려는 응분의 지혜를 발휘하고 마음 수양을 쌓으며 바른 실천만 따른다면 선남선녀의 삶에서도 고통은 크게 해소되고 보다 양질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리라. 다만 앎의 실천이 지혜의 깨달음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 중생이 안고 있는 한계가 아닐까 싶다."
고전古典에서 해답을 찾다−이서침등二鼠侵虅 - 전병훈
인생살이에는 으레 고통이 따른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피하기 어려운 여덟 가지의 괴로움1)을 감내하여야 한다. 때문에 인간은 자고이래로 이를 벗어나려 노력해 왔다. 종교를 위시하여 많은 선지자들에 의해 육체적·정신적 수행법들이 숱하게 계발되기도 했다. 깨닫지 못한 세속 범부의 삶에서 고를 벗어나는 길은 없을까. 아니면 이를 가볍게 할 수는 길은 없는지 고뇌하게 된다.
먼저 ≪정명경淨名經≫의 <방편품方便品>에 나오는 이야기를 들어본다. “어떤 사람이 길을 가는데 뒤에서 사나운 코끼리가 쫓아와 위험을 피하기 위하여 마른 우물 속으로 들어가 중간에 늘어진 등넝쿨을 붙들고 있었다. 그 우물 밑에는 악한 용이 있고 그 옆에는 다섯 마리의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으며, 흰쥐 검은쥐 두 마리가 교대로 나타나서 붙들고 있는 등나무 넝쿨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리고 머리 위에 나무가 하나 있어 거기에 벌집이 매달려 있는데 그 벌집에서는 달콤한 다섯 방울의 꿀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사람은 꿀을 받아먹으면서 그 맛에 도취되어 자기가 지금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도 잊고 있었다.”2) 다분히 불교적 사유이다. 우물은 생사生死, 코끼리는 무상無常, 악한 용은 악도惡道3), 독사 다섯 마리는 오온五蘊4), 등넝쿨은 생명선生命線, 꿀 다섯 방울은 오욕락五欲樂, 흰쥐와 검은쥐는 낮과 밤을 각각 비유하고 있다. 사바세계에서 살아가는 중생의 삶의 모습이 읽힌다.
인간은 숙명적으로 팔고八苦를 안고 삶을 살아내야 한다. 인간을 구성하는 오온 즉, 물질적 요소(색온)와 정신적 요소(수·상·행·식)는 현상적 존재로서 끊임없이 생멸生滅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주常住불변하는 실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만물이 항상 유전流轉하여 한 모양으로 머물지 않는 환경 속에서 유한한 생명선은 촌음도 쉬지 않고 소진되어 간다. 한데도 눈이 어두운 인간은 살아가면서 달콤한 오욕五欲5)에 탐닉하고, 악도에 빠지며 몸과 입과 마음은 십악十惡6)을 범하며 고통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다.
불법의 핵심 교리를 음미해 보자. 고苦는 깨달음에 이른 아라한들을 제외한 모든 중생의 삶에 흐르는 근본적인 불만족성이며, 때로는 슬픔, 비탄, 실망, 절망의 형태로 나타난다. 거듭거듭 지어나가는 생·노·병·사의 끝없는 생의 순환과정을 추진하는 요소는 갈애渴愛, 즉 존재를 더 지속하려는 갈망이다. 삶은 무상한 것이고 가장 깊은 의미에서의 고인 불안전성이라는 특징을 띠게 된다. 때문에 고의 완벽한 종말을 열망하는 어떠한 세속적인 성취나 삼계三界에서의 위치에도 만족해서 머무르고 있을 수 없다. 고의 최종적인 종말은 오직 불안정한 소용돌이로부터 완벽하게 해탈을 이루어낼 때라야 비로소 이루어지는 것이다. 고의 발단은 우리 마음 안에 있다. 즉, 우리 존재에 속속들이 스며들어 마음을 어지럽히고 남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를 해치는 근본적 질병으로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번뇌라고도 일컫는 이러한 불건전한 상태인 고의 가장 깊은 뿌리는 탐貪·진瞋·치癡 삼독三毒이다. 탐욕貪慾은 애착하여 탐내는 자기중심적인 욕구이다. 쾌락과 소유를 향한 욕심, 생존의 욕구, 권력·지위·명예를 통해서 자긍심을 굳건히 하고자하는 욕구 등이다. 진에瞋恚는 성내는 것, 즉 부정적 반응을 뜻하는 것으로 거부, 짜증, 저주, 미움, 적개심, 분노, 폭력 등의 형태로 드러난다. 치암癡暗은 마음이 어리석고 어두운 것, 즉 정신적 무지를 말하며 분명한 이해를 차단하는 무감각의 두꺼운 껍질을 가리킨다. 이 세 가지 뿌리로부터 자만, 질투, 야심, 무기력, 오만 그 밖에도 각양각색의 다른 번뇌들이 생겨난다.7)
번뇌의 뿌리는 무명無明, 즉 우리의 마음을 덮고 있는 근본적인 어둠이다. 무명은 번뇌를 낳고, 번뇌는 고를 낳는다. 고로부터 충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방되기 위해서는 고의 뿌리인 무명을 제거해야 한다. 무명을 없애자면 사물의 궁극적 본질에 대한 확연한 앎인 지혜가 필요하다. 일련의 조건을 갖춤으로써 지혜는 생겨나는 것으로 이들 조건을 계발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 자기계발은 쉬운 일이 아니고 또 남이 대신해 줄 수 있는 일도 아니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 조건들이란 심적 요소들로서 특정 목적지로 뻗어있는 행로, 즉 도정道程으로 체계적 구조를 이루는 의식의 구성요소들이다. 목적지는 고의 종식이고 거기에 이르는 도정은 여덟 항목으로 이루어진 성스러운 팔정도이다. 이 여덟 항목이란 바른 견해正見, 바른 의도正思,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집중正定이다.8) 붓다께서 설법하셨다. 팔정도는 중도中道로서 “눈을 생겨나게 하고 지智를 생겨나게 하고 평화로, 직지直智로, 깨달음으로, 열반涅槃으로 이끈다.”9)라고.
이제 인간은 백세시대를 살아간다. 연명하는 장수는 축복이 아니다. 고통없는 건강한 즐거운 삶이어야 한다. 한데 수명이 연장되는 만큼 인간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양 또한 증대된다. 수명연장과 고통은 함수관계에 있다. 누구나 다 해탈의 경지에 이를 수는 없다. 하지만 불교의 가르침에 의지하는 것은 가능하겠다. 고통을 종식시키는 참된 길을 찾기 위해서는 고의 범위와 깊이에 대한 온전한 파악, 고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분석 및 고의 원인을 뿌리째 뽑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 제시의 세 가지 조건이 구비되어야 한다. 또한 고는 정신적 문제이기 때문에 고의 궁극적인 해소는 물질이 아닌 정신적 길을 선택 추구하는 데서 이루어진다. 번뇌는 마음에 있는 것이지 감각기관이나 감각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해서 ≪화엄경≫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직 이 마음이 짓는 것이다.”라고 설하였다. 깨닫지 못한 중생은 바깥의 대상을 좇아 행복을 갈구하며 욕구의 흐름에 자신을 내맡긴다. 하나 진정한 행복의 열쇠가 되고 집착에서 벗어나는 길은 갈애와 충동을 외면해 버리는 놓음이다. 집착이 없으면 고통은 없다. 내부 마음에서 비롯되는 욕구와 집착만 통제하여도 고통은 완화될 수 있다. 때문에 무명을 없애려는 응분의 지혜를 발휘하고 마음 수양을 쌓으며 바른 실천만 따른다면 선남선녀의 삶에서도 고통은 크게 해소되고 보다 양질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리라. 다만 앎의 실천이 지혜의 깨달음보다 더 어렵다는 것이 중생이 안고 있는 한계가 아닐까 싶다.
1) 팔고八苦, 시공 불교사전, (시공사, 2003).
중생이 겪는 여덟 가지 괴로움.
(1) 생고生苦, 이 세상에 태어나는 괴로움.
(2) 노고老苦, 늙어 가는 괴로움.
(3) 병고病苦, 병으로 겪는 괴로움.
(4) 사고死苦, 죽어야 하는 괴로움.
(5) 애별리고愛別離苦,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
(6) 원증회고怨憎會苦, 미워하는 사람과 만나거나 살아야 하는 괴로움.
(7) 구부득고求不得苦, 구하여도 얻지 못하는 괴로움.
(8) 오성음고五盛陰苦,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오음五陰에 탐욕과 집착이 번성하는 괴로움.
2) 현봉 옮김, ≪禪에서 본 般若心經≫, (불광출판사, 2008), p.106.
3) 악도惡道, 시공 불교사전, 전게서. 악한 짓을 한 중생이 그 과보로 받는다고 하는 괴로움의 생존. 지옥·아귀·축생 등의 세계.
4) 오온五蘊: 일체의 번뇌를 일으키는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불교에서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적 요소인 색온色蘊과 정신적 요소인 4온을 합쳐 부르는 말. 오음五陰이라고도 한다. 온이란 집합 ·구성 요소를 의미하는데,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의 다섯 가지이다. 처음에는 오온이 인간의 구성요소로 설명되었으나 더욱 발전하여 현상세계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 통용되었다.
오온이 인간의 구성요소를 의미하는 경우에는 ‘색’은 물질요소로서의 육체를 가리키며, ‘수’는 감정·감각과 같은 고통·쾌락의 감수感受작용, ‘상’은 심상心像을 취하는 취상작용으로서 표상·개념 등의 작용을 의미한다. ‘행’은 수·상·식 이외의 모든 마음의 작용을 총칭하는 것으로, 그중에서도 특히 의지작용·잠재적 형성력을 의미한다. ‘식’은 인식판단의 작용, 또는 인식주관으로서의 주체적인 마음을 가리킨다.
5) 오욕五慾 = 五塵: 財欲, 色欲, 食欲, 名譽欲, 睡眠欲.
6) 십악十惡, 몸과 입과 마음으로 짓는 열 가지 죄악. 곧, 살생殺生, 투도偸盜, 사음邪淫, 망어妄語,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 탐욕貪慾, 진애塵埃, 사견邪見.
7) 비구 보디 지음, 전병재 옮김, ≪팔정도≫, (고요한 소리, 2009), pp. 26~28.
8) 상게서, pp.32~33.
9) 김재성 옮김,≪붓다의 말씀≫, (고요한 소리, 2008), p.78 ; 상게서 p.36, 재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