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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8년 05월호, 통권199호 I 사색의 창] 불턱을 엿보다 - 서경림

신아미디어 2018. 7. 6. 08:13

"이제는 해녀들의 왁자지껄한 이야기도, 구성진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고, 바람 소리만이 쓸쓸하게 불턱을 감돌 뿐이다. 잡초들이 제멋대로 자라 황량함을 더해 주고 있다. 그래도 불턱은 여전히 해녀들의 억척스러운 혼이 깃든 곳이다. 해변을 거닐다가 불턱을 엿보면 예전의 해녀들의 모습이 연상되는 추억이 서린 곳이다."







   불턱을 엿보다    -    서경림

   불턱은 해녀들의 억센 생활 속에서도 인정이 깃드는 쉼터요, 소통과 협동의 장으로서 민주화의 싹을 엿볼 수 있는 곳이다.
   불턱의 ‘불火’은 글자 그대로 불씨이며 ‘덕’은 불씨가 있는 곳이라는 뜻으로 모닥불이나 화톳불과 유사하지만 다양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불턱은 최근에 와서 현대식 건물인 해녀의 집 등으로 그 형태가 변하고 있지만, 불턱이라 하면 돌담을 두른 불턱, 이른바 돌담형 불턱을 가리킨다. 이 돌담형 불턱은 보통 바닷물이 철썩거리는 근처로, 해녀들이 바다에 드나들기 쉽고, 돌멩이로 둘러싸여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이다.
   해녀들은 옛날에는 옷을 입지 않고 바다에 들어가 ‘물질(잠수하여 해산물을 잡는 일)’을 했다. 물질에는 ‘ᄀᆞᆺ물질’ 과 ‘먼물질’이 있다. ᄀᆞᆺ물질은 바로 가까운 바다에서, 먼물질은 배를 타고 멀리 한국 본토 각 도의 바다는 물론 일본,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먼물질을 나갈 때는 해녀 자신들이 손수 배를 저으며 간다. 노를 저으며 만경창파를 건너는 일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는 다음의 민요가 단적으로 가리켜 준다.


배똥알은 놈을 준덜
요 네착사 놈을 주랴
젓이라, 젓이라!
뒤엣 섬이랑 멀어지곡
앞윗 섬이랑 ᄇᆞ디어지라
(배꼽 밑을 남을 준들
요 노야 남을 주랴
저어라, 저어라!
뒤엣 섬일랑 멀어지고
앞엣 섬일랑 가까워져라)


   해녀의 작업 모습을 처음으로 보았던 한국 본토인에게는 신기하면서도 야만인처럼 생각되었다. 유교적 성관념으로 가득 찼던 선비들에게는 몹시도 눈에 거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고려 때에도, 조선조에는 특히 나체 조업을 금하였다.
   불턱은 해녀들이 앉아 있을 때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그 내부를 잘 들여다볼 수 없도록 높게 돌담을 두른 곳이다.
   불턱은 먼저 탈의실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오로지 여성에게만 허용되는 남성금지 구역이다. 남성은 성인뿐만 아니라 유년의 사내애도 해당된다. 아기를 가진 해녀가 젖을 먹여야 할 때, 그 아기를 안고 온 사람이 남자인 경우에는 불턱에서 멀리 떨어져서 소리쳐 부른다. 한참만에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은 엄마 해녀는 단숨에 달려와 배고파 우는 아기를 안아 가슴에 품는다.
   불턱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옹기종기 모여앉아 따스한 불볕 속에 정情이 오가는 쉼터이다. 소설가 한림화의 채록을 보면 스무 살까지도 물질을 배우지 못한 다른 마을 출신의 안택근 할머니가 처음 물질을 배우려고 태왁을 지고 불턱에 들어섰다. 순간 다리가 몹시도 떨렸다고 한다, 가난한 집에 시집와서 같은 마을에 살게 되었지만, 자기를 동료로 받아 줄지 불안했다. 그래서 하군불턱에도 제대로 앉지 못하고 멀찍이 물러나서 옷을 갈아입었다.
   가만히 보고 있던 해녀들이 오돌오돌 떠는 신참 해녀에게 가까이 오라고 정답게 자리를 권했다. 너무 고마워서 눈물이 막 쏟아졌다. 그렇게 쉽게 잠수패에 끼게 되다니 꿈만 같았다. 상잠수가 느지막하게 허락한다는 한마디를 했다.
   “에~에, 못나기는. 어서 요래 왕(이리 와서) 벗들 광 (벗들과 함께) 앉아. 경(그렇게) 혼자 떨어정 앉으면 별맛이라?”
   불턱은 정말로 소통과 협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곳이다. 얼른 보면 모닥불에 둘러앉아 서로가 큰 소리로 싸움이라도 하듯 떠든다. 그러나 이렇게 크게 떠들지 않으면, 파도소리와 사람 소리에 파묻혀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는다,
   이 왁자지껄함 속에 사소한 집안일에서부터 누구 집 대소사까지 온갖 새 소식이 오간다. 마을의 발전이나 학교의 발전기금을 위한 의논도 일어난다. 공동 작업으로 채취한 톳이나 우뭇가사리 수익금은 학교나 마을을 위해 쓰자고 결의한다.
   혼자서 떠들고 결정하면 독재가 되고 여럿이 떠들고 합의하면 민주가 된다. 시끄럽게 떠들어도 불턱에는 질서가 있다. 물질을 가장 잘하는 해녀를 ‘상군’ 또는 ‘상잠수’라고 하고, 상군 중에서도 최고참이 웃어른으로 받들어진다. 물질을 한 지가 오래되어도 기량이 부족하여 얕은 바다에서 조업하거나 물질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잠수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하군’에 속한다.
   첫물질에 나선 잠수가 불턱에서 상군 잠수의 자리에 앉을 수는 없다. 모든 잠수가 한 화톳불에서 불을 쬐는 경우에, 상군은 당연히 풍량風向을 등지고 앉는다. 이때에 하군은 풍향에 마주하여 앉을 수밖에 없는데, 그 자리는 연기를 도맡아 마셔야 하는 곳이다.
   마을에 따라서는 상군과 중군 불턱이 따로 설치되기도 한다. 그러나 잠수사회에서는 대놓고 ‘하군’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하군은 중군 대열에 속하는 것이 보통이며, 단지 회의와 같은 공적인 자리에서만 구분한다. 그래서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는 발언권의 순서가 상군, 중군, 하군 순으로 내려온다.
   불턱은 물질하는 기술과 바다의 생태를 전수하는 문화 전승의 공간이다. 신참 해녀들은 상군 해녀들의 지시를 잘 듣고 따라야 한다. 상군은 할머니, 어머니, 언니일 수도 있고, 이웃일 수도 있다. 상잠수는 하잠수에게 바다를 익히고 물질의 요령을 가르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도 물밑 바다 속에서 욕심을 내지 않도록 엄하게 경고한다. 눈 앞에 전복이 보인다고 물 위로 솟구쳐 나오는 시간을 생각하지 않고 덤비다가 큰일 난다고 한다. 필경 숨막혀 죽게 된다고 겁을 준다. 신출내기일수록 또 젊은 잠수일수록 욕심을 부리는 성향이 있다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해녀들은 혼자 물질을 나가지 않고, 반드시 무리를 지어 함께 나간다. 물질하면서 서로의 안위를 항상 살핀다. 동료 해녀가 안 보이고 태왁만 동동 물에 떠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이윽고 길게 숨비소리를 토하면 물밖으로 솟구치는 해녀에게 ‘ᄒᆞᆫ저ᄒᆞᆫ저(빨리빨리) 물 위로 다니라.’며 핀잔을 준다. 이 윽박지르는 소리가 아무리 거칠어도 서로 아끼는 마음이라는 것을 안다. 물질을 하면서 생사를 같이하고 있음을 절절하게 느낀다.
   어느 불턱이나 가장 자랑거리가 되는 것은 해녀 중 누구도 물질 중에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그것을 가장 명예롭게 생각한다.
   물질친구들은 마을마다 해녀회에서 수평적 합의를 거쳐 어장 관리와 물질에 관한 일을 결정하면서 공동체의 연대의식을 굳게 다진다.
   불턱은 해녀들이 지고 간 땔감을 지피면서 쉬던 여성들만의 사랑방이었다. 특히 ‘소중이(천으로 만든 속옷)’를 입고 물질을 하던 예전에는 물속에서는 추워서 오래 작업할 수 없었다. 그래서 물밖으로 나와 불턱의 모닥불에서 언 몸을 추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추위에 견딜 수 있는 고무옷을 입게 되면서부터 불턱의 아기자기한 기능도 사라지고 없다.
   이제는 해녀들의 왁자지껄한 이야기도, 구성진 노랫소리도 들리지 않고, 바람 소리만이 쓸쓸하게 불턱을 감돌 뿐이다. 잡초들이 제멋대로 자라 황량함을 더해 주고 있다. 그래도 불턱은 여전히 해녀들의 억척스러운 혼이 깃든 곳이다. 해변을 거닐다가 불턱을 엿보면 예전의 해녀들의 모습이 연상되는 추억이 서린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