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본문

[수필과비평 2018년 05월호, 통권199호 I 사색의 창] 이십 일의 동거 - 박은희

신아미디어 2018. 7. 4. 09:15

"그렇게 동생의 병원 순례는 끝났다. 이제 우리 형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하면서 살아가자는 동생의 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과 고마움을 간직하고 사는 누나처럼, 그들에게도 이십 일간의 동거가 가끔은 그리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십 일의 동거    -    박은희

   수화기를 들기 전 심호흡을 하는 버릇이 생겼다. 동생의 전화 목소리가 여의치 않을 때는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는 것은 아닌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동생에게 알 수 없는 병이 왔다는 소식에 놀라 병원을 쫓아다니던 그즈음의 애달픔은 말로 다할 수 없다. 고칠 수 없는 병이라는 말에 하늘이 내려앉는 듯했으나, 더는 나빠지지 않고 처음과 같은 상태라니 천만다행이다. 그동안 변고가 없는지 물어보려 해도 들려올 대답이 무서워 모른 채 세월을 보낸다.
   대개의 병이 정신적인 스트레스에서 오는 것이라는데 내가 모르는 걱정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그때는 미처 몰랐다. 이십 일 간 북적이며 살았어도 아무런 눈치를 채지 못하고, 별일 없이 지내던 일상이었다. 그런 중에도 잠재해 있던 병이 크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가슴이 아프다. 우리 형제에게 그렇게 큰 시련이 닥치지 않았다면 잊고 살았을지도 모를 그때가 문득 생각나는 요즈음이다.
   남의 집에 더부살이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살아보지 않고는 모른다. 그해 겨울 이사 갈 집의 수리가 덜 돼서 부득이 동생네 집에서 신세를 지게 되었다. 동생은 어렵게 말을 꺼낸 누나에게 그만한 불편함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다며 흔쾌히 허락하였다. 
   결혼한 형제가 한집에서 생활한다는 것을 말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런데도 아홉이나 되는 식구가 이십 일 동안 화목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동생네의 배려가 있어 가능했다. 세세히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했지만, 동기간이 아니면 선뜻 할 수 없는 일임을 안다. 헤어지는 날 동생댁은 “형님 와 계신 동안 어머니가 살아오신 듯 좋았어요.”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의 숨결이 남아 있는 친정집에서의 이십 일은 행복했다. 매일 동생을 볼 수 있어 좋았고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도시 살림에 두 집 식구가 한집에 산다는 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불편한 일이지만, 형제는 자랄 때 추억에 젖어 밤을 새우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남매에게는 특별한 시간이었지만, 동생댁과 아이들은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 가족 모두 편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양보와 희생 덕분이었다. 다른 대안이 없다는 핑계로 오붓한 보금자리에 염치없게 끼어들었던 일이 친정 나들이가 된 셈이다.
   애들도 고맙다. 붙임성 있고 살가운 조카들이 불편함을 드러내지 않고 밝은 표정으로 고모를 대하고 따르니, 어찌 좋아하지 않겠는가. 형님이 무뚝뚝해 어렵다고 하면서도 나에게 모든 걸 맞추고 배려하는 동생댁에게 고맙고 미안했다. 어머니 대신 대가족의 살림을 맡았던 이십 일은 나만이 느낄 수 있는 보람된 시간이었다.
   생김새도 다르고, 하고 싶은 일도 나와는 딴판인 동생을 아들이라서 귀히 여기신 어머니. 어린 시절 그와 차별대우를 받았다는 억울함보다는 당연히 받아들였던 누나의 자리를 한번도 불평하지 않았다. 항상 옆에 계시려니 했는데 어머니 떠나신 지 십수 년이 지났다. 살림하면서 손자 둘을 키워내신 것까지 자랑스러워하셨던 어머니. 마지막까지 남은 가족을 걱정하셨던 어머니의 부재는 친정집 이곳저곳에서 찾을 수 있었다.
   어머니 떠나신 일은 동생 가족에게 감당할 수 없는 무게로 다가왔을 것이다. 동생이 알 수 없는 병을 얻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동안 우리 형제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부부가 함께 꾸려가던 생업을 놓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것을 두고만 볼 수 없어 내가 보호자를 자청했다. 부부 중 한 사람은 가게를 지켜야 하니 올케 대신 인터넷을 뒤지고 최고의 의료진을 찾아내는 것은 내 몫이었다. 결국, 평생 안고 가야 할 병이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동생은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말했다.
   “엄마가 나를 잊어버렸나 봐.”
   애써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는 동생의 어깨를 다독이는 일밖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순간 두 아이의 아버지는 가장의 자리를 내려놓은 채 힘없고 나약한 어린애가 되어 있었다. 그럴 리 없다. 엄마는 언제나 하늘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실 테니 절대 약한 소리 하면 안 된다. 갑자기 들이닥친 병마와 맞서 싸우는 일도 혼자가 아닌 함께 겪어 나가자고, 누나로서 의젓함을 보여야 했다.
   그렇게 동생의 병원 순례는 끝났다. 이제 우리 형제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서로를 의지하고 격려하면서 살아가자는 동생의 마음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과 고마움을 간직하고 사는 누나처럼, 그들에게도 이십 일간의 동거가 가끔은 그리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