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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8년 05월호, 통권199호 I 지상에서 길찾기] 러브 트라이앵글 - 송복련

신아미디어 2018. 6. 16. 00:14

"길을 나서면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들, 특히 야간에 운전을 하면 건널목과 굽은 길, 미끄럼길, 낙석이 떨어질지 모르며 공사 중이거나 야생동물이 나오는 곳이니 주의하라는 야광표지 들이 어둠 속에서 또렷하게 부각된다. 무심코 지나쳤던 표지판들은 얼마나 많은 친절을 베풀고 있었던가. 살아가는 일도 그처럼 대부분 위험을 예고하지 않았을까. 단지 욕심과 성급함이 앞서서 보지 못했을 뿐이리라. 오늘도 새로운 길 위로 나선다. 믿거니 하고 방심하다가 함부로 한 일들이 부메랑이 되어 관계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내 앞에 안전 표지판 하나 가지고 산다면 어떨까. 사랑의 트라이앵글 소리가 아름답게 연주되리라 믿어본다."







   러브 트라이앵글    -    송복련

   세 개의 모서리를 가진 삼각형은 안전했다. 짝이 맞지 않는다고 고민할 필요는 없다. 그런 긴장이 오히려 삶의 에너지가 되고 그런 간격이 평화를 지켜주는 안전 표지판이라는 걸 늦게 알게 되었다.
   나는 신호 대기하거나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서 있으면 불안하다. 초록으로 바뀌자마자 출발선에 선 선수처럼 무섭게 ‘부웅’ 소리를 내며 달려나가는 차를 보면 돌발 상황이 벌어질까봐 머리끝이 쭈뼛해진다. 길을 건너려고 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꺼진 불을 다시 보듯 사방을 살피며 조심하는데 횡단보도의 불을 미처 보지 못하고 우회전하는 차가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무사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차를 몰고 나와도 급브레이크를 밟거나 경적음을 울려 방어를 해야 할 때가 있다. 길에서 흔하게 만나는 수많은 픽토그램이 그림으로 말을 하고 있었지만 무심코 지나쳤다. 막상 큰일을 당하고 보면 주의 경보하고 있는 빨간 삼각형 속에 사람과 운전자와 차가 서로의 간격을 지켜야 할 약속들을 일깨워주고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모두의 안전을 위한 거리가 삼각형 속에 들어 있었다. 혼자서는 안 되는 관계 속의 거리가 아닌가.
   삼각관계라면 얼른 불륜이 떠올라 더욱 불안해진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수많은 이야기를 낳고 열정과 애절함으로 가슴 절절해서 찡하게 남을 것이다. <불멸의 연인>이 그렇고 <닥터 지바고>가 그랬던 것처럼. 그렇지만 현실이라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드는 사랑은 위험하다. 둘만의 세계에 느닷없이 뛰어들어 설마 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을 때 금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평범하던 일상이 지옥이 되고 두 여자의 얼굴 위로 숨 막히는 시간이 흐르고 비수는 점점 날을 세우게 되리라. 남편과 아내가 보낸 수많은 낮과 밤은 의미가 없어지고 벽지처럼 무덤덤한 시선만 오갈 뿐이다, 결혼생활의 끝물이 찾아오는 것이다. 한 가정이 무너지고 가족관계가 찢어지는 애초에 허락되지 않은 삼각관계에는 안전거리가 없다.
   하지만 여행을 좋아하는 우리들을 여행 삼총사라 부르니 이것도 삼각관계다. 봄바람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떠나고 싶어 들썩거린다. 그해 여행의 시작을 알리는 셈이다. 그동안 섬을 많이 다녔지만 오붓하게 세 사람이 섬 여행을 시작한 지는 몇 해가 된다. 동백꽃을 보겠다고 지심도에 간 뒤로 청산도, 위도, 풍도와 대이작도, 대부도, 영흥도로 이어지고 있다. 오로지 배낭을 메고 버스와 배를 탄다. 걷다 지치면 경운기도 얻어 타면서 섬사람들이 먹는 밥상에 숟가락 몇 개 더 얹어보는 자유로움을 택했다. 섬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과 만나고 사람들을 만나며 낯선 세계로 들어가는 떨림을 즐긴다. 세 사람이 가는 여행이라면 ‘짝이 안 맞다.’ 고 말한다. 외톨이가 될까하는 염려는 기우다. 삼각관계의 안정감을 아는 우리들은 환상의 삼각형이라고 한다. 나를 왕언니라 부르는 동생 둘은 재주가 많다. 꼼꼼하게 일정을 짜고 경비를 계산하거나 길을 묻는다든지 난처한 지경에 위트로 잘 넘기는 동생들이다. 나는 그저 다음 코스를 놓치지 않게 서두르며 앞장 설 뿐이다. 혼자 있고 싶을 때는 ‘따로’이다가 못다 나눈 이야기가 있다면 ‘둘’이서 회포를 풀든지 합의할 것이 있으면 ‘셋’이 하나가 되어 밀고나가는 안전한 거리를 가졌다. 가깝지만 밀착하지 않고 떨어져도 데면데면하지 않는 거리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길 위에서 언제나 콧노래를 부르며 신바람 나는 여행은 계속되리라.
   삼각관계가 좋아 보이는 이야기를 어느 글에서 읽었다. 비행기 안에서 외국인과 나누었다는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미국에 사는 딸을 두고 집으로 가는 작가는 가족이 흩어져 사는 아픔을 말하고 싶었는데 옆자리의 그녀는 지금 동생이 사는 캐나다로 가는 중이며 페루에 사는 언니와는 가끔씩 전화로 안부를 나눈다고 했다. ‘러브 트라이앵글’이 아니냐고 덧붙였다. 멀리 있으면서도 서로 우애를 나누는 그녀의 커다란 스케일에 할 말을 잃었던 것 같다. 가족관계에서도 지나치게 밀착하려다 보니 마음고생이 심했던 경우를 생각하면 오히려 대단하고 부럽기까지 하다. 트라이앵글은 세 개의 모서리를 가졌지만 그 간격으로 맑은 음색을 내고 있지 않은가. 오케스트라에서 당당하게 제 목소리를 내면서 전체와 조화를 이루니 얼마나 화목한가.

   길을 나서면 위험을 알리는 표지판들, 특히 야간에 운전을 하면 건널목과 굽은 길, 미끄럼길, 낙석이 떨어질지 모르며 공사 중이거나 야생동물이 나오는 곳이니 주의하라는 야광표지 들이 어둠 속에서 또렷하게 부각된다. 무심코 지나쳤던 표지판들은 얼마나 많은 친절을 베풀고 있었던가. 살아가는 일도 그처럼 대부분 위험을 예고하지 않았을까. 단지 욕심과 성급함이 앞서서 보지 못했을 뿐이리라. 오늘도 새로운 길 위로 나선다. 믿거니 하고 방심하다가 함부로 한 일들이 부메랑이 되어 관계를 무너뜨릴지도 모른다. 내 앞에 안전 표지판 하나 가지고 산다면 어떨까. 사랑의 트라이앵글 소리가 아름답게 연주되리라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