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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8년 04월호, 통권198호 I 사색의 창] 사탕부케 - 김영곤

신아미디어 2018. 5. 26. 16:20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하나의 가치를 따지기보다 그 하나하나를 사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일상생활에서 순간순간을 사랑하고 미세하고 작은 것들에 대한 사랑이 생명을 키워나가게 한다. 그렇게 쌓아온 사랑탑은 아름다움이 되어 세상을 밝힐 것이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부부는 가업을 잘 이어받아 토기를 빚으며 살고 있겠지. 지금쯤은 명인으로 이름이 알려질 법도 한데 아직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가끔씩 그때 혼주가 빚은 토기를 바라보며 그들의 행복한 가정을 위해 화살기도를 바친다."






   사탕부케    -    김영곤

   하객들이 성당 안을 반쯤 채우고 있다. 혼배미사 시간이 가까이 온 것이다. 수녀님이 당황하여 나에게 급하게 다가온다. 무슨 일인가? 신부가 웨딩부케도 면사포도 없단다. 시간은 얼마 안 남았는데, 정작 당사자들은 아주 태연하다. 혼주들 역시 모든 준비가 다 잘된 듯이 앉아있다. 다행히 신랑은 양복 정장을 하였고, 신부는 개량한복을 입고 있다.
   혼인 서류를 꾸미면서 그렇게 단단히 일러 주었건만 결국은 사단(?)이 난 것이다. 본당 신부인 내가 혼인반지와 증인에 대한 준비는 강조하였으나, 정작 웨딩부케니 면사포니 하는 것에 대해서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결혼식을 하면 당연히 혼인 당사자들이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0년 전 당시 22세의 신랑, 신부다. ‘어려서 그렇구나.’ 하는 안타까움에 좀 더 잘해주려는 마음으로 서둘러 웨딩부케와 면사포를 준비하였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그 전년도에 주일학교 국민(초등)학생들로부터 받았던 영명축일 사탕꽃다발을 웨딩부케로 사용하였고, 면사포는 미사포와 어린이 첫 영성체 때의 화관을 사용하였다.
   바쁘게 준비를 끝내고 나니 예정시간보다 10분 정도 늦게 혼인미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혼인 당사자들도 혼주들도 하객들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주례자인 본당 신부와 미사 준비를 한 본당 수녀만이 당황하고 서두르고 진땀을 흘린 것이다. 본당 신부와 수녀의 정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린(?) 신혼부부의 환한 미소는 마냥 행복해 보인다.
   혼주는 ‘신라 토기’를 빚는 사람이다. 젊은 신랑이 2대로 가업을 이어받을 것이라 한다. 혼사 준비에 대해 아는지 모르는지 노부부는 모든 것을 성당에서 신부가 알아서 잘해 줄 것이라고 믿은 것 같다. 그들의 주름진 표정이 무척 편안해 보인다. 토기를 빚는 마음으로 단아하게 앉아 있다.
   토기를 빚을 때 흙을 손가락 굵기의 끈 모양으로 만들어 똬리를 틀듯 위로 끌어올리면서 모양을 잡아가는 방법이 있다. 순차적으로 만들어 간다고 할 수 있겠다. 일들도 매사에 순서가 있으니 그렇게 하는가 보다 하며 그들은 나를 바라본 것일까?
   한꺼번에 생각하지 말자. 실타래를 풀려면 그 끝을 쥐고 한 겹 한 겹 차분하게 풀어나가야 한다. 급한 마음은 실타래를 더욱 엉키게 만들고, 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지도 못한다. 삶을 풀어나가는 차분한 지혜가 필요하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이런 지혜에 대한 가르침은 참으로 많다. 그중 한 가지라도 마음 깊이 새겨 생활한다면 결코 불행해지지 않을 것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한 가지이고 나머지는 부차적인 것들이다. 핵심가치에 대한 집중과 선택이 오늘날의 화두다.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핵심가치는 무엇인가? 삶에 있어서 가치 순위는 어떻게 정해지는가? 개개인은 그 가치 순위에 따라 시간과 생각과 힘을 제대로 투자하는가? 핵심적인 것과 부차적인 것의 차이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아름답고 행복한 삶은 가치 순위와 어느 정도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가?
   머리가 복잡해진다. 마치 거대담론을 논하고 있는 기분이다. 자잘한 일상에 의미 부여를 너무 많이 하는 것은 아닐까? 단순하게 생각하자. 삶을 복잡하게 생각하면 생각하는 만큼 피곤하게 살게 되고 행복하다는 느낌을 잃어버리게 된다. 정리된 삶의 모습은 복잡하지 않다. 있는 것도 없는 것도 그 어떤 것도 나 자신의 삶에 있어 행복과 불행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자.
   이참에 한번 생각해 보아야겠다. 결혼식에 웨딩부케와 면사포가 꼭 있어야 하는가? 물론 역사적인 유래가 어떻고, 의미가 어떻고 하며 사설들을 붙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 없이도 결혼식은 가능한 것이 아닌가? 동양에서는 웨딩부케도 면사포도 사용하지 않는다. 서양의 풍습인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도 아닌데, 오늘날 우리는 부차적인 것들에 비중을 너무 많이 두고 있지는 않는가?
   어쩌면 모르는 것이 마음을 더욱 평화롭게 만들 수 있겠다. ‘가짜뉴스’라는 것이 나도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차라리 모르고 있는 것이 마음 편하다. 가까운 사이에서 괜한 이야기를 나누다 서로 마음만 상하고 가슴만 답답해지고, 타인의 무지에 대해 무시하는 마음이 생긴다. 내가 그렇듯 상대 역시 나를 무시할 것이다. 결국 평화와 행복은 저만치 달아나 버리고 만다.
   누구의 잘못이나 허물을 있는 그대로 지적하는 것은 정의롭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해석을 붙여 그것 자체가 전부인 것처럼 말한다는 것은 분명 선한 모습은 아니다. 사람은 자기가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리려고 한다. 반면 자기가 믿고 싶지 않다면 진실인 것도 믿지 않는다. 어쩜 인간의 모순이 이런 데서 드러나는 것 같다. 편견을 가진 우리들에게 모순은 당연한 것이다.
   아름다운 마음과 눈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은 유지된다. ‘선함에 의한 기도와 희생이 악에 기운 이 세상을 멸망으로부터 지켜내고 있다.’고 돌아가신 이갑수 주교님은 기회 있을 때마다 누누이 말씀하셨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는 것은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결혼도 하지 않은 천주교 신부가 결혼식을 주례한다. 어찌 보면 이상한 모습으로 비치지는 않을까? 선입견과 편견이 때로는 좋은 일을 할 때도 있구나! 관습적인 것에 벗어나서는 안 되겠다는 단순한 마음으로 준비해 준 사탕부케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나하나의 가치를 따지기보다 그 하나하나를 사랑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일상생활에서 순간순간을 사랑하고 미세하고 작은 것들에 대한 사랑이 생명을 키워나가게 한다. 그렇게 쌓아온 사랑탑은 아름다움이 되어 세상을 밝힐 것이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부부는 가업을 잘 이어받아 토기를 빚으며 살고 있겠지. 지금쯤은 명인으로 이름이 알려질 법도 한데 아직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가끔씩 그때 혼주가 빚은 토기를 바라보며 그들의 행복한 가정을 위해 화살기도를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