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2018년 5월호, 제199호 신인상 수상작] 작은 상자 - 박보라
"이모는 가벼운 몸으로 그렇게 그리던 고향, 춘천으로 ‘작은 상자’가 되어 돌아왔다. 외삼촌 손에 들린 그 작은 상자에는 돌아온 이모의 무게가 적혀 있다. 13.9g……."
작은 상자 - 박보라
4월 7일은 엄마의 하나밖에 없는 언니, 우리 이모가 돌아가신 날이다. 나에게 엄마나 다름없는 분이셨기에 이모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
영화 <국제시장>이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미국 내에서도 개봉됐을 때, 난 그 영화를 보며, 우리 이모를 떠올렸다. 외삼촌도 월남전에 다녀오셨지만, 이모 역시 국위선양하겠다고, 45년여 전 고국을 떠났던 파독 간호사셨다. 이모는 영화의 여주인공처럼 한국으로 돌아오지는 않으셨으나, 독일에서 결혼하여 살면서 꾸준히 친정의 살림 이모저모를 챙기셨던 맏딸이다.
지난 3월 말 오랜만에 이모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을 때, 이모가 갑작스레 암 선고를 받으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로부터 다시 1주일 만에 사촌오빠로부터 비보를 전해 듣게 됐다. 이 모든 일이 단 2주 만에 장맛비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실감이 나지 않아 눈물도 많이 흐르지 않았다. 엄마도 그러신지 연신 믿을 수 없다는 말만 되뇌실 뿐이었다.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엄마를 모시고 간 독일의 날씨는 서글픈 우리 마음만큼이나 싸늘했다. 이모가 없는 집은 15년 전 찾아뵈었을 때 느꼈던 따스함은 온데간데없고, 허전함과 공허감으로 썰렁했다.
이모가 쓰시던 방, 이모가 누우셨던 침대에 가 누워 보았다. 마치 내가 이모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나이트 스탠드를 보니, 추억에 관한 몇 권의 소설책과 시집이 눈에 띄었다. 스르륵 손으로 책장을 훑자, 사이사이 오래된 편지지 몇 장과 사진이 떨어져 나왔다. 침대 시트 위로 사뿐히 떨어진 편지는 십 년도 더 된 우리 엄마의 편지였다. 소포를 보내며 시간이 없어 대충 적어 보낸다는 편지에는 내 유학을 상의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도 적혀 있었다. 사진 속 남자는 이모가 한국에서 결혼까지 생각했던 옛 정인이라고 엄마는 말했다. 외할머니가 반대하셔서 홧김에 다른 여자와 결혼을 했단다. 그 옆에는 한국 가족들의 연락처와 내 미국 연락처를 적은 작은 메모지도 보였다. 한 번도 이모 손으로 직접 내게 전화를 하시지 않으셨기에 내 연락처가 없으신가 했더니, 뜻밖에도 메모지에 꾹꾹 정성 들여 쓴 글씨체로 쓰여 있었다. 마지막까지 읽으셨던 듯한 시집을 펼쳐 보았을 땐, 작은 여자아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가득 들어 있었다.
‘그리움.’
이모는 그리웠던 모든 것을 기억 속에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가슴 한편에 그 그리움이 아련하게 느껴져 왔다. 타국살이, 그 그리움을 나도 잘 알기에 이모의 마지막 눈길이 소낙비처럼 지나가는 듯 나는 몸을 가볍게 떨었다. 나는 머리를 들고 이모가 계시지 않는 집안 여기저기를 살짝 둘러보기도 했다. 그리움을 다독이며 견디는 것. 그것은 그저 그리움에 사무친 마음을 후비는 것보다 더 힘겨운 밤이었을 것이다. 한적한 함부르크 외곽 도시의 밤은 제법 시끄러운 새들의 지저귐 속으로 그렇게 모두 지나가 버렸다.
엄마는 장례식을 기다리는 며칠 동안 이모 짐을 정리하며 보내자고 제안하셨다. 그렇게 시작한 것이 냉동고 정리였다. 쓰레기 봉지와 바구니를 가까이에 끼고 앉아 냉동고 문을 열었다. 날짜가 적힌 온갖 봉지들이 퀴퀴한 냄새와 함께 꾸역꾸역 들어 있었다. 오랫동안 사람 손이 안 닿았던 것 같은, 창고 깊은 안쪽의 냉동고 세 개는 어느 것이 옛날부터 있었던 것이고, 어느 것이 최근에 산 것인지 한눈에 식별됐다.
냉동고 속에는 십여 년 전 내가 보냈던 도토리묵 가루, 엄마가 보내신 태양초 고춧가루가 봉지째 쌓여 있었다. 엄마는 짧게 한숨을 내뱉으셨다. 이모에게 보낸다고 한국에서도 최상품만 모아서 드린 것인데 그대로 냉동고에 보관하셨다니. 아무리 함부르크에서 한국 식재료를 구하기 힘들다 하지만, 아낄 것이 따로 있지. 바로바로 먹어야 하는 것들을 쌓아 놓고만 사셨는지.
반나절을 냉동고와 씨름하고 나서 안방에 들어오니 여기도 만만치가 않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 또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30여 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께 드리려고 샀다가 못 드린 듯 보이는 최고급 낚싯대, 낚시를 몹시 좋아하셨던 아버지를 향한 맏딸의 이야기가 들렸다. 동생을 생각하며 틈틈이 사다 나른 장롱 속 이불과 옷에선 동생을 향한 큰언니의 이야기가 들렸다. 그리고 책상 속 서류봉투 안의 보험서류를 보면 손녀들의 미래를 걱정했던 할머니의 이야기가 들려왔다.
거실 테이블 곁엔 가족들이랑 함께 가려고 보아두었던 여행상품 카탈로그가, 식탁 옆에는 치매에 걸린 남편의 약들이 요일별로 잘 정리되어 있다. 타지에서 일하느라 자주 볼 수 없는 아들의 엽서와 사진들이 잘 보이는 벽에 나란히 걸려 있다.
몸에 좋다고 엄마가 보낸 고려인삼도 몇십 년째 유리장식장 안에 고이 장식되어 있고, 중국상점에서 사다 놓은 단무지와 짜장이 냉장고 문짝에 숨어 있다.
“얼마나 더 살겠다고 이렇게 잔뜩 쌓아놓고, 먹지도, 입지도, 쓰지도 않고……. 참 나…….”
엄마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가슴속에 치미는 뜨거운 것들을 쓸어내리시는 듯했다. 한국 전쟁 때 어린아이의 몸으로 그 무서운 시절을 참아내고, 가족들의 생계와 나라의 미래를 책임지러 타국으로 건너간 이모. 동양인이라고는 두 집밖에 안 되는 동네에서 어깨 펴고 자신의 삶을 견뎌내야만 했던 그 무거웠던 짐. 이모에게 그 무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나 역시 결혼과 동시에 미국에 이민 와서 세 아이의 엄마가 되고, 이방인으로 살아보니 이모의 삶을 아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족이 있는데도 외롭고, 뭔가 끊임없이 채워지지 않는 그 공허함.
‘내일모레 한국으로 가는 친구 편에 작은 상자를 보낼게.’
일주일 전, 독일 사촌오빠의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이모를 화장하고, 상조회사에서 일부는 이모가 원하시는 수목장으로 나무 밑에 묻고, 일부는 모국인 한국으로 보낼 수 있도록 한 그 작은 상자를 이제야 한국에서 받게 되었다.
이모는 가벼운 몸으로 그렇게 그리던 고향, 춘천으로 ‘작은 상자’가 되어 돌아왔다. 외삼촌 손에 들린 그 작은 상자에는 돌아온 이모의 무게가 적혀 있다. 13.9g…….
박보라 ---------------------------------------------
제10회 시애틀 문학상 수필부문 대상, 제11회 시애틀 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가작, 2018 중앙 신인문학상 단편소설 부문 장려상, 한국 문인협회 워싱턴 지부 수필분과 회원수필창작반 수료.
당선소감
요즘 주위 사람들은 제게 부럽다고 합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는 말입니다. 세상사가 원한다고 다할 수 있는 건 아니니 저처럼 마음껏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이 내리신 큰 상일 것입니다.
오늘도 조용한 새벽, 소박하게 저만의 시간을 엽니다. 분명 창작이란 늘 고독한 싸움을 요구하지만, 그 시간이 가슴 설레게 행복한 저는 이것을 운명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이 길을 걷게 해 주신 하나님과 부모님, 함께 걸어 주시는 선생님들, 곁에서 응원해 주는 가족 모두 감사합니다. 부족한 제 글에 공감하여 주신 심사위원들께는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매일매일 글이란 씨를 성실히 심다 보면 언젠가는 시애틀의 푸른 나무숲처럼 풍성한 산을 이루리라 오늘 밤도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