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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8년 03월호, 통권197호 I 사색의 창] 산수유 - 이인환

신아미디어 2018. 4. 25. 08:11

"언니가 아픈 것이 노란 산수유 꽃 때문인지 빨간 산수유 열매 때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가운데 내 마음 한구석에 붉은 그리움이 들어와 자리한다. 나도 언니처럼 이 가을에 상사병이라도 앓게 되는 것은 아닐까 괜한 걱정을 한다. 그리움은 잡을 수 없는 아련함이라 좋다. 정답이 없는 삶이라 좋다."






   산수유    -    이인환

   산수유 푸른 잎사귀가 붉은색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계절의 변화를 자연에서 느낀다. 나뭇잎의 색깔이 달라지고 하늘의 구름도 달라진다. 하늘색도 달라진다. 하늘색은 더 파랗게 변하고 구름은 양떼구름이나 새털구름이 많아진다. 결실의 계절 가을이 온 것이다.
   나뭇잎이 떨어지기엔 아직 이른 시기다. 빨간 열매가 꽃처럼 매달려 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덕분에 열매는 붉은 보석처럼 빛난다. 발걸음을 멈추고 바라본다. 가을바람이 부드럽게 귓가를 스친다. 같이 바라보던 그가 손을 뻗어 산수유 열매 몇 알을 따서 내게 건넨다. 산수유를 건네는 그의 얼굴이 붉은 미소로 잔잔하다. 산수유 빨간 열매 몇 알이 내 손에 놓인다. 소중한 보물 같다. 손에 놓인 빨간 산수유 열매를 한참을 들여다본다. 귀한 선물인 양 조심스레 간직한다. 산수유열매처럼 고운 그 사람의 착한 심성이 내게 전해진다. 착한 사람을 만나면 내 영혼도 맑아지고 순해진다.
   산수유 열매를 손에 꼭 쥐고 있는 내게 그는, 구례군 산동면에는 산수유 시배목이 있다고 알려준다. 1000년 전 중국 산동성山東省에서 시집오는 처녀가 산수유 가지를 가지고 와서 키웠으며, 산수유 마을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그곳의 지명도 산동면이 되었고 지금은 산수유 시배지로 알려져 있으며 관광지가 되었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직접 가보지 않았지만 설명만으로 충분히 가본 것 같다.
   나는 천 년 전 산동성 아가씨가 산수유 가지를 가지고 시집오는 모습을 그려본다. 나무 심어 십 년이라는 말이 있다. 십 년만 기다리면 나무는 금방 자란다. 십 년이라는 세월은 강산을 변하게 하는 세월이지만 나무가 숲을 이룰 수 있는 세월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진천 송씨 가문의 며느리가 혼수로 변산 솔씨를 가지고 시집와서, 그 솔씨를 익산시 왕궁면 일대에 심었다는 기록도 있다. 이 며느리의 친정에서는 큰딸에게는 엽전 한 말을 주었고, 둘째 딸에게는 중국의 명품 벼루였던 단계연端溪硯을 주었으며, 셋째 딸에게는 변산의 소나무에서 채취한 솔씨 서 말을 혼수품으로 주었다고 한다. 역시 셋째 딸은 선도 안 보고 데려간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은 것 같다. 이 며느리는 시집갈 때 다른 것은 다  필요 없고 변산 솔씨 서 말을 요구했다고 한다. 어떻게 이런 지혜가 있었는지 잘되는 집안은 가지 나무에 수박 열린다는 말이 실감이 난다.
   산수유 열매가 정말 보물처럼 생각돼서 종이에 싸서 집으로 가지고 온다. 작은 접시에 담아 식탁에 올려놓는다. 식탁에 꽃이 핀 듯이 주위가 환해진다. 잠시 그리움이 찾아오고 이내 평정심을 찾는다.
   나는 산수유 꽃을 좋아한다. 산수유 꽃을 좋아하는 이유는 봄소식을 진달래나 개나리보다 먼저 전해주기 때문이다. 마치 노란 우산을 펼쳐 놓은 것 같은 꽃 모양도 보기에 좋고 아직은 이르다 싶은 날씨에 피기 시작하는 산수유의 개화시기도 마음에 든다.
   숫자를 유난히 따지는 중국에서는 9월 9일 중양절에 산수유 가지를 머리나 가슴에 꽂고 액을 피하려고 국화주나 국화차를 마시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 유명한 시불詩佛 왕유王維의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홀로 타향에 떠도는 나그네
명절을 만날 때마다 육친의 그리움 배나 더하네
아득히 알겠노니 형제들이 높은 산에 오를 때
두루 산수유 가지 꽂으면서 한 사람이 적은 것을


   왕유가 고향을 떠나 있으면서 17세 때 지은 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만 이런 풍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에도 정월 대보름에 액을 피하는 풍습이 있다. 부럼을 깨물고 보름달을 바라보며 무병장수를 기원하였다. 다른 지방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 고향에서는 참깻단을 식구 수대로 만들어 보름달을 바라보며 태우는 풍습이 있었다. 중국에서도 산수유 가지를 흔들며 액을 피하는 세시 풍습도 있다고 들은 적이 있다.
   산수유 열매를 보고 있노라니 슬픈 기억이 떠오른다. 효심은 깊었지만 고생 많이 하고 자란 친척 언니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그 언니는 노란 산수유꽃이 흐드러진 어느 봄날 아주 심한 상사병을 앓았다. 산수유 노란 꽃이 우산처럼 빙빙 돌아서 언니는 머리가 빙빙 돌았나보다. 거기에 동쪽에서 부는 샛바람은 언니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때부터 언니는 아프기 시작한 것 같았다. 언니에게 산수유는 그리움의 꽃이기도 했지만 원망의 꽃이기도 했다. 가을의 산수유 빨간 열매는 고달픈 삶의 연장으로 생계수단의 열매였다. 산수유 열매는 과육이 몹시 시고 씨가 커다랗고 딱딱해서 그냥 먹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한약재로는 쓰임새가 많다. 여러 가지 성분이 몸에는 좋은 효능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 당시 농촌에서는 산수유 열매가 가계에 보탬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문제는 씨를 빼는 작업이 어렵고 힘든 일이었다. 앞니로 씨를 빼서 말려서 건재상에 팔았다. 이 과정 때문에 이가 거의 망가졌다고 한다. 지금은 다른 방법으로 씨를 빼겠지만 그때는 그랬다. 나는 그 때도 그 언니의 이가 다 망가졌다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 안됐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었다. 가슴 아픈 현실은 그렇게 농촌에 있었다.
   언니가 그 남자를 얼마나 사모했는지 그 깊이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언니는 집 앞에 산수유가 만발했을 그 무렵부터 몹시 아프기 시작했다. 그 아픔은 계속됐고 의사도 고치지 못하는 병으로 발전했다. 오죽 아팠으면 자기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상주 노릇도 못 했을까 생각하니 안타깝기만 하다.
   얼마 전 고향 친구의 아들 결혼식에 갔을 때였다. 문제의 그 선배가 양평 전철역 앞에 서 있었다. 그 선배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지만 나는 그를 한 눈에 알아보았다. 그 선배의 얼굴 위로 언니의 얼굴이 겹쳐졌다. 나는 그 선배에게 조용히 다가갔다.
   “○○○ 선배 아니세요. 저는 ○○○ 동생이에요.”
   그러나 그것뿐 언니 얘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그는 언니가 지금껏 아픈 것은 아마 모를 거다. 그리고 안다 해도 어쩔 도리가 없을 거다. 아픈 언니가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마음속으로 빌어보지만, 그것 또한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언니가 아픈 것이 노란 산수유 꽃 때문인지 빨간 산수유 열매 때문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가운데 내 마음 한구석에 붉은 그리움이 들어와 자리한다. 나도 언니처럼 이 가을에 상사병이라도 앓게 되는 것은 아닐까 괜한 걱정을 한다.
   그리움은 잡을 수 없는 아련함이라 좋다. 정답이 없는 삶이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