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숙자 수필집 "지느러미의 여유"를 소개합니다.
"아지트 밭에는 오늘도 내 손길을 기다리는 잡초와 돌멩이가 뒹군다. 더러 뽑기도 하고 주워내지만 그냥 놔두기도 한다. 괜찮다. 이미 그들은 내 친구임을 자처하고 있으니까. 짝사랑에 길들여진 나는 게으름을 즐기지만 아주 가끔 호미를 들고 그들을 겁주기도 한다."
"엉킨 과거의 흔적을 안았음에도 가을비에 젖은 산은 그렇게 쓸쓸해 보이지 않는다. 표내지 않고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배고픈 새끼를 끌어안고 토닥이는 어미의 품처럼, 넉넉함이 가을비의 차가움을 채운다."
갓 버무려 낸 겉절이도 맛있지만, 오랫동안 깊은 장독에서 익은 묵은지도 감칠맛이 있습니다. 언제 먹어도 물리지 않는 묵은지 같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약속 없이 오다가다 만나도 마음이 편한 친구 같은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멋 부리지 못하고, 꾸밈에 서툴러서 조금은 촌스럽지만 만나면 진솔하게 속정을 나누는 그런 글, 그런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
웃음과 눈물이 있어 지난 세월을 잘 보낼 수 있었습니다. 기분 좋은 일에는 크게 웃었고, 힘이 들고 어려울 때는 눈물이 있어 견딜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니 그래도 기쁘고 좋은 날이 많았습니다. 고맙고 고맙습니다.
“단맛이라 생각하면 그 어떤 쓴맛도 덜 쓰고, 쓴맛이라 생각하면 조금 쓴맛조차 더 쓰게 느껴진다.”는 말이 저는 참 좋습니다. 정오를 넘긴 해지만 노을까지는 시간이 꽤 남아 있다고 봅니다. 붉어서 아름다운 저녁놀을 꿈꾸며 남은 시간을 아끼렵니다. 부족함에 많이 망설였지만 제 어깨를 두드려준 가족의 힘을 믿고 모아진 글들을 정리해보는 용기를 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저자의 책을 내며 에서
저자 박숙자는 전주 출생으로 대전MBC 2회 금강보호백일장 대회 산문부 최우수상을 수상하였고, 한국문인협회, 수필과비평작가회의, 호서문학회, 전원문학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수필집으로는 『때때로 찍는 쉼표』, 『지느러미의 여유』가 있다.
목 차
꽃이 온다, 봄이 핀다 … 12
아마추어 마라토너 … 16
엇박자 … 21
웃음소리 … 25
그녀의 미소 … 29
겉과 속 … 33
틈새 바람 … 37
바람의 고비 … 41
2부
명약이 따로 있나 … 46
설탕과 소금 … 51
빈 뜰에서 … 56
삭정이와 라일락 … 60
공존 … 64
진실게임 … 68
생인손 … 73
내 마음의 강둑 … 77
연鳶 줄 … 81
민낯 … 85
3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 90
과속방지턱 … 94
고리 … 98
한랭전선 물러나다 … 102
사람이 봄나물인 걸 … 106
마트로슈카 … 110
지느러미의 여유 … 114
점백이 … 118
냉면, 그리고 친구들 … 122
물이 물이 아니잖아 … 126
4부
한밭벌의 시비詩碑를 만나다 … 132
불꽃으로 살다 … 150
또 하루를 살 수 있는 힘 … 155
유혹의 덫 … 159
카우람 … 163
붉은 강가에서 … 167
덕수궁, 노을빛과 쪽빛을 품다 … 172
가네코가 된 송신도 … 177
어찌 단풍만 붉으랴 … 182
5부
탁구, 오래된 기억 속에서 … 188
여보, 여기 안경 … 193
본처와 애첩 … 197
배냇저고리 … 201
돌띠 … 205
은서 … 208
흑백사진 두 장 … 212
처음 느낌, 그대로 … 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