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2018년 01월호, 통권195호 I 사색의 창] 늙은 상추와 깃발 - 이명길
"늙은 상추라고 뽑아 버릴 수가 없다. 가뭄을 위로하듯 바가지로 물을 뿌린다. 두텁고 질겨진 잎이 서서히 생기를 찾는다. 잎을 몇 장 따내자 등짐이라도 내린 듯 누웠던 줄기가 일어선다. 일대기를 이루려는 의지인지 여전히 씨앗을 놓치지 않는다. 따놓은 잎을 간추리자 몇 종류의 생물이 상추 줄기를 타고 오른다. 민달팽이, 여치, 개미, 이름도 모르는 날벌레까지. 상추 속이 저것들의 집이었던 것이다. 질긴 가뭄을 견딘 늙은 상추가 붉은 깃발에 스러지지 않은 할머니와 다를 바 없다. 짧은 생이 그저 안타깝다."
늙은 상추와 깃발 - 이명길
텃밭에 상추가 나무처럼 자랐다. 가뭄 탓에 더위를 견디느라 키만 잔뜩 키웠다. 일부는 줄기 끝에 노란 꽃을 이고 땅에 드러누웠다. 싱그러움이 사라진 상추를 보자 여린 잎을 솎아내던 때가 언제였던가 싶다.
시골에 다니러 갈 때면 상추는 식탁에서 빠지질 않았다. 여린 것으로 쌈을 싸 먹거나 겉절이를 해서 먹으면 내 안으로 푸른 물이 드는 것 같았다. 촘촘히 솟은 것은 솎아 주면 성장 속도마저 빨랐다. 겉잎을 몇 장 떼어도 금세 속잎을 키우고 뼘까지 넓혀 주변에 인심 내기도 좋았다. 그런 생명체여서인지 상추도 한 세월이 무상하다는 것을 아는 듯하다. 그러기에 씨앗을 품고 저리 억척스레 버티는 것이 아닐까.
마을 곳곳에 붉은 깃발이 꽂혔다. 하천 정비 공사로 길을 넓히겠다는 표시였다. 외지에 마련한 집터여서 자주 가질 못해서인지 동네 이장 이하 관계자들은 내 의사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농막 근처에 깃발을 두어 개 꽂아 두었다. 가뜩이나 좁은 땅이 잘리는 건 못마땅한 일이지만 기계와 인간의 소음에 절여진 도시인에게 하천이 하는 역할을 떠올려보면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앞집 할머니 집이 사라지게 되었다. 세월을 삭여 볼품없어진 집은 터까지 작아 보상금이 뻔했다. 그 돈으로 낯선 곳에 가서 새 터전을 마련하기는 무리였다. 더구나 할머니는 연세 탓인지 이 집에서 여생을 마치겠다는 생각이 단호했다. 심지어 죽을 날이 가까운 몸을 어딜 가라느냐며 화를 냈다. 나를 찾아와서는 “절대로 도장 찍으면 안 된데이!”라며 우격다짐까지 보였다.
할머니 집은 구석구석 묵은 때가 보였다. 할머니가 시집온 이후 엄청난 가난을 견디고서 마련한 첫 번째 둥지라니 그 세월이 오죽하랴. 이 집에서 오 남매를 낳아 키우고 출가시켰으며, 농사밖에 모르던 할아버지도 여기서 돌아가셨다. 한 가족사를 고스란히 새긴 집이라서인지 문짝 하나를 잘못 건드리면 서까래까지 내려앉을 것 같다. 그런데도 노구를 뉠 수 있는 이 집이 할머니에게 지상의 낙원인 것을 어쩌겠는가.
동네에서 인심 좋기로 소문난 할머니지만 공사 진행에 관한 회의가 거듭될수록 기세가 더해졌다. 늙은 어미의 심정을 이해하는 자식들까지 찾아와 군수 앞에서 집단 횡포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집은 할머니에게 남은 생의 전부인지 통장의 동그라미보다 절실해 보였다. 외롭고 쓸쓸함도 동고동락하면 나무 수피처럼 단단해지는 걸까. 늘그막에 자식네로 옮기면 쓸모없는 짐짝 같을 거라 숨 쉬어도 사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고 노모를 받아줄 자식 하나 없진 않을 텐데 여길 벗어나면 다 잃는 줄 알았다.
농촌이지만 옛 정취가 묻혀가는 건 사실이었다. 현대식 건물에 농사용 시설물이 자동식으로 설치되고 전원주택도 여러 채 들어섰다. 수년 전 개천을 덮었던 길에는 경운기만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농작물을 실어 나르는 트럭이며 버젓한 승용차가 하루에도 수차례 드나들었다. 그러기에 개천의 물꼬를 살리고 길을 넓혀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 반면에 물꼬가 마른 것은 오랜 옛일 아니겠냐며 홍수로 범람할 일도 없는데 개천을 열면 사후 관리가 더 심각할 거라고도 했다. 그 와중에 평생 지녀온 땅을 내놓는 것이 도무지 용서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진전 없는 회의가 거듭되는가 싶더니 공사가 무마되었다는 통보가 왔다.
아랫마을까지만 공사하고 이곳은 그대로 두겠단다. 할머니에게는 천만 다행한 일이었다. 마을의 미래를 소수에 의해 결정하는 것은 아닐 테지만 요지부동이던 할머니의 얼굴에 볕이 들 것 같았다. 대신 어릴 적 빨래터를 떠올리며 물소리로 하루를 열겠다던 내 머릿속 그림은 단번에 지워야 했다.
개발이란 명칭을 쓴 일은 집단적 이기심과 개인 삶의 마찰을 가져오기 마련이다. 삶의 질을 높이느라 길도 넓히고 개천도 단장한다. 마땅한 일임에도 여기에 찬반이 따른다. 그럴 때면 대개 다수결로 결정권을 얻게 된다. 그렇다고 소수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는 건 세상의 모든 일이 사람으로 향해 있어서다.
깃발이 희끄무레하다. 색이 바랜 탓인지 할머니 간담을 서늘하게 하여 무색해서인지 소심하게 바람을 맞는다. 이제 할머니는 낡은 집에 앉아 힐끔힐끔 밖을 내다보며 지나가는 발길을 센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집으로 이 집만 한 것이 있겠냐는 듯 야윈 감나무 그늘마저 좁은 마루에 누웠다.
늙은 상추라고 뽑아 버릴 수가 없다. 가뭄을 위로하듯 바가지로 물을 뿌린다. 두텁고 질겨진 잎이 서서히 생기를 찾는다. 잎을 몇 장 따내자 등짐이라도 내린 듯 누웠던 줄기가 일어선다. 일대기를 이루려는 의지인지 여전히 씨앗을 놓치지 않는다. 따놓은 잎을 간추리자 몇 종류의 생물이 상추 줄기를 타고 오른다. 민달팽이, 여치, 개미, 이름도 모르는 날벌레까지. 상추 속이 저것들의 집이었던 것이다. 질긴 가뭄을 견딘 늙은 상추가 붉은 깃발에 스러지지 않은 할머니와 다를 바 없다. 짧은 생이 그저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