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2018년 01월호, 통권195호 I 세상마주보기] 어허라 사랑 - 이행희
"‘되면 한다.’ 요즘 내 모토는 ‘하면 된다.’가 아니라 ‘되면 한다.’이다. 나이 지긋한 이가 ‘하면 된다.’며 너무 설쳐도 주위 사람이 피곤하다. 되면 한다. 안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일단 해본다. 그리고 할 만큼 다 해보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다.’로 끝나지 않는가. 안 한다는 말이 어디 있나. 부정적 체념이 아닌 긍정적 수용이다. ‘하면 된다.’며 무작정 덤비는 막무가내 정신은 젊은이들에게 물려준다. 나는 이제 한 발짝 여유를 갖고 ‘되면 한다.’"
어허라 사랑 - 이행희
되었다. 마음속으로 무릎을 친다. 청소기를 돌리다가 콧소리로 멜로디를 흘리고 있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낮은 소리로 계속 흥얼거려 본다. 중간에 재생이 안 되는 블랙홀 부분이 두어 군데 있지만 반 넘어 따라할 수 있다. 가사도 절로 몇 줄 읊어진다. “허락도 없이 떠날 사랑 하나가 웃으면서 오~고 있네.”
여기까지가 어렵다. 이제 시간문제다. 국민 가수 주현미의 <어허라 사랑>을 배우는 중이다. 요 며칠간 시간 날 때마다 무한 반복으로 듣고 있다. 외국어가 입에서 나오려면 먼저 주야장천 들어야 하고 글을 잘 쓰려면 그 전에 머리에 쥐가 나도록 읽어야 한다. 노래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노래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밥할 때에도 앉아 쉴 때에도 밤낮으로 듣는다. 노래 안에 풍덩 잠겨 지낸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멜로디와 가사가 무의식 속에 각인이 된다. 어느 순간 내 입에서 저절로 멜로디가 흘러나오면 반 이상은 된 것이다.
얼마 전 지인들과 노래방에 갔다. 가을 초입이라 뒷마당에 소담하게 피어 있던 과꽃이 떠올라 동요 <과꽃>을 불렀다.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딱 저 같은 노래 부르네, 하는 표정들이다. 반응이 좋지 않다. 무엇이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노래를 하나 더 하고는 내 몫은 다했다 싶어 살금살금 뒤로 물러나 의자에 앉았다.
열정적인 청중 모드로 들어갔다. 못 부르면 듣기라도 잘해야 하니까. 나는 선천적으로 흥이 모자라는 듯하다. 마음은 나도 일어나서 리듬 따라 신나게 흔들며 놀고 싶다. 그러나 흥이란 것이 내 몸속에서 일어나 주지를 않으니 될 리가 없다. 주로 구석에 조용히 앉아 있는 편이다. 그래도 분위기 망친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 많이 노력했다. 발라드가 나오면 두 팔을 높이 들고 박자 맞추어 오른쪽 왼쪽으로 열심히 흔들어 주었다. 신나는 곡이 나오면 큰 동작으로 박수를 열렬히 쳤다. 곡이 끝나면 유후~ 함성도 질렀다.
그런데 한 곡 더 하란다. 뭘 할까. 뭘 하지. 달아오른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노래가 무엇일까. 곡명 책자를 열심히 훑는다. 이거다. <단장의 미아리고개>. 빠르고 구성진 트로트로 골라본다. 고저장단을 살려 최대한 꺾어가며 열창을 한다. “샘이 이런 노래도 하나?” 깔깔 웃으며 반응이 좋다. 역시 내 나이에는 트로트를 할 줄 알아야겠군. 아무래도 이런 노래를 하나 더 준비해야겠다.
버스에서 우연히 들은 노래가 하나 떠올랐다. 가사가 상큼했다. 주현미의 <어허라 사랑>. 양인자 작사, 김희갑 작곡. 양인자와 김희갑은 부부이면서 각자 국내 최고봉의 대중가요 작사가와 작곡가이다. “어라 어허라 사랑이 오네/ 나를 나를 울리려고 사랑이 오네” 시작부터 내 관심을 끈다. “허락도 없이 떠날 사랑 하나가/ 웃으면서 오~고 있네.” 흠, 괜찮은데. 이어서 “달콤하고 변하기 쉬운 입술/ 불 내 놓고 물 뿌려본들” 캬, 가사 좋은 걸. 이제 클라이맥스다. “이건 아니야 고개를 돌리려다/ 그리움만 보고 말았네.” 아, 쓰러진다. 멜로디가 미묘하게 오르내리며 사람을 밀고 당기다 살짝 놔버린다. 안타까움을 최대치로 올린다. 명곡이다. 밥 딜런이 아니라 양·김 부부가 노벨문학상을 받았어야 하는데…. “어라 어허라 눈물이 된 사랑/ 노가리 너댓 축은 죽어나겠네” 마무리까지 완벽하다. 이렇게 멋진 노래가 왜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 발표한 지 여러 해 됐다는데.
문제는 멜로디가 따라 부르기 어렵다는 거다. 꽤 높이 올라가는 부분이 있고 음의 흐름이 드라마틱해 따라가기가 상당히 난해하다. 내가 이 노래를 마스터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래도 도전은 해보자. 열심히 해보고 어느 정도의 성과가 나면 끝까지 간다. 노력했는데도 안 되면 하차하면 되지.
‘되면 한다.’ 요즘 내 모토는 ‘하면 된다.’가 아니라 ‘되면 한다.’이다. 나이 지긋한 이가 ‘하면 된다.’며 너무 설쳐도 주위 사람이 피곤하다. 되면 한다. 안 한다는 것이 아니다. 일단 해본다. 그리고 할 만큼 다 해보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한다.’로 끝나지 않는가. 안 한다는 말이 어디 있나. 부정적 체념이 아닌 긍정적 수용이다. ‘하면 된다.’며 무작정 덤비는 막무가내 정신은 젊은이들에게 물려준다. 나는 이제 한 발짝 여유를 갖고 ‘되면 한다.’
아직까지는 되고 있다. 어려운 노래를 반 너머 익힌 것이다. 그러니 계속 ‘고’다. 이제 좀 더 연습하여 다음 기회에 멋지게 부르면 된다. 물론 객관적으로 다른 이들이 보기에 멋진 것은 아닐 수 있다. 노래를 꼭 잘 부를 필요는 없다.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면 반은 성공이다.
이 노래가 성공하면 조용한 발라드 한 곡도 내 것으로 만들어야겠다. 때로 분위기 있는 곡도 필요하다. 찍어 놓은 것이 있다. 이소라가 부른 <바람이 분다>이다. 사실은 이 곡이 맘에 들어 전에 연습을 좀 했는데 고음 부분에서 올라가지 않아 포기했었다. 요즘 좋은 정보를 하나 들은 게 있다. 높은 노래는 노래방 기계에서 키를 낮추어 부르면 된단다. 그래서 다시 연습할 생각이다. 지인들 앞에서 이왕이면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고 싶다.
<어허라 사랑> 프로젝트는 진행 중이다. 나는 ‘되면 하는’ 사람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