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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과비평 2017년 9월호, 사색의 창] 만남 - 박범수

신아미디어 2017. 10. 13. 15:39

"어떤 인연도 흘러가는 것. 만남의 시간에 성실함을 다할 뿐, 붙들 수 없는 게 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잊힌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난시와 고별을 했다."





   만남  박범수


   난시는 필리핀 여성이다. 40대 나이로 골프장에서 경기 보조원(캐디)으로 일하는 노동자이다.
   몇 년 전 초여름, 오래 알아온 모임 사람들과 필리핀으로 여행을 갔다. 이 골프장에서 저 골프장으로 옮겨 다니며 골프와 관광을 하는 일정이었다.
   여행 둘째 날, 마닐라 남쪽의 S 골프장으로 갔다. 이틀의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다. 스페인풍의 클럽하우스는 너무 아름다웠다. 더운 시기여서 그런지 현지인들보다 한국 관광객이 더 많았다. 캐디들이 손님의 골프 가방을 작은 손수레인 카트에 싣고 출발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번호표를 부르며 찾으니, 키가 작은 여성이 가볍게 목례를 하며 다가왔다. 챙이 넓은 모자에 수건으로 볼 둘레를 감싸고 있어서 얼굴을 보기가 어려웠다. 자신을 난시라고 소개했다.
   잔디가 깔린 넓은 페어웨이는 햇살이 따가웠다. 난시는 옆에서 골프채를 뽑아주고 내가 공을 치고 나면 우산을 건네줬다. 나는 운동 신경이 없어서 공을 못 친다. 빗맞은 공을 따라 난시가 이곳저곳으로 뛰어다녔다. 그날 난시는 별로 운이 없어 보였다. 공을 잘 치는 사람을 만나면 고생을 덜했을 것이다. 말없이 어렵게 경기를 끌고 가는 나를 보고 내일도 운동을 하느냐고 난시가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을 하자, 내일 다른 캐디로 바꿔달라고 미리 이야기하면 교체를 해준다고 했다. 순간 놀랐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를 묻자, 자기의 나이가 너무 많아 내가 싫어하는 것 같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젊은 캐디를 원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
   그제야 나는 난시를 유심히 보았다. 서글서글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거뭇한 얼굴에서 아주 먼 옛날의 어머니와 이웃 아주머니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가족의 생계를 등에 지고, 살아가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하는 성실한 사람들의 모습이. 나는 큰 소리로 이야기했다. “I hope to play with NANSY.”
   십대 초반에 5·16 군사 혁명이 일어났다. 갑자기 좌경으로 몰려 구속되어 버린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가 집안을 떠맡았다. 사모님으로 불리던 어머니가 시장 노점에서 야채장사를 시작했다. 신문을 돌리고 저녁나절이 되면 시장 모퉁이에서 한참을 서성이다 짐을 싸는 어머니를 도왔다. 어머니는 탁류 속으로 기울어진 현실 속에서도 언제나 밝은 얼굴로 물었다. “오늘도 많이 힘들었지?” 얼굴이 검게 그을린 시장 아주머니들도 따뜻하게 대해주었다. 어머니는 내가 스무 살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얼마 후 동생이 은행에 입사하면서 십수 년의 시장 생활을 마감했다. 그 후에도 시장의 아주머니들이 가끔 집에 놀러 왔다.
   아주 멀리 있었던 가파른 이야기가 난시의 얼굴을 보면서 떠올랐다. 골프장의 20대 캐디들 사이에서, 많은 나이에도 힘들게 일하면서 미소를 잃지 않는 난시에게 정이 갔다. 그에게도 자식이 있고, 그들에게 희망을 가진 어머니의 마음이 난시에게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다음 날도 난시와 같이 운동을 하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운동이 끝나면 다시 난시를 만날 수 없었다. 가까워진 나에게 그는 한국 사람들의 무례함을 가볍게 지적하기도 하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자식들의 이야기도 자랑스럽게 들려주었다. 헤어지는 시간이 왔다. 나는 그의 손을 잡고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가지고 간 볼펜을 주었다. 그는 미소를 지으며 주머니에서 필리핀 사탕을 꺼내 나의 손에 쥐여 주었다.
   여러 해가 지나갔다. 어느 날 모임 총무의 전화를 받았다. 해외 골프 여행을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해외 골프는 거의 불참했다. 나이도 있고 젊은 후배들이 불편해 할 것 같아서였다. 이번에는 어디를 가느냐고 물어봤다. 필리핀의 S 골프장이라고 했다. 순간 난시가 떠올랐다. 보고 싶은 생각이 솟아났다. 평소 엄격한 편이라 후배가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캐디를 미리 지정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여행사에 부탁하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S 골프장의 난시를 자세하게 이야기해 주고, 그를 만날 수 있다면 동참하겠다고 했다. 며칠 후에 전화가 왔다. 난시는 아직도 그곳에 있었다.
   S 골프장의 풍경은 변화가 없었다. 강렬한 햇살 아래 펼쳐진 푸른 잔디와 야자수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잔뜩 긴장한 채 클럽하우스 옆의 출발 지점으로 나갔다. 캐디들이 번호표를 가지고 손님들과 만나고 있었다.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누가 와서 손을 잡았다. 난시였다.
   그는 하나도 변함이 없었다. 어제 헤어지고, 오늘 만난 듯 반가웠다. 난시는 며칠 전에 자신을 지정한 한국 손님이 있다는 말을 듣고 무척 궁금해서 전날 잠을 설쳤다고 했다. 나는 집안 누이동생을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이것저것 아이들의 근황을 물었다. 운동을 하는 내내 난시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큰아이는 직장을 잡았고, 작은딸은 대학에 들어갔다고 했다.
   다음 날의 행사가 끝날 즈음에 나는 난시에게 진지하게 작별 인사를 했다. 그리고 검게 그을린 작고 바싹 마른 난시를 안아주었다. 난시의 꿈인 아이들의 성장을 축하하고 언제 올지 기약이 없지만 잘 지내기를 희망했다. 작은 선물을 그에게 주었다. 나의 나이와 형편이 이곳에 다시 오기는 힘들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어떤 인연도 흘러가는 것. 만남의 시간에 성실함을 다할 뿐, 붙들 수 없는 게 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잊힌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해준 난시와 고별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