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과비평 2017년 9월호, 제191회 신인상 수상작] 솔가지 길 - 원준희
"우리는 사는 동안에 내게 맞게 제대로 점검해 고쳐주고 방향을 잡아주며, 어렵고 힘들 때 따뜻하게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면서 위로와 용기를 돋아주고,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찾아가는 데 지도해 주는 멘토를 만나야 한다. 나 또한 도와주고 지도해준 스승이며 벗인 멘토에게 감사하며 살듯, 내게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도 성실하게 길을 가르쳐주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서로가 힘이 되어 행복하게 살아가리라 믿는다. 나의 솔가지 길 체험을 손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솔가지 길 - 원준희
초등학교 5학년 때이니 꽤 세월이 흘렀다. 바다에서 방향을 잃고 헤매고 있었다. 당황하여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겨우 길을 찾아 둑으로 나올 수가 있었다.
지금은 바다가 육지도 되고 새만금 사업단지 조성으로 4차선 대로에 차량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어 옛날 섬의 모습은 아니다. 지난날에 살았던 곳은 행정개편이 되기 전 옥구군 미면이었으나 현재는 군산시 산북동이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은 침략 외에도 개발 개척 사업을 한다는 것을 세계에 선전하기 위한 일환으로 이 지역을 선정했다. 넓은 바다를 메워 제방을 쌓고, 대대적으로 농토를 조성하여 일본 사람을 이주시켜 영농하였다. 일인들은 가구당 논 7필지(10,500평), 기와집(17.5평) 말 1필과 마차 등을 분배하고 전기시설까지 완비했다. 식수는 저수지에서 내려온 냇물을 침전하여 사용하였다.
해방과 동시에 일인들은 본국으로 돌아가고 현지인들이 농지를 상환 조건으로 분배받았다. 학교에서 비행장 근처에 있는 옥녀봉으로 가을 소풍을 갔을 때였다. 산 위에서 바라본 마을, 농수로, 황금빛을 띤 들판의 풍경이 마치 두부 판을 갈라놓은 듯 반듯반듯하여 보기 좋았다.
오식도와 내초도에는 어선도 많고, 조수간만을 이용한 어장도 여러 곳에 설치하였다. 썰물과 밀물이 하루에 두 번 있는데 ‘조금’과 ‘사리’에 따라 물이 들어오는 속도가 다르고 물 수위도 차이가 심했다.
썰물 때는 섬보다 더 멀리 갯벌이 드러나서 고기도 잡고 걸어서 육지와 왕래도 했다. 한 번은 마을 사람을 따라서 바다 멀리까지 들어갔다. 어른은 그레로 조개를 잡고 아이들은 맛대로 맛을 잡았다. 갯벌 바닥에 8자 모양으로 생긴 구멍을 찾아 맛대를 집어넣으면 신기하게 맛이 물려서 나왔다. 그렇게 잡는 재미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여기저기 흩어져 작업을 하는데 갑자기 짙은 안개가 깔리기 시작하여 지척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동서남북 구분이 안 되었다. 어른들을 찾으려고 소리를 질러 보았으나 아무런 반응이 없다. 밀물 시간은 다가오고 방향을 잡을 수 없어 덜컥 겁이 났다. 갯벌 중간에 계곡처럼 깊이 파인 계가 있는데 바닷물이 먼저 차 있으면 사고가 나는 곳이므로 이곳을 빨리 건너야 했다. 문득 예전엔 아이들이 종종 먼 바다로 떠내려갔다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무서워서 잡은 맛이며 이것저것 다 버리고 허겁지겁 뛰어다니다 보니 섬과 둑 사이에 솔가지를 듬성듬성 꽂아서 만든 길이 보였다. 이젠 살았구나! 안심이 되었다. 솔가지만 계속 찾으면 되었다. 마침내 마을 사람도 만났다. 그들은 내가 먼저 빠져 나간 줄로 알고 있었다. 갯벌이지만 사람들이 왕래를 많이 하여 다져져 밟기에 단단한 길이다. 길을 만들어 놓은 섬 주민에게 절을 열 번, 백 번이라도 하고 싶었다. 나는 지금도 안개를 보면 뭉실뭉실하고 포근하며 낭만적인 꽃다운 안개가 아니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는 두려운 안개로 머리에 남아 있다.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차가운 공기와 만나거나 주변에 수증기가 많이 포함되어 생기는 안개, 또는 봄철에 복사열로 인하여 공기의 밀도가 고르지 못해서 빛이 불규칙하게 굴절되어 생기는 아지랑이는 온 갯벌이 바다처럼 보여서 바다에 익숙하지 못한 어린이에게는 아주 위협적일 수도 있다. 이럴 때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면 다행일 것이다.
길을 묻는 길손에게는 정확하게 가르쳐 줘야 한다. 갈림길에서 어느 곳으로 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에도 각각의 길이 있다. 저마다 타고난 삶이 다르다. 하지만 사람마다 살아가는 방법이 다르다고 혼자 살 수만은 없다. 누군가와 함께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어 주어야 한다.
우리는 사는 동안에 내게 맞게 제대로 점검해 고쳐주고 방향을 잡아주며, 어렵고 힘들 때 따뜻하게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 나누면서 위로와 용기를 돋아주고,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찾아가는 데 지도해 주는 멘토를 만나야 한다. 나 또한 도와주고 지도해준 스승이며 벗인 멘토에게 감사하며 살듯, 내게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도 성실하게 길을 가르쳐주면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서로가 힘이 되어 행복하게 살아가리라 믿는다. 나의 솔가지 길 체험을 손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다.
원준희 ----------------------------------------------------------------------
서울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수료. 둔율동성당 사무장 정년퇴직. 군산노인종합복지관 수필창작반 수강, 구불길문우회 회원. 서울 시니아 신문 시니아 기자.
당선소감
바람이 제법 살랑거리는 날, 좋은 소식이 날아왔습니다. 무척 어렵게만 느껴졌던 문단에 입문이 이렇듯 내게도 찾아왔다는 사실에 무척 기뻤습니다. 부족한 글을 심사하시고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해서 글다운 글을 쓰라는 채찍과 격려로 알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노력하는 것이 제가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어렸을 때 마을 사람을 따라 조개를 캐러 바다에 갔는데 급박하게 짙은 물안개가 밀려와 지척을 분간할 수가 없는데다 밀물 소리가 들려와 겁에 질려 갈팡질팡한 적이 있었습니다. 생사를 다루는 절박한 그때, 섬과 둑을 연결하는 솔가지를 찾아 빠져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제 삶에 크나큰 사건이었습니다.
솔가지 길이 어린 날의 삶을 인도해 준 길이라면 글쓰기는 여생의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해 줄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렵니다. 이런 일을 찾을 수 있게끔 먼 길 마다치 않고 성심성의껏 지도해주신 선생님과 도움 주신 동문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고 힘을 보태준 가족들과도 함께 이 기쁨을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