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수필과비평 신인상 수상작

[월간 수필과비평 2015년 8월호, 제166회 신인상 수상작] 직사각형의 아름다움 - 김경연

신아미디어 2015. 9. 16. 15:48

"방 안에 둘러앉아 무릎에 모시 가닥을 비벼 잇던 그 광경이 갑자기 눈에 선하여 울컥 눈물이 났다. 그리도 부지런하던 내 어머니 생각에 그리움이 밀려왔다. 아! 나도 이 예쁜 무로 동치미를 담가야겠다. 달비김치를 담고 싶었지만, 억센 무 잎으로는 담글 수가 없었다. 무를 깨끗이 씻어 소금을 뿌려 김치통에 넣고 소금물을 부었다. 오이도 끓는 물에 데쳐서 오이지처럼 몇 개 넣었다. 마늘과 생강을 넣은 주머니와 사과 하나, 배 하나를 넣어 보았다. 청양고추도 몇 개 넣고 잘 눌러두었다. 이틀을 익혀 김치냉장고에 넣었다. 2주쯤 지나 맛을 보았더니 맛이 예술이다. 김치 국물이 어찌나 톡 쏘며 맛있는지! 어머니의 달비김치를 조금은 흉내를 낸 것 같아 또 눈물이 찔끔 났다. 누군가를 초대하여 동치미를 뚝배기에 근사하게 담아, 이 맛을 대접하고 싶다. 젊은 날의 어머니를 기억하는 사람과 함께 맛을 나누면 더 좋겠다."

 

 

 

 

 

 

 


 달비김치의 추억        김유정


   날씨가 쌀쌀해진 것을 보니 김장철이 되었나 보다. 슈퍼에 무단이 쌓여있다. 무 뿌리가 동글동글하게 생긴 것이 아주 예쁘다. 어디서 본 듯하다. 이맘때면 어머니는 머슴이 달구지에 실어 온 무를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았다. 소금물을 부으며 ‘설 쇠고 먹을 것은 양념을 많이 넣지 않는 것’이라며 김치를 담았다. 아직도 잘생긴 김칫독이 눈에 선하다.
   달비김치라고 했던가. 나는 겨울이 되면 이따금씩 고구마를 먹을 때마다 그때의 달비김치가 생각난다. 부드러운 긴 잎이 붙은 채로 큰 대접에 고추 삭힌 것이 뜨고 얼음이 동동 뜨는 노오란 달비김치가 눈에 선하다.
   어릴 적 살았던 고향엔 가을걷이가 끝나고 동지가 지나고 나면 한가해진다. 농사일을 하던 남정네들은 밤이면 쇠죽을 끓이는 솥이 달린 모정방에 모여 새끼를 꼬고 가마니를 짰다. 큰머슴, 꼴머슴이 동무들과 모여 늦게까지 일을 하며 나누는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바깥까지 들렸다.
   저녁 설거지가 끝난 동네 여인네들, 쪽을 찐 아낙네들과 머리를 길게 땋은 처녀들이 조그만 소쿠리를 들고 하나 둘씩 어머니 방에 모였다. 그들은 동그랗게 둘러앉아 모시를 삼았다. 어머니는 물렁하게 삶은 고구마 한 바가지와 달비김치를 내놓았다. 밤이 깊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낙들은 한쪽 무릎은 세우고 모시 가락을 이어서 광주리에 나풀나풀 담았다. 그렇게 모시 가닥을 잇는 작업을 ‘모시를 삼는다’고 우리는 표현했다.
   나는 어른들 뒤켠에 앉아서 그네들의 깔깔대는 이야기를 들으며 재미있어 했다. 고구마 한 입과 달비김치도 맛있지만, 잘 익은 김치 국물이 그렇게 맛있었다. 아래 모정방에선 머슴들과 젊은이들이, 건너 할머니 방에선 동네 할머니들이 모여 모시를 삼으며 도란도란하던 이야기 하던 모습이 귓가에, 눈가에 선하다.
   가늘고 고운 한삼모시는 아니었다. 안동포보다 가는 모시인데, ‘남재’라고 불렀다. 여름이 시작할 때면 동네 모시밭은 잎이 무성하고 내 키 만큼 자랐다. 모내기가 한창일 때 비가 장대처럼 오는 그 와중에 모싯대를 잘라 왔다. 모싯대를 마당 한편에 비 맞지 않는 곳에 쌓아 두고 어른들은 틈틈이 다듬었다. 잎은 잘라서 뒷간에 모아 두었다. 종이가 귀한 시절이라 모시 잎으로 뒤를 닦은 것을 기억한다. 잎이 유난히 크고 애기 살같이 부드러워 사용했을 것이다. 나는 이 기억 때문에 모시떡을 먹지 않는다.
   들일을 나가지 않는 할머니들의 손엔 언제나 모시 가락이 들려 있었다. 왼손에 묶음을 잡고 오른손으로 째는 작업을 하는 할머니들의 팔은 춤을 추듯이 휘들어지고 모시 가락은 머리카락처럼 바람에 날렸다. 째고 째어서 가늘게 만들었다. 굵은 것은 머슴들 일복, 잠뱅이나 등지기를 만들어 여름 내내 흘리는 땀받이로 입었다. 몸에 붙지 않아 여름엔 삼베나 모시가 얼마나 좋은 옷감인지 모른다. 가는 실로는 남자들 바지저고리, 여인네들 치마저고리를 만들었다.
   가늘수록 값이 나갔다. 겨울 내내 한쪽은 세 가닥으로 찢어 다른 실을 넣어 무릎에 대고 손바닥에 침을 발라 싹 비비면 절대 떨어지지 않고 희한하게 이어졌다. 그렇게 봄날 햇빛이 좋은날 마당에 불을 피우고 여러 사람이 도우며 풀을 먹였다. 그 실로 베틀에 앉아 북통을 잘카닥 넣으며 발로 밟아 베를 짰다. 우리 마을에선 흔히 보는 풍경이었다. 어머니는 완성된 베를 한 필씩 안아서 농 속에 차곡차곡 쌓으면서 흐뭇해 하셨다. 아마 젊은 내 어머니는 그때가 무척 행복한 순간이었던 것 같다.
   훗날 아버지의 사업이 잘못되어 돈이 필요할 때 그 베들을 팔아야만 했다. 그때 “논 팔고 밭 판 것보다 아까웠다.”고 아버지는 두고두고 푸념했다. “손톱도 들어가기 어렵게 쌓아둔 베들이었는데…….” 아마도 장롱 속의 모시들은 어머니에게 상당한 포만감을 주었던 것 같다.
   방 안에 둘러앉아 무릎에 모시 가닥을 비벼 잇던 그 광경이 갑자기 눈에 선하여 울컥 눈물이 났다. 그리도 부지런하던 내 어머니 생각에 그리움이 밀려왔다.
   아! 나도 이 예쁜 무로 동치미를 담가야겠다. 달비김치를 담고 싶었지만, 억센 무 잎으로는 담글 수가 없었다. 무를 깨끗이 씻어 소금을 뿌려 김치통에 넣고 소금물을 부었다. 오이도 끓는 물에 데쳐서 오이지처럼 몇 개 넣었다. 마늘과 생강을 넣은 주머니와 사과 하나, 배 하나를 넣어 보았다. 청양고추도 몇 개 넣고 잘 눌러두었다. 이틀을 익혀 김치냉장고에 넣었다. 2주쯤 지나 맛을 보았더니 맛이 예술이다. 김치 국물이 어찌나 톡 쏘며 맛있는지!
   어머니의 달비김치를 조금은 흉내를 낸 것 같아 또 눈물이 찔끔 났다. 누군가를 초대하여 동치미를 뚝배기에 근사하게 담아, 이 맛을 대접하고 싶다. 젊은 날의 어머니를 기억하는 사람과 함께 맛을 나누면 더 좋겠다.
   식탁보를 새로 깔았다. 갑자기 마음이 바빠진다.

 

 

김유정  -------------------------------------------
   부산 출생, 부산약대 졸업, 약국 경영. 소울회 회원, 혜윤문학교실 회원. 성동구청 개나리축제 백일장 우수상 수상.

 

 

당선소감


   나는 매일 내 안에 집을 짓고 또 지으며 살았습니다. 이제 내 뜰 안의 빗장을 열고 조심스럽게 나와 봅니다. 부끄럽고 떨립니다. 문학이 내뿜는 밝음에 눈이 부십니다. 너무 늦은 것 같지만, 지금이라도 활짝 열고 나오렵니다.
   문학소녀의 꿈이 먼 길을 돌아 이제야 이루어졌습니다. 문학과 더불어 당당하게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습니다. 기쁨입니다. 글쓰기가 마음의 치유가 되고, 글쓰기로 삶의 이면을 들여다볼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문윤정 선생님의 격려가 없었다면 용기를 내지 못 했을 것입니다. 다시금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작품 뽑아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내 글을 가장 먼저 읽어 주는 남편에게 기쁨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소울회 문우들, 고맙습니다. 이 기쁨을 아이들과도 나누고 싶습니다.
   내 삶에 무늬를 새길 수 있는 장을 열었으니 열심히 하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