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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수필과비평 2015년 6월호, 사색의 창]  숫돌 - 민병옥

신아미디어 2015. 7. 27. 15:48

"고향에 가면 아직도 수돗가 한구석에 놓여 있는 그 돌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떠올라 가슴이 저미어 오곤 한다. 돌은 비록 한구석에 우두커니 관심 밖에 놓여 있지만, 농번기가 되면 온 들판을 돌아다니며 제 몫을 다한다. 숫돌 같은 삶을 사신 아버지가 오늘따라 더욱 그립다."

 

 

 

 

 

 숫돌         -  민병옥

   고향 집 수돗가에 네모난 돌 하나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다. 그 돌은 쇠로 된 칼이나 낫을 갈 때 쓰는 것인데 아버지가 사용하시던 숫돌이다.
   쇠는 용광로에서 1,500℃ 이상 되어야 녹아내린다. 그런 쇠가 연마제인 돌에 갈리어 거무튀튀한 쇳물이 되어 흘러내린다. 돌은 자기 살을 깎으면서까지 쇠의 입자를 떼어내어 날을 세운다. 네모난 돌은 닳고 닳아 초승달 모양으로 움푹 파여 아무도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숫돌이다.
   일전에 TV 화면에 오래된 숫돌을 간직한 분이 나왔다. 그 돌은 인생역정을 겪으며 살아온 그의 어머니를 상징한다고 했다. 곧이어 그의 어머니가 등장했다. 팔순을 넘긴 어머니는 젊어서 남편을 여의고 줄줄이 딸린 자식을 먹여 살리기 위해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시장판에 뛰어들어 떡집을 했다. 한평생 떡을 썰면서 무딘 칼을 갈며 살아왔다. 떡 써는 일을 반세기 동안 해서 자식의 뒷바라지를 했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음덕으로 각자 가정을 꾸리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다.
   숫돌을 보는 순간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르며 자꾸만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침에 부스스 일어나 마당에 나가면 칼을 가는 아버지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그때 아버지의 등 뒤에서 숫돌에 물을 적셔 칼을 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쓱싹쓱싹’ 하고 강하게 밀고 당기는 모습이 마치 힘 기르기라도 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가끔 칼날에 엄지손가락으로 문질러 날이 섰는지 확인하시며 다시 가셨다. 칼날이 시퍼렇게 되었을 때는 아버지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알송알 맺히셨다.
   아버지의 칼 가는 모습은 마술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무딘 칼이라도 아버지의 손길을 거치면 그렇게 잘 들 수가 없었다. 숫돌도 아버지의 연륜에 비례해서 닳고 닳았다. 숫돌은 얼마나 칼에 부딪혀 갈리었기에 닳고 닳아 아버지의 등허리처럼 휘어졌나 싶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는 힘들게 무엇을 썰고 있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칼을 숫돌에 갈곤 했었다. 아버지처럼 힘과 정성을 다해 갈았지만, 왠지 칼날이 서지 않았다. 아버지께 여쭈었더니 숫돌에 닿는 칼날의 각도와 밀고 당기는 힘의 분배를 잘 조절해야 한다고 하셨다.
   수돗가에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쳐진 숫돌은 가을 추수철이 되면 논바닥 어귀에 우두커니 한 자리를 차지한다. 아버지는 벼 베기를 하기 전에 먼저 낫을 여러 자루 가셨다. 돌에 물을 끼얹어 낫을 갈면 쇳물이 흘러내리면서 희번덕거리며 칼날이 섰다.
   낫 갈기를 마치면 벼를 벤다. 왼손으로는 벼 네댓 포기를 움켜잡고 오른손의 낫으로 힘을 주어 벼의 밑둥치를 잘라 논바닥에 가지런히 눕힌다. 그렇게 손수 힘들게 가을걷이를 했다. 아버지는 정말 허리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뒤따랐으리라. 그러나 가족을 위해서 참아내며 농사를 지으셨다.
   지금이야 기계화되어 추수하기가 쉬워졌지만, 옛날에는 낫으로 벼를 베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숫돌이 자신의 몸을 갉아먹으면서까지 오롯이 내놓듯 인고의 세월을 감내하면서 사셨다.
   숫돌의 삶을 사신 아버지……. 등이 휘어지도록 일하면서 자식들을 뒷바라지하셨다. 날이 밝아오기도 전에 들로 나가 온종일 일하고 어둑해서야 집으로 들어오시곤 했다. 그렇게 애지중지한 삶터를 기꺼이 내놓으셨다. 자식들만큼은 당신의 못 배운 한을 밟지 않도록 해마다 논배미를 한 두락씩 팔아서 학비에 충당했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녔을 때는 많던 논밭이 숫돌이 저 닳는 줄 모르는 것처럼 줄어들어 반토막이 되었다. 남들은 저 집은 가세가 기울었다고 했지만, 아버지는 그런 입방아를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그런 곡절을 겪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랐다.
   여러 자식을 공부시키고 출가시켰을 때는 이미 한세월이 지난 늙은이가 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저 돌만큼이나 힘든 세월을 보내셨으리라. 이마에 주름살로 얼룩진 아버지의 모습이 화면에 보이는 돌에 겹쳐 떠오른다.
   고향에 가면 아직도 수돗가 한구석에 놓여 있는 그 돌을 볼 때마다 아버지가 떠올라 가슴이 저미어 오곤 한다. 돌은 비록 한구석에 우두커니 관심 밖에 놓여 있지만, 농번기가 되면 온 들판을 돌아다니며 제 몫을 다한다. 숫돌 같은 삶을 사신 아버지가 오늘따라 더욱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