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인간과문학 2015년 봄호, 문학과 동양철학 ⑧] 인간이 버린 자연의 시간: 봄의 이야기 - 오광탁
"나는 봄이다. 내가 나를 통제한다는 것이 너무도 힘들다. 오로지 마음이 움직일 때 내 몸도 움직여진다. 의무적인 생각이나 가치관 따윈 내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남들은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좋게 이야기하지만,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열차를 탄 이런 느낌이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그냥 나의 운명이려니 한다. 타인의 이해를 받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 언젠가는 사고가 날 것임이 분명하니까. 주위에 아무도 두려고 하지 않는다. 봄은 생각보다 참 무섭다. 원래는 봄을 변명하고 옹호하는 글을 쓰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봄이 별로 좋아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좋은 점이 있다면, 봄은 정말 많은 경험을 하게 해준다. 세상이 정말 얼마나 넓고 크고 다양한지를 느끼게 해준다. 고통과 함께 갈수록 무모한 용기는 줄어가긴 하지만, 그 대신 세상에 대한 이해와 감사와 축복을 배우게 된다. 봄의 눈물은 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인간이 버린 자연의 시간 : 봄의 이야기 / 오광탁
와~ 봄이다.
겨울이 온기를 나누는 지고지순한 사랑의 계절이라면, 봄은 그 지긋지긋한 구속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나기를 바라는 바람의 계절이다. 부모보살핌도 연인의 애틋한 정분도 다 소용없다. 봄은 뒤를 보지 않는다. 오직 새로움만 바랄 뿐이다.
양력 2월 4일이 되면 입춘이다. 그때부터 봄이고 새해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사주에선 이야기하지만 아직은 너무 춥고 얼음도 다 녹지 않았는데, 뭐가 달라지나 싶다. 하지만 봄은 그렇게 성급한 어린아이와 같다. 금방 질리고 금방 새로 시작한다. 호기심천국에다 뭐든 시작만 좋아한다. 봄은 말한다. 겨울은 너무나도 지겨우니까 색다르고 다양한 것을 내게 달라고 한다. 정말 골 아픈 떼쟁이 어린아이 같다. 나는 봄의 태생이다. 이렇게 연재하는 것이 얼마나 지겨운지 모른다. 정말 더 이상 똑같은 주제로 쓰고 싶지 않다. 전혀 새로움이 없어 보이는 이런 짓거리를 계속한다는 것이 미칠 노릇이다. 인연에 속박되거나 뒤를 돌아보는 것은 하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하나도 봄 같지 않은 겨울과 똑같은 이런 날씨를 왜 봄이라고 했을까? 그냥 그렇게 우기고 싶은 어린아이 같은 마음이고 봄바람이 든 바람둥이의 모습이다. 봄의 사람들은 뭐든 결코 오래하지 않는다. 그냥 뛰쳐나가고 싶다. 그래서 봄 태생은 부자가 되기 힘들다. 뭔가 잘 지키지도 못하고 철도 들지 않아 늘 꿈만 꾸는 느낌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그들을 예뻐해 주고 잘 도와준다. 신기할 따름이다. 우리가 어린아이를 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처럼 봄 태생의 사람들에겐 잘해주어야 하는 법이라도 있는 듯싶다.
가을 태생들은 봄 태생을 미워하고 부러워한다. 멋대로 사는 그들이 무척이나 밉다. 봄의 언어는 자유고 배신이며 새로운 세계를 향한 모험과 행동이 된다. 겨울 태생처럼 말만 하지 않는다. 일단 해본다. 그리고 아파하고 그리고 또 다시 전진한다. 봄은 결코 포기를 모른다. 하하~ 봄이다.
시작만 잘하는 그들, 나를 따르라고 하긴 하지만 결코 뒤처리 따윈 생각하지 않는 봄에게 우린 잔뜩 기대를 걸고 새로운 세상을 그들이 열어줄 거라고 기대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거는 애정과 막연한 희망이 봄에게 있다. 그래서 봄은 투기다. 봄은 모험이며, 어떠한 안전한 형식도 거부하는 바보다. 그냥 내맡기는 용기만이 전부가 된다. 그래서 대체로 망한다. 이렇게 추운데도 봄은 벌써 봄이라고 들떠있다. 그냥 미친 듯이 마냥 설레고 즐겁다. 신은 그렇게 즐거운 미친 봄의 마음을 주었지만, 인간은 냉철한 가을의 마음을 가지고 그 봄을 거부하고 통제하려고 든다.
봄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참으로 많지만, 통제 불가능한 새로움 때문에 봄은 질시당하고 욕먹고 바닥을 긴다. 하지만 봄은 늘 새로워지려는 포기하지 못하는 희망의 감정이다. 뭔가 될 것 같고 뭐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 같은 예감 때문에 여기 있을 수가 없다. 정체와 안정이란 봄에게 너무도 어울리지 못하는 감정이다. 그냥 뛰쳐나가야만 한다. 봄 바람난 처녀처럼, 발정기가 닥친 짐승처럼, 봄은 소리치며 자기 길을 가야만 한다. 봄 태생을 믿는 것은 어린아이를 믿는 것과 같다. 그들은 오로지 감정의 중심 안에서 행동한다. 오늘을 사랑하고,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는 그것이 끝나면 끝이 된다. 마음이 일지 않으면 결코 거기 있을 수가 없다. 강박관념처럼 늘 새롭지 않으면 죽음이라고만 느껴진다. 미친 광기 같은 것이 그들 안에 살아 숨 쉬고 그것은 결코 통제되지가 않는다. 그래서 봄은 잔인하다.
인간이 버린 자연의 이야기라는 것은 내게 있어서 봄을 의미한다. 봄이 주는 경이와 새로움과 찬란한 희생 따위를 인간들은 자꾸 버리려한다. 통제 불가능한 어린아이를 길들이며, 통제 불가능한 자연을 전부 다스리려고 한다. 신은 봄을 사랑하며, 세상은 봄으로 늘 변하고 있는데, 인간은 그것을 미워하고 원망하며 반항한다. 다양성을 만드는 그 봄을 꽁꽁 붙잡아 매어두려고만 한다. 하긴 봄은 너무도 무모하며 폭력적이고 감정적이다. 오로지 자기밖에 모르는 아이처럼 야생마의 기질을 가지고 있다. 봄과 함께 산다는 것은 마치 폭탄을 내 안에 심고 사는 느낌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있는 이유를 우린 알아야만 한다.
봄엔 배움이 있다. 그 무모함 때문에 발생하는 모든 실수가 봄에 발생한다. 아픔과 절망, 배고픔과 노동의 시간들만 있는 봄엔 오로지 그 실수를 몸으로 때우는 방법이외엔 아무것도 없는 듯 보인다. 세상을 치른다. 실험과 모험을 통해 그 결과를 그대로 맞닥뜨려야 하는 책임을 져야만 한다.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해서 변화를 일으키고 잘못된 어린 생각으로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래서 봄에는 평화란 없다. 양육강식의 세계이며, 성공한 자만이 살아남는 정글과도 같은 가시밭길이 봄에 존재한다. 투쟁을 통한 짝짓기의 계절이고 서로 빠르게 자라 먼저 유리한 자리를 찾아야하는 경쟁의 시간이며, 날카로운 본능과 직감에 의지한 생존의 시간이 된다. 어린아이처럼 잔인한 봄은 진짜 아프다. 성장하며 살아남는 고통의 배움을 봄은 축복처럼 고스란히 우리에게 내려준다.
봄은 어리다. 봄은 철이 없다. 봄은 멋대로 자유롭고 결과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그렇게 된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한다. 이미 봄의 통제권은 신에게 있다. 신이 그렇게 시킨다. 전쟁이 나고 싸우고 다투며 할퀴고 물어뜯으며, 서로 죽여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배신의 세상이 봄이기에 봄은 새로움만을 남긴다. 승자와 패자가 나뉘는 곳, 진화한 자와 도태한 자가 갈라지는 곳이 봄이 된다. 생존과 투쟁의 본능만을 지닌 봄을 풍요로운 가을이 통제하려고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가을은 원래 그런 봄에게서 나온 것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역사의 이야기만큼 아픈 게 있을까 싶다. 물론 풍요롭고 평화로운 시절도 잠시 잠깐 있었겠지만, 언제나 봄의 고통이 있고 나서 행복한 가을의 시절이 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우린 언제나 봄처럼 망한다. 봄처럼 어리석고 봄처럼 나대며 봄처럼 무모하다. 지금 이 시대도 성숙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어쩌면 그런 시대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경쟁과 폭력과 살아남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한 봄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 안에 파고든다. 그리고 우린 봄이 주는 실패를 통해 또 다시 배울 것이다.
세상 뭐 있나 싶지만, 세상엔 진짜 많은 것이 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돌아가는 수많은 것들이 있고, 나에게 어떤 의지가 있든지 간에 나를 다른 식으로 통제하는 수많은 기운들이 있다. 이젠 유토피아를 꿈꾸는 멍청한 생각 따윈 그만 하고 싶다. 그냥 봄은 있는 것이다. 거부한다고 될 것도 아니고, 싫어하고 미워한다고 사라지지도 않는 것들이다. 내 안의 폭력성과 잔인함을 원망만하고 지내고 싶진 않다. 세상은 봄의 배신과 봄의 새로움과 봄의 투쟁으로 꽉 차있다. 봄은 평화가 아니다. 봄은 넉넉함도 아니고, 평등과 조화의 땅도 아니다. 그냥 우리가 치루고 아파해야 할 세상인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 작은 희망 하나가 있다. 지금 우리의 고통이 후대에는 다른 결과물로 나올 것이라는 가을에 대한 희망이다. 통제되지 않는 봄의 광기를 피할 길은 없다. 그냥 그 피해를 줄여가는 것이다. 봄이 만든 감정이라는 기준을 가지고 그것을 이성의 안내로 제대로 된 길을 찾아 분출시키는 수밖엔 없다. 그래야 제대로 된 결실이 생길 테니까 말이다.
멋대로 살아도 사랑받는다고 가을은 봄을 부러워한다. 하지만 봄은 잘 통제되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가을을 부러워한다. 봄은 무모한 용기만 있고, 가을은 편협한 두려움만 있다. 잃을 게 없는 사람과 지킬 게 있는 사람의 차이처럼 봄과 가을은 서로가 다르다.
나는 봄이다. 내가 나를 통제한다는 것이 너무도 힘들다. 오로지 마음이 움직일 때 내 몸도 움직여진다. 의무적인 생각이나 가치관 따윈 내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남들은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좋게 이야기하지만, 브레이크가 고장 난 폭주열차를 탄 이런 느낌이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그냥 나의 운명이려니 한다. 타인의 이해를 받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안다. 언젠가는 사고가 날 것임이 분명하니까. 주위에 아무도 두려고 하지 않는다. 봄은 생각보다 참 무섭다. 원래는 봄을 변명하고 옹호하는 글을 쓰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봄이 별로 좋아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좋은 점이 있다면, 봄은 정말 많은 경험을 하게 해준다. 세상이 정말 얼마나 넓고 크고 다양한지를 느끼게 해준다. 고통과 함께 갈수록 무모한 용기는 줄어가긴 하지만, 그 대신 세상에 대한 이해와 감사와 축복을 배우게 된다. 봄의 눈물은 마른 땅에 내리는 단비와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광탁 --------------------------------------------------
경기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동양철학과 졸업. 이석영계열의 원제 임정환 선생님으로부터 사주첩경 사사. 경기대사회교육원에서 춘광 김배성 교수님으로부터 사사. 백민역학연구소 회원. 현재 열개의 별 이야기(사주상담소)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