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 비평』 2015년 6월호[제164호]의 신인상 당선작가분들을 소개합니다.
『수필과 비평』 2015년 6월호[제164호]의 신인상 당선작가분들을 소개합니다. 좋은 씨앗을 많이 뿌리는 농부로 성장하시기를 기대합니다.
≪수필과비평≫은 작품수준, 신인다운 치열한 작가정신, 앞으로 창작활동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작품을 신중하게 검토하여 다음과 같이 신인상 당선작을 결정하였습니다.
심사위원 | 김상태, 서정환, 유인실
수상작
| 고연숙 <하얀 자전거>
| 원지우 <텍사스 프로젝트>
| 유종인 <그날의 합창>
| 이민재 <내 마음의 동시>
신인상 심사평
고연숙-<하얀 자전거>
모든 문학은 근본적으로 인간 존재와 삶의 의미에 대한 탐구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 근원의 뿌리는 죽음이다. 이 글의 화소는 어렸을 때 폐렴으로 죽은 남동생, 그 동생에 대해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는 화자, 남동생과 나를 이어주는 하얀 자전거이다. ‘하얀 자전거’는 의미 범주가 넓은 하나의 상징으로 죽은 동생과 화자를 연결해 주는 매개물로 작용한다. 그 중심에는 삶과 죽음의 문제가 놓여 있다. 자연스럽게 화자는 동생의 죽음을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환기시킨다. 화자는 “윤회 속에서 아득한 기다림과 그리움의 시간들이 모였다 흩어지고” 그 흔적은 산 사람의 마음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가 종국에는 영원의 길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화자의 구체적인 경험을 토대로 하여 삶의 문제를 형상화해내는 사유가 돋보인다.
삶의 탐구로서의 수필의 역할에도 그 몫을 다해낸 글이라 할 수 있다. 기대되는 바가 크다.
원지우-<텍사스 프로젝트>
미아리 텍사스에서 열린 이색적인 전시회를 모티프로 한 글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텍사스는 한때는 성매매로 호황을 누렸던 집창촌이다. 그런데 이 글에서 보여주는 집창촌의 지금 풍경은 암울하고 답답하다. 방은 대부분 창도 없고 배의 어두운 선실처럽 답답하고 1인용 매트리스조차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좁다. 화자는 이곳에 갇혀서 하루하루를 지옥처럼 살다 갔을 여자들을 생각하며 안타까워한다. 그러한 인식은 인간의 끝 모를 욕망에 의한 것으로 보고 이를 세월호 사건과 병치시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확장시킨다. 또한 포주의 살벌한 얼굴을 기대했다가 그들도 이웃집 아줌마처럼 평범한 여인인 것을 보고 그러한 ‘악의 평범성’에 과연 선과 악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나아가 인생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아이러니가 아닐까 하는 문제의식들을 짚어보며 우리 사회에서 삶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고자 한다.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성찰과 이에 대응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탐색을 통해 좋은 글을 쓰기 바란다.
수필은 일상성에 대한 인식이 기저를 이룬다. 다만 수필이 서사문학이라는 특성 때문에 삶의 일상성은 텍스트로 옮겨지는 순간 전경화되면서 문학의 중요한 주제가 되기도 한다. 이 글의 제목 역시 어느 한 날이 어떻게 비일상적인 날로 작용하면서 특별한 의미를 확보하게 되는지를 보여준다. 그것은 일상적 의식을 깨는 데서 비롯된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사경을 헤매는 어머니를 두고 합창단 정기연주회 연습을 하러 간 것이 마음에 걸렸던 화자에게 어머니 영정 앞에서 합창을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해 온다. 엄숙하고 조용해야 하는 장례식장의 일반적인 관례를 깨고 합창을 하자 오히려 많은 조문객들이 눈시울을 적셨다는 내용이다. 수필문학은 일상성을 다루지만 삶을 한 걸음 물러서서 깊게 생각하게 하는 관조의 문학이다. 이 글은 장례식장의 풍경을 관습의 답습이 아닌,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여운을 남기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당선을 축하한다.
이민재-<내 마음의 동시>
어린 시절 동시童詩가 신문에 실렸던 것을 기억하고는 신문을 찾으러 국회도서관에 가는 것으로 계기로 해서 글쓰기에 대한 새로운 각오를 한다는 내용이다. 많은 사람들이 수필을 쓰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삶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작품을 완성한다는 의미만 갖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나를 정화淨化시키는 의미도 있다. 수필 쓰기를 배우면서 이제야 무엇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야 할지 깨달았다고 작자는 말한 적이 있다. 작자의 수필 쓰기는 나이 쉰을 넘기고 자칫 허무감에 빠질 위험에서 구해주는 역할도 한 셈이다.
지금까지 문학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수필 쓰기를 권하고 싶다. 자기의 인생을 기록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자신을 치료하는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자기 속에 깊이 잠재해 있는 원석 같은 재능을 발견해서 수필을 쓴다면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이 될 것이다.
좋은 수필을 쓰면서 앞으로 아름다운 삶을 누리기를 작자에게 당부한다. 이 신인상은 그 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