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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계간문예 2015년 봄호, 수필] 성장통 - 김기자

신아미디어 2015. 6. 4. 07:14

"잠깐의 소용돌이가 우리 모녀 곁을 스쳐갔다. 성숙해 지기 위해서는 삶의 부분 가운데 잠깐의 사랑도, 이별도 어쩌면 필요한 요소라 추측을 한다. 합리화에 빠진 내 혼자만의 생각이다. 딸에게 이제 예쁜 사랑이 다시금 피어난다 해도 성장통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마음의 키가 훌쩍 자라났으면 좋겠다. 딸은 지금 보자기처럼 펼쳐진 젊음의 시간 위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고 있는 중이다."

 

 

 

 

 

 

 성장통        /  김기자

 

   딸은 지금 이슬담은 꽃송이처럼 신선하다. 나에게도 언제쯤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 하고 돌아본다. 유수같이 지난 세월이 아쉽기만 하다. 딸에게 일어나는 기쁨과 슬픔을 모두 간섭할 수는 없지만 나도 모르게 주의 깊은 관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부터다. 은근한 염려까지 더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부모 마음이 비슷하겠지만 나 역시 욕심 많은 엄마임에 틀림없다. 내심 흐뭇한 사건이라 해도 걱정이 동반되는 것을 어쩌랴.
   감회가 새롭다. 젊은 청춘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이다. 딸애는 옷차림이며 옅은 화장까지 신경을 쓰는 일이 점차 늘어만 갔다. 시대가 많이 변했건만 나는 그 애의 행동 하나하나에도 은근슬쩍 눈치를 살피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다. 당연히 잔소리가 더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딸애는 끄덕도 않는다. 시대의 변천 속에서 넓어진 세대 차이를 실감하는 중이다.
   주말이면 데이트에 열중하는 것 같았다. 행여 이성교제로 인해 학교생활에 지장이 있을까봐 염려하던 중 결국 일이 벌어졌다. 밤늦은 시간에 휴대폰을 내려놓지 않고는 어디론가 계속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참지 못해서 다그치고 말았다. 워낙 솔직한 성격의 딸애는 거실로 나오더니 눈물을 쏟는 게 아닌가. 사귀던 남자친구에게 방금 이별을 통보했다 한다. 왜냐고 묻자 그냥 공부에 전념하기 위해서란다. 분명 무슨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자꾸만 캐묻는 엄마를 따돌리기 위해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다. 눈동자는 다른 곳을 응시하며 목소리조차 저음이다.
   한 발짝 뒤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젊은 아이들의 내면을 속속들이 알 수도 없는 노릇이고 우선은 딸의 마음이 아프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하지 않던가. 가라앉은 마음을 흩어 주기 위해 애를 써야만 했다. 어떤 녀석이 우리 딸 마음을 아프게 한 거냐고 본의 아닌 목소리를 높였다. 더한다면 보석 같이 귀한 너를 몰라본다는 말 외에도 그깟 일 별거냐며 너스레를 떨었다. 굳게 입 다물고 있는 딸을 보며 내심 불안감이 몰려왔다. 어쩌면 엄마인 나도 뒤늦은 성장통을 딸과 함께 치르는 중인지도 모른다.
   며칠이 지났다. 그동안 딸애는 잠도 제대로 편히 들지 못했을 줄 안다. 모른 척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 일에 대해 자연스러운 얘기를 흘리면서 다가갔다. 남자 친구와 헤어지면서 많이 아팠겠다고 위로를 건네주었다. 의외였다. 그렇지 않단다. 얼마나 다행인지 안심이 되지만 속상함을 엄마에게 들키고 싶지 않은 모습인 것 같아 어쩌면 애처롭다. 겉으로 태연한 척 해도 아마 한참을 헤매고 난 후 마음 정리를 했으리라 짐작한다.
   내 젊은 시절이 떠오른다. 한 번도 펴 보지 못했던 어깨 위의 날개가 아쉽게 들썩이고 있는 듯하다. 그 몸짓이 어색하다. 성격 탓도 있지만 부모님이 무서워서 연애를 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꾸던 때이기도 하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미련이 남는다. 청춘도 한때이며 연애도 한때가 아니던가. 그야말로 이른 나이에 중매로 시작한 결혼생활은 미처 피워보지 못하고 꺾인 꽃과도 다르지 않았음을 회상한다. 앞만 보고 사는 일에만 급급했기에 남아 있는 기억들은 온통 회색빛이다. 
   시간은 참 빠르게 지나갔다. 무색하게 버려야 했던 젊음의 시간들이 가슴에서 꿈틀대고 있는 즈음이다. 흘러간 내 인생에서 어느 한 부분을 아쉬움으로 꼽는다면 날아보지 못했던 청춘의 날개짓이라 말하고 싶다. 욕심 같지만 딸로 인해 대리만족을 취하고 싶은 심정 감출 수가 없다. 그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의중이라 할지라도 딸은 나와 다른 인생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일 뿐이다.
   차츰 딸의 얼굴에서 웃는 모습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염려했었는데 다행이다. 가끔씩 내 자신도 납득되지 않는 상식을 딸에게 전하며 또 다른 눈치를 살피기 시작한다. 전과 달리 더 많은 관심을 품게 되었다고나 할까. 엄마인 내가 실제의 경험도 없으면서 연애의 달변가처럼 안목을 높이라며 쏟아내는 궤변에 기가 막힌다. 혼자 만들어낸 엉뚱한 철학 앞에서 웃음을 참아내기 힘들다. 속으로는 이런 엄마가 못마땅할 것이다. 못난 내가 얼마나 깊이 있게 판단을 할까마는 그래도 반백년 살아온 동안의 경험과 지혜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지 않나 싶다.
   딸애의 청춘이 부럽다. 아직은 젊기에 방황하고 갈등하며 아파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 위에 머무르고 있는 형상이다. 젊음이 가득 담겨 있는 무형의 질그릇 속 보배와도 다름없다. 얼마든지 목청껏 소리 칠 수 있는 입장이 아닌가 말이다. 그야말로 특권이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이런 과정도 인생의 중요한 시기라 생각한다. 내게서 눈 깜짝 할 사이에 아쉬움으로 흘러간 청춘을 딸애가 보기 좋게 아우르고 있다.
   잠깐의 소용돌이가 우리 모녀 곁을 스쳐갔다. 성숙해 지기 위해서는 삶의 부분 가운데 잠깐의 사랑도, 이별도 어쩌면 필요한 요소라 추측을 한다. 합리화에 빠진 내 혼자만의 생각이다. 딸에게 이제 예쁜 사랑이 다시금 피어난다 해도 성장통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 마음의 키가 훌쩍 자라났으면 좋겠다. 딸은 지금 보자기처럼 펼쳐진 젊음의 시간 위에서 자유롭게 춤을 추고 있는 중이다.

 

 

김 기 자  -------------------------------------------

   월간문학 신인작품상 수상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