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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예연구 2015년 봄호, 신작시] 제사를 지내는데 외 1편 - 정대구
신아미디어
2015. 5. 24. 09:47
정대구님의 신작시 2편을 『문예연구』에서 소개합니다.
제사를 지내는데 외 1편 / 정대구
어제 저녁 아버지 제사를 지냈습니다
오늘 아침 일어나 생각해보니
죄송스럽게도 아버지 어머니 얘기는 한마디 않고
조율이시 제수 음식에 덥석덥석 미리 손을 대는
손자 녀석 재롱 얘기로 제청을 수놓았던 듯합니다
顯考學生府君 神位
顯驢孺人密陽朴氏 神位
두 분께서도 나란히
귀염둥이 증손자 보심이 기쁘신지
제상 위에 켜놓은 두 자루 촛불 가만히 흔들어
괜찮다, 괜찮다 하시는 유음幽音이
이제도 내 귀를 밝히는 듯합니다
지화리 우복동에서
내가 세상에 바닥을 치고
세상과 담을 쌓고
무풍지대 지화리 우복동牛腹洞에서
상처를 달래듯 허허실실
허허虛虛로 집을 짓고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소 뱃속 같은 마을 안을 한 바퀴씩 돌며
적응하기 6개월째 일궈낸 적잖은 평화
일상에 차츰 여유가 생기고
치유의 살이 돋아
이제야
실실實實로 돌아오는 마음
누가 꼬여낸다고
쉽게 넘어가진 않을 것
정대구 --------------------------------------
경기산(1936) 문학박사(숭실대), 대한일보 신춘문예 시부 당선으로 등단(1972년), 시집 『나의 친구 우철동씨』, 『겨울기도』, 『양산일기』, 『곰할머님 고맙습니다』등 다수, 수필집 『녹색평화』, 『구선생의 평화주의』 연구서 『김수영 연구』, 『김삿갓 연구』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