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비평 2015년 4월호, 세상 마주보기] 고리 - 박숙자
"구슬 줄이 목걸이 형태를 갖추니 나이 탓인지 쓸데없는 걱정이 끼어든다. 목걸이든 가족이든 나처럼 과하게 당겨 줄이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서로 배려하라고, 끊어진 목걸이를 잇는 일도 이처럼 쉽지 않는데, 하물며 가족 관계는 더 어렵지 않을까 싶어서."
고리 - 박숙자
‘툭’ 과하게 당기는 바람에 줄이 끊어졌다. 꽤 많은 구슬이 한순간에 방바닥으로 흩어진다. 댕그르르, 이미 구석진 곳으로 굴러간 것도, 아직은 손바닥에 온기를 남기는 것도, 조금 전까지 내 목을 감쌌던 목걸이의 일부다. 조심성 없는 자신이 한심스러워 망연히 바라보다 구슬 하나를 집어 들었다. 영롱한 구슬은 환상적인 무늬를 제 몸속에 감추고 있었다. 그동안 별 생각 없이 착용했는데 새롭다.
알알의 구슬과 끊어진 줄을 보니 마치 내 몸의 일부인 양 마음이 편치 않다.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까. 손을 길게 뻗어 가구의 밑 부분을 구석구석 훑어보지만 결국 몇 알은 잡히지 않는다. 아쉬운 대로 꿰어서 목에 대본다. 작은 알 몇 개 빠졌는데 목걸이의 길이가 짧아졌다. 너무 바투 붙었다.
밤낮이 없는 공항에는 목적지를 향한 사람들의 분주함으로 활기차다. 마치 흩어 놓은 구슬처럼. 더군다나 입국장은 귀갓길을 서두르는 여행객들의 피로감까지 묻어 더 소란스럽다. 사람들이 짐을 찾기 위해 수화물 벨트 앞으로 우 몰린다. 나 역시 바쁜 발걸음이다. 이때 대형가방 대여섯 개를 실어도 될 만큼 큼직한 카트가 바싹 곁에 붙는다. 붙는 것이 아니라 아예 옆구리를 친다. 카트 조작에 익숙하지 않은 남자가 미안한 듯 당황한 미소를 보낸다. 말이 미소지 웃는지 우는지 얼굴 근육을 움직이며 고의가 아님을 표시하려 애쓴다. 깡마른 몸집에 얼굴까지 까매서 유독 체신이 작아 보인다.
짐도 찾고, 커피도 마셨다. 이젠 집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버스 안은 좌석도 널찍하고 통로 사이도 넓다. 비행기에서 못한 호강을 버스 안에서 누린다.
얼마나 달렸을까. 주위를 돌아보니 앞자리에는 젊은 부부가 아이를 안고 있고 창가 쪽에는 피부가 까만 남자가 앉아 있다. 유난히 마른 옆모습이 어디서 본 듯하다. 어디서 봤을까…….
한동안 말이 없던 앞줄의 세 사람들이 서로 웃음을 보낸다. 웃음의 발단은 갓난아기였다. 잠을 깬 아기가 힘든지 울기 시작하자 아기엄마가 조심스레 추스른다. 그러나 아기가 쉬 그치지 않자 과감하게 윗옷을 올리고 젖을 물린다. 요즘 모유수유가 흔하지 않은데 대견하다. 살짝 보이는 속살이 앳되다. 젖을 먹는 아기를 까만 얼굴의 남자가 흐뭇하게 바라본다. 갓난아기에게 웃음을 보내는 저 남자는 이들과 어떤 사이일까. 세 사람에게서 닮은 점이나 공통점을 찾지 못한 채 그들을 지켜보았다.
잠시 뒤, 의문은 풀렸다. 한국 총각이 베트남 아가씨와 연을 맺어 가정을 이뤘고, 창가 쪽의 남자는 친정아버지였다. 한국에 처음 오는 아버지를 위해 딸의 가족이 마중을 나왔고, 지금 딸이 살고 있는 고장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탄 것이다. 카트를 잘못 조작해 당황해 하던 모습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안정돼 보이고 여유로움까지 보인다. 강파르게 보였던 남자의 얼굴에 퍼지는 미소는 따뜻했고 뭐라 아기를 어르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노랫소리 같았다. 남자의 시선은 오랫동안 아기에게 머물렀다.
아기를 중심으로 나누는 그들의 정겨움은 뒷자리의 나까지 흐뭇하게 만든다. 만일 아기가 없어도 저 세 사람은 지금처럼 가족으로 빨리 결속될 수 있을까. 타국에 시집보낸 어린 딸은 안쓰럽고, 외국인 사위는 낯설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딸을 보러 오는 비행시간은 얼마나 길게 느껴졌을까. 그런 낯섦을 익숙함으로 바꿔 놓은 것은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아기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은, 할머니가 된 내 마음까지 얹어서 가늠해보기에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이의 머리를 살살 어루만지는 아빠, 젖을 물리고 있는 엄마, 그들을 사랑의 눈길로 바라보는 외할아버지, 그 속에서 포근히 잠든 아기, 하나하나가 다 소중한 구슬이다. 내가 찾으려고 애썼던 구슬에 감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그들은 혈연의 구슬들이었다. 그 소중한 구슬들을 이어주는 어린 생명. 아이가 갖는 신비로움이다.
흩어진 구슬을 모아 잇고 싶다. 다행이 발품 덕분에 찾던 구슬의 개수가 다 채워졌다. 비슷한 색상의 구슬을 찾는 데 들인 시간은 차라리 새것을 구입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지만, 한동안 내 목을 감쌌던 그 감미로움을 지울 수가 없었다. 살살 잡아당겨 실과 구슬의 균형을 맞춘다. 모양도 색상도 맘에 든다. 이제 꿰어놓은 구슬 줄의 양 끝을 단단히 잇는 일만 남았다.
구슬 줄이 목걸이 형태를 갖추니 나이 탓인지 쓸데없는 걱정이 끼어든다. 목걸이든 가족이든 나처럼 과하게 당겨 줄이 끊어지는 일이 없도록 서로 배려하라고, 끊어진 목걸이를 잇는 일도 이처럼 쉽지 않는데, 하물며 가족 관계는 더 어렵지 않을까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