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비평 2015년 4월호, 지상에서 길 찾기] 찐빵 형님 - 권중대
"인간사에서 가족의 형성은 아버지의 발견부터라고 한다. 짐승들에게는 떼[群]는 있어도 가족은 없다. 동시에 새끼를 낳아 기르는 어미는 있어도 아버지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가족제도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창조한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정을 주지만 아버지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배경이 되어줌으로써 그 존재 가치가 확실해진다. 환경을 만든다는 것은 지킨다는 이야기가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찐빵 형님 - 권중대
나는 전화를 끊었다. 찐빵 형님이 돌아가셨다는 친구의 연락이었다.
“집에서 돌아가신 것은 맞은 모양이야. 그런데 그분 스스로……. 그렇게만 알아둬.”
내 온몸이 저려왔다. 친구가 말한 마지막 말은 안 들었어도 능히 짐작할 수 있는 것이고, 그래서 충격은 너무 컸다. 그 형님은 4년 선배가 되는데 특별한 일은 없었어도 나를 잘 챙겨주시는 분이었다.
찐빵 형님의 진짜 이름은 진방연이다. 성은 진이고 방은 돌림자였는데 아버지께서 중국 전국시대의 병법의 대가인 방연과 같은 이름을 지어 준 것이고 그 아버지는 아들에게 방연에 대해서 수시로 이야기해 주시면서 훌륭한 남자가 되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기대는 빗나가지 않아서 방연이는 체격이 좋고 싸움도 잘했지만 아주 의협심이 강해서 언제나 약한 사람 편에서 강자들과 맞서 주었다. 그때에도 학교폭력은 있었다. 누구나 그 폭력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방연이가 그것을 가로막아 주었던 것이다. 방연이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누구나 보호하는 게 특이했지만 그것이 그 아버지의 가르침이었다.
그래서 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랬다. 공부도 잘하는 편에 들었으니 어른들 말로 문무를 겸비했다고나 할까? 그런데 과자 하나라도 얻어 먹어야 맞는데 방연이는 반대로 그들에게 주는 것을 즐겼고 아버지도 그렇게 하기를 원하면서 용돈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방연이는 친구층이 두텁고 단결력도 좋았다.
그러나 원체 뛰어난 사람이라 도전자도 많았다. 그러면 방연이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둘이만 가서 해치워 버리고 내색을 안 하려고 노력했다. 방연이는 찐빵을 무척 좋아했다. 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백일홍’이라는 찐빵집이 있었는데 틈만 있으면 아이들을 몰고 가서 먹이곤 했다.
그래서 이름보다 ‘찐빵’이라는 별명이 더욱 자연스럽게 불렸고 본인도 싫어하지 않았다. 찐빵이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에 들어갔어도 변함없이 마음을 같이하는 무리가 있었는데 그들의 면면은 다양했다.
그러나 고등학교, 여기까지였다. 여기서부터는 1류대학, 2류대학, 지방대학으로 나뉘고 대학에 따라 직업과 대우에 차이가 나는 것이다. 더욱이 이때는 우리나라가 경제의 급속한 발전에 따라 새로운 엘리트가 만들어졌고 이들이 신주류를 형성하던 때였다.
불행하게도 대학시험에는 의리와 의협을 알아주는 과목이 없었기 때문에 방연이는 지방대학을 거쳐 적당한 직업도 얻을 수 없어서 난생처음으로 가난과 싸우기 시작했고 가난은 대를 물려 그 아들들도 마찬가지였다.
가난해서 잘 먹지 못하고 그나마 무리를 해야 그 생활이라도 유지할수가 있었기 때문에 좋은 건강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유방암’이라는 병으로 아내가 먼저 쓰러졌다. 결국 가난 때문에 쓰러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수술을 하고 겨우 목숨은 건졌으나 끝난 것은 아니었다. 수술 뒤의 몸 보신, 정기적인 항암치료 등으로 돈은 더 많이 필요했지만 그나마 아내를 통해 들어오던 수입마저 끊어진 형편이었다.
이런 형편이니 찐빵은 더 무리를 해야 했고 그 역시 얼마 안 가서 폐암이라는 엄청난 진단을 받았다. 다행히 방연이의 많은 친구 중에 유명한 대학병원 의사가 있어서 늦지 않게 성공적으로 수술은 마쳤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부인을 간호하면서 자기 몸을 돌보기는 어려웠다. 문제는 돈이었다. 별수없이 생전 처음으로 어느 넉넉하게 사는 친구에게 돈 이야기를 했던 모양이었다. 그 친구는 매정하게 거절하면서 친구 간에 금전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라는 충고까지 길게 했다. 그 친구가 여럿에게 소문을 내서 돈 100만 원을 걷어주면서 생색을 냈던 모양이다. 그들에게 100만 원은 한자리 술값도 안 됐다.
그 친구들은 대기업간부, 고급공무원에 공기업 간부 등이었다. 누구를 보아도 돈이 없을 사람은 없었다. 사람은 부자가 되었지만 마음은 옛날보다 가난해졌다는 사실을 방연이는 모르고 모두 옛날에 자기가 먹이던 때만을 생각했던 것이다. 부해지면 친구를 바꾸고 귀해지면 여자를 바꾼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폭력이 비처럼 오던 날은 방연이의 우산을 받고 배 고프던 날은 방연이의 빵을 먹던 머리털 검은 짐승들은 자기들 차림보다 남루해 보이는 방연이의 잠바 차림이 싫었고 소탈한 말버릇이 귀에 거슬려서 종종 태클을 걸고는 했었다. 그들은 벌써 친구를 바꾸고 있었는데 순진한 방연이는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돈 100만 원을 주면서 충고랄까 변명이랄까를 들으면서 그제야 세상 돌아가는 것을 조금 느낀 방연이는 창백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아내를 바라보며 눈물바람을 하고 옆방으로 건너가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어두워졌을 때 나는 장례식장에 가보았다.
“햐, 겁나네.”
출입문을 거쳐 주차장까지 조화는 이어졌다. 아마 이렇게 거창한 곳은 드물 것이다. 조화는 상가를 위하는 것 같지만 어떤 면에서는 보내는 사람 낯내기에는 그만한 것이 없고 상가에 실속은 전혀 없는 것이다.
많은 조화와는 달리 조객은 거의 없는 것이 이 상가의 내막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문상을 하고 나오는 새까만 양복을 입은 사람 서너 명과 마주쳤다. 학교에 다닐 때는 찐빵 형님과 너나없이 지내던 멤버들이다. 그중에 찐빵 형님이 돈 이야기를 하자 일언지하에 거절했다는 사람도 끼어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말했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그들이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까만 까마귀 떼로 보일 뿐이었다.
인간사에서 가족의 형성은 아버지의 발견부터라고 한다. 짐승들에게는 떼[群]는 있어도 가족은 없다. 동시에 새끼를 낳아 기르는 어미는 있어도 아버지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가족제도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창조한 그 순간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어머니는 정을 주지만 아버지는 환경을 만들어 주고 배경이 되어줌으로써 그 존재 가치가 확실해진다. 환경을 만든다는 것은 지킨다는 이야기가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친구도 그렇다, 원래는 힘센 녀석 혼자만 돌아다니며 제 힘껏 먹고 살다가 목적이 같아 협력이 필요한 것들이 뭉쳐 친구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건 뜻과 목적을 잃어 버리고 협력을 안 하게 된다면 그들은 원래 짐승으로 돌아간 것이다.
짐승에게는 정이 없다. 가족과 친구가 형성되기 전 인간이 그랬다
지금 그들은 같이 회식이나 하고 관광이나 같이 하는 떼(무리)로 돌아가 버린 것이다. 그들은 도꼬다이(혼자)로 돈을 찾아 헤매는 원시인이나 다름없는 신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