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비평 2015년 4월호, 사색의 창] 수석 - 이영순
"부부인연으로 엮인 그이와 나는 서로에게 맞춤이 되어가고 있다. 긴 세월에 깎이고 깎여 모양이 비슷해졌다. 이마의 굵은 주름도 얼굴 가득 잔잔한 주름도 이젠 낯설지 않다. 서로의 거울이 되었다. 곱게 다듬고 키우던 아들딸도 인연을 만나 사랑을 찾아갔다. 우리는 두 아이들을 선물처럼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보냈다. 아이들도 그 인연과 부딪히며 깎고 깎이는 수석이 될 것이다. 부딪히고 깎이는 삶이라도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이라고 세월을 이겨낸 수석이 무언으로 전해준다."
수석 - 이영순
하늘이 예쁜 날이다. 바다를 보며 걷는 산책로가 좋아 다대포 몰운대를 찾았다. 해변은 물결이 잔잔하다.
햇살바위에 걸터앉았다. 멀리 등대도 보이고 맑은 날씨여서 시야가 넓어진다. 양식장에는 통통배가 분주히 움직이고 옥빛으로 빛나는 바닷물은 멋진 풍경화 한 폭이 된다. 풍경 속의 사람으로 앉아 있으니 부러울 것이 없다. 자갈돌이 작은 파도에 맑은 소리를 내며 또르르 구른다.
한가한 시간을 보내는 나, 그이는 자갈밭을 이리저리 뒤적이며 주변풍경에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자기랑 인연이 있을지도 모르는 수석을 찾는 중이다.
들며나는 파도에 몸을 맡긴 자갈돌은 본래의 모습은 간곳없이 깎이고 부딪혀서 동글동글 모양이 비슷하다. 그 많은 돌 가운데에 우리와 인연이 있는 돌이 있다는 것이 그이의 생각이다.
인연이라는 말에 나도 수석 찾기에 동참을 한다. 나와 인연이 있는 돌은 어떤 모양일까. 세월의 흔적을 많이 담은 돌일까. 깎이고 깎여서 본래의 모습을 가늠할 수 없는 돌일까. 갖가지 모양을 그이에게 보여주며 자문을 구한다.
검은색이면서 특이한 무늬가 있어야 한다. 모양은 어떤 암시와 상상력을 떠오르게 하는 것을 골라야 한다. 구멍이 있는 돌이면 관통을 한 것이 좋다. 등등 그이에게 들은 얕은 지식으로 돌 모양을 관찰하며 해변 자갈밭에서 긴 시간을 보냈다.
그이는 무늬가 있는 납작한 작은 돌 하나, 나는 아기주먹만 한 검은색 돌에 구멍이 눈처럼 보이는 돌 하나를 인연이라며 집으로 가져왔다.
거실 한편 장식장에는 작은 수석들이 올망졸망 진열되어 있다. 세월이 깎고 바람과 물이 다듬은 작은 수석들은 자세히 살펴보면 저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것들도 있다.
검은 돌에 토끼가 깡충 뛰어오르고, 하얀 돌에는 오리가 급하게 지나간 발자국이 있다. 평원 수석에는 넓은 평원이 있는 듯 보이고 타원형 검은 돌에는 달무리가 선명하다.
선택된 돌은 그이가 좌대를 정성스럽게 만들어 앉힌다. 두툼한 나무판에 먹지를 깔고 돌이 앉을 부분을 정한다. 고무망치로 돌을 두드리며 조각칼로 수없이 반복하며 깎고 또 깎는다. 모양을 내고 사포로 곱게 다듬고 돌이 빠져 나오지 않게 좌대를 완성시킨다. 인연이 닿은 수석은 그이의 눈길과 손길의 사랑을 받는다. 그러다가 다른 인연을 만나면 우리 집을 떠나간다.
세련되지도 예쁘지도 않았던 나, 또박또박 말대답을 잘해 당돌하다고 엄마가 걱정하던 내 모습은 삐죽삐죽 날카로운 못난이 돌덩이였다.
많은 사람 중에 그이와 인연이 닿아 부부가 되었다. 돌아보면 세월이 나를 둥글게 깎아 놓았고 인내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그이의 인품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 놓았다.
수석은 화려한 좌대에 앉아 있다고 돋보이는 것은 아니다. 자기의 모양이나 색상 크기에 따라 좌대 모양이 정해진다. 사람이 머무는 곳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곳이 있다.
나의 보금자리를 둘러보니 세련되고 값진 가구는 없다. 수수하고 오래된 가구 내 몸처럼 여겨지는 가재도구가 꼭 필요한 자리에 나와 함께하고 있다.
부부인연으로 엮인 그이와 나는 서로에게 맞춤이 되어가고 있다. 긴 세월에 깎이고 깎여 모양이 비슷해졌다. 이마의 굵은 주름도 얼굴 가득 잔잔한 주름도 이젠 낯설지 않다. 서로의 거울이 되었다.
곱게 다듬고 키우던 아들딸도 인연을 만나 사랑을 찾아갔다. 우리는 두 아이들을 선물처럼 인연이 있는 사람에게 보냈다. 아이들도 그 인연과 부딪히며 깎고 깎이는 수석이 될 것이다.
부딪히고 깎이는 삶이라도 아름답고 가치 있는 삶이라고 세월을 이겨낸 수석이 무언으로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