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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인간과문학 2015년 봄호, 이 시인을 주목한다: 김덕희]  내면 성찰과 정체성, 그리고 아이러니 - 유한근

신아미디어 2015. 4. 17. 15:27

"시인 김덕희는 잊혀진 시인이다. 세상이 그를 잊었고 그도 시를 잊고 살았기 때문에, 세상과 시인적 삶도 잊혀진 시인이다. 그는 한동안 칩거하며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해 침묵했고, 세상에 대한 침묵했다. 그러나 그를 다시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볍게 던지는 그의 시어들 속에 잠언적 언어들이 있고 삶의 아이러니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시 속에서 전통적인 한국시의 표현구조가 있고 현대시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표현구조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내면 성찰과 정체성, 그리고 아이러니        /  유한근

 

   1. 아이러니 표현구조와 진실의 구조

   희랍 희극에서 ‘에이론(eiron)’라 불리는 인물은 ‘시치미 떼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자신을 실제보다는 낮추어 말하고, 실제보다는 똑똑하지 못한 사람인 척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이러니(Irony)는 여기에 어원을 둔다. 겉으로 나타난 말과 실질적인 의미 사이에 괴리가 생긴 결과를 아이러니라 부른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러니를 반어反語라 번역하여 부른다. 또 다른 희랍 희곡의 인물 허풍장이 ‘알라존(alazon)’을 이긴 인물이기 때문에 아이러니 힘겨루기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혹은 힘겨루기에서 이기기를 선호하는 현대인들에게는 필요한 성격요소이다. 그래서 그러한지 시의 표현 구조에서 현대에 가까이 오면서 아이러니의 표현구조를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이를 선호한다. 세상을 조롱하고, 자신을 비하하면서도 자신의 존재에 대한 경외로움을 잊지 않는 시인들에게서 이러한 표현구조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자신에게 자신 있기 때문이며, 잃을 것이 없기 때문이며, 자신의 존재 인식이 뚜렷하기 때문이다. 그 뿐만 아니라, 아이러니는 은유와 상징 구조에 의존해서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했던 시인들이 그 방법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표현구조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한 시도일 수도 있다. 그 시도는 동음이어어를 차용하는 방법인 펀(pen), 과장과 축소, 그리고 뒤바뀜(peripeteia), 언어 유희적 트릭의 하나인 패러디(parody), 비꼼(sarcasm), 놀림, 자기비하 등 표현의 방편들을 차용하게 된다. 이러한 아이러니의 문학 표현적 가치를 신비평들은 부정한다. I.A. 리처드는 “아이러니를 대립물의 평행이라고 정의”(리처즈의 〈Principles of literary Criticism〉에서) 하고 “아이러니에 노출된 시는 최고위의 시가 되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대립물’이란 “보족적 충동을 한데 모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그들은 아이러니를 시적 표현의 보조적인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아이러니를 통상적인 의미의 해학으로만 인식하고 있어 본래의 의미를 간과해버리고 있는 셈이다. 겉으로 나타난 말과 실질적인 의미 사이에 괴리가 생긴 결과를 아이러니라 부른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는 “표면과 깊이, 모호함과 투명성을 공히 지녀야하며, 우리들의 내용적인 면으로 돌리는 한편 형식적인 측면으로도 지탱되어야” 한다는 사실과 이미지스트인 미국의 시인 매클리슈(Archibald MaccLeish)와 후기 이미지스트파의 표어인 “시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 하는 것”1)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때 아이러니는 나름의 존재 가치를 부정할 수 없다.

 

허공에 매달려 산다
나의 몸을 지탱해주는 건
꼬리에서 나온 가는 실
한 줄뿐

 

작은 바람에 줄이 흔들리고
몸체가 흔들릴수록
두 손에 피가 나게
안간힘 쓴다
허공에 매달리기 위해

 

두 발이 땅에 닿을수록
불안해지는 삶
그래서 매달려 산다
매달려 있는 동안
내가 살아 있다

- 시 〈거미〉 전문

 

   김덕희 시인은 시 〈거미〉를 통해 자신은 물론이고 인간들의 삶의 양태를 아이러니로 보여준다. 시인은 자기의 사물화의 방식으로 ‘거미’가 된다. 자신의 삶을 거미에 의탁하여 자기표현을 한다. 자신의 허공에 매달린 “몸을 지탱해주는 건/꼬리에서 나온 가는 실/한 줄 뿐”이며, “몸체가 흔들릴수록/두 손에 피가 나게/안간힘”을 쓰는 것은 허공에 매달려 살기 위해서라고. 여기에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2연의 끝행인 “허공에 매달리기 위해”서이다. 거미는 허공에 매달려 산다. 그 거미에 시인은 자신을 비유한다. 자기비하적 아이러니다. 반어적 비유일 수도 있다. 그보다는 마지막 3연에서의 “두 발이 땅에 닿을수록/불안해지는 삶/그래서 매달려 산다”라는 표현 구조로 볼 때, 한 국면에서는 시인이 사는 세상은 허공에 매달려 사는 것이 불안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보인다. 매달려 사는 삶이 오히려 편안하다는 의미다. 자조적이며 자기비하적이다. 먹거리를 담보로 사는 보통 사람들의 절규이다.
   그러나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안정된 삶, 땅을 딛고 사는 삶보다는 새로운 가능 지평을 열 수 있는 불확정적인 삶에 대한 희구의 인식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끝없는 도전과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놓고 사는 삶을 살 때 자신이 살아 있다는 인식을 몸으로 느낀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이런 의미와 같은 맥락이 있는 시가 시 〈거울〉이다.    

 

돌아서면 그 뿐이다
진실로 가슴에 담아본 사람은
없다
마주서 있었을 때만
잠깐씩 가슴에 비쳐졌다

 

뚫어지게 쳐다보면
진실을 볼 수 있을 것
같지만
처음부터 담아 둘 가슴이
없었다

 

기억되는 것도
익숙해진 것도 없이
비추어진 그대로
잠깐을 그냥 받아들였을 뿐
너라고 얘기 할 것은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나에게 익숙해지는 일이었다

- 시 〈거울〉 전문

 

   이 시에서 김덕희 시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나에게 익숙해지는 일이었다”라고 토로한다. 우리는 자기에게 익숙해지고 산다. 익숙한 대로 사는 것이 쉽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민도 없고 갈등도 없다. 그래서 쉽다. 쉽게 사는 일이 그것이다. 그것을 그는 어렵다고 말한다. 자신에게 익숙한 채로 사는 일이 어렵다고 말한다. 자신에 대한 모반이며 일상에 대한 반역이다. 이 또한 일상인들에게는 아이러니적인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삶에 익숙해지는 것을 우리는 습관이라 부른다. 파스칼은 〈팡세〉에서 “습관은, 그것이 습관이기 때문에 따라야 하는 것이며 그것이 합리적이라든가 올바르다는 데에서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습관은 제2의 천성으로서, 제1의 천성을 파괴하는 것이라고도 말한다. 그래서 삶에 익숙해서 습관이 된 것은 제2의 습관에 의해 파괴될 수밖에 없다. 습관은 사는 동안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세를 인정하는 불교에서는 업業으로 인식한다. 그래서 불교는 그것을 버리라고 한다. 그것에 매이지 말라고 한다.
   위의 시 〈거울〉은 습관에 관한 모티프의 시는 아니다. 내면의 성찰을 통해 ‘진실’이 무엇인가를 사유하고 있는 시이다. 진실의 정체성을, 그 속성을 탐색한 아포리즘적인 시이다. ‘진실’이라는 존재와 관계양식의 탐색을 통해서 알고 있는 것을, 그것을 믿지 못하는 자신에 대한 반성과 습관적인 인식에 대한 자성自省의 시이다. 자신의 내면적 진실과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인식된 진실까지도 부정하고 있는 시인의 내면을 토로한 시이다. 자신이 믿고 있는 것은 “기억되는 것도/익숙해진 것도 없이/비추어진 그대로/잠깐을 그냥 받아들였을 뿐”이지 그것을 진실이라고 확신할 수 없음을 토로한 슬픈 시이다.
   그래서 그는 시 〈오늘, 여기〉에서 할 말이 많아도 침묵한다. “하루로는 마무리 되지 않는 일상/어제와 그제처럼/내일과 모레가 지나 간다//…그리운 것을 생각하는 일은/사치가 되었다”고 말하며, “강 건너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행복한 사람들의 너털 웃음 속에서/또 다른 일상을 보고/ 난 오늘/여기에 주저 앉았다”(시 〈오늘, 여기〉에서)“고 좌절한다.
   그리고 김덕희 시인은 자기성찰의 시선을 타인에게 돌린다. 시 〈그들의 얼굴〉이 그것이다.


   2. 타인의 진실과 시공간의 감성 체계

   시인의 자신의 내면에 대한 성찰을 존재양식의 철학적 체계로 파악한 후 그 시선을 자신 밖의 세계로 돌린다. 자신과 타인, 인간과 인간, 개인과 사회, 사회와 사회, 국가와 인류의 문제, 인간과 추상적인 관념이나 구채적인 감성의 문제까지로 확장해가며 관계양식을 통해 삶의 본질과 인간의 본체를 이해하려 한다. 그것은 곧 자신의 정치성을 파악하기 위해서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이해를 위한 사유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김덕희 시인은 〈그들의 얼굴〉을 탐색한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아니었을 께다
그저 주어진 대로
하루하루 즐기며
서로서로 토닥이며
그렇게 살
작정이었을 께다

 

어느날 문득 꿈에서 한번
오늘이 아닌 내일이 보였고
내일의 내일의 내일이
자꾸만 자꾸만 자꾸만 보였고
그래서 딱 한번만
작정하고 한 일이었을 께다

 

한번이 두번되고
두번은 평생되고
마음속 진실은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일
남의 것을 빼앗아
내것을 만드는 일이 되고
얼굴의 주름만큼
마음의 주름이 잡혔다

-시 〈그들의 얼굴〉 전문

 

   시 〈그들의 얼굴〉의 키워드는 ‘주름’이다. “얼굴의 주름만큼/마음의 주름이 잡혔다”가 그것이다. 얼굴의 주름이 곧 마음의 주름이고 마음의 주름이 곧 얼굴의 주름이라는 등식은 그다지 새롭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관상학에서 금과옥조(?)로 생각하는 이 말을 이끌어 내는 시적 구조 때문에 이러한 시적 인식은 새롭게 다가온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아니었을 께다”로 시작되는 1연에서 사람들의 일상적인 관계를 긍정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2연에서는 “어느날 문득 꿈에서 한번/오늘이 아닌 내일이 보였고/ 내일의 내일의 내일이/자꾸만 자꾸만 자꾸만 보였고”라고 딴청부린다. 일상의 시간에 대한 인식을 논리적 모순 체계로 낯설게 한다. 한번의 ‘꿈’이라는 현실이 아닌 환상적 공간을 뜬금없이 제시하며, “오늘이 아닌 내일” “내일의 내일”이 “자꾸만”이라는 시어로, 반복적으로 보인다고 표현한다. 그런 뒤 “그래서 딱 한번만/작정하고 한 일이었을 께다”라고 “딱 한번만”이라고 한정하여 이해한다. 여기에서 나는 ‘자꾸만’과 ‘딱 한번만’에 주목한다. 그리고 의혹을 갖게 된다. 마지막 3연의 1,2행의 “한 번이 두 번 되고/두 번은 평생 되고”를 볼 때, 시간 개념에 대한 혼돈이나 초월로 보아야 할 것인가? 아니면 현상학적 이해로 언어 대한 사전적 의미로 가감 없이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혼돈스러움에 절망한다. 이는 그자체가 아이러니이다. 언어 트릭의 하나인 뒤바뀜(peripeteia)이다. 그러나 이를 현실과 환상, 또는 생각과 행위의 측면에서 볼 때 이는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꿈에서는 오늘과 내일이 자꾸만 반복해서 등식으로 보이지만, “작정하고 한 일”인 행위는 ‘딱 한번만’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이렇게 시를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이해할 때 그 시의 맛은 사라지고 재미없지만, “마음속 진실은/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일/남의 것을 빼앗아/내것을 만드는 일이 되고”라는 잠언적 사유의 결과물을 언어를 표현하여 전언할 때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 〈질투, 그 모호함〉에서 우리는 이러한 아이러니의 모순과 만나게 된다. 김덕희 시인의 낯선 잠언적 시어를 감성적으로 체험하게 된다.

 

하늘이 너무 파래서
부아가 났다
구름 한 조각 오락가락하고
바람에 흔들거리는 나뭇잎도
부러워졌다

 

어제와 같지 않은
창 밖의 모습은
저 혼자 잘도 변해 가는데
자꾸 무서워지는 건
얼굴에 묻어나는 세월

 

오늘도 어제와 같았듯
내일도 오늘과 같이 살아가는 것
그렇게 살다가 늙어서 죽는 것

 

오늘은 창 밖에 비가 오는데
그래서 또
부아가 났다

-시 〈질투, 그 모호함〉 전문

 

   시 〈질투, 그 모호함〉의 서두 “하늘이 너무 파래서/부아가 났다”라는 표현부터 이 시는 아이러니컬하다. 또한 “어제와 같지 않은/창 밖의 모습은/저 혼자 잘도 변해 가는데” 그것이 “자꾸 무서워지는” 것, 그것도 아이러니컬하다. 하지만 그것이 이해되는 이유는 “얼굴에 묻어나는 세월” 때문이라는 것이다. 인간 모두는 “그렇게 살다가 늙어서 죽는 것”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창 밖에 비가 와도 “부아가 났”다는 것이다. 인생의 아이러니를 이 시는 ‘질투, 그 모호함’으로 규정한다. 시인이 인간의 생사의 문제를 이야기하면서 파란 하늘과 창 밖에 내리는 비에 ‘부아가 나는’ 그 감성적 아이러니는 “그렇게 살다가 늙어서 죽는”다는 잠언적 사실에 대한 환기 때문이다.

 

아파트 골목길이 시끄럽다
계단에 몰려선 아줌마들
손에 든 비닐 봉지 속엔
하루의 시간이 담겼다

 

아침부터 하루는
텔레비젼 리모콘으로 시작되고
어제와 같은 오늘들
한 움큼씩 냉장고에 넣어버린다

 

불리워진 적 없는
이름조차 잊어버렸다.
설거지 그릇 속에 담겨진
식구의 숫자를 세며
그 안에조차 빠져있는 내 밥그릇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
개를 불러들이는 목소리
해피는 개이름이다

-시 〈해피는 개이름이다〉 전문

 

   시 〈해피는 개이름이다〉는 일상적 삶의 키워드를 개 이름인 ‘해피’로 표상한 시이다. 사람들은 ‘해피’하기를 원한다. 행복한 삶이 목표이며, 그 과정도 행복해지기를 원한다. 이를 반어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 아이러니적 표현을 ‘비닐 봉지’ ‘리모콘’ ‘냉장고’ ‘설거지 그릇’ 개 이름으로 하고 있다. 우리의 일상에서 하찮은 것들을 통해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인식에서 이 시의 아이러니는 구조된다. 아주머니들이 들은 비닐 속의 하루의 시간. TV 리모콘으로 시작되는 아침. 냉장고에 넣어버린 어제와 오늘들. 설거지 그릇 속에 담긴 식구, 그리고 내 내 밥그릇. 해피라는 개 이름 부르는 목소리. 이런 것들은 일상적이다. 그 일상적인 것들이 해피, 행복이라고 이 시는 전언한다. 이러한 인식 자체가 자조적이고, 비꼼(sarcasm), 놀림, 자기비하이다. 특히, 가장 많이 불러지는 ‘해피’라는 개 이름은 ‘행복’이라는 정서에 대한 비꼼이다.

 

한때는
두텁고 푸른 잎을 매달고
있었다고
기억해 주는 이도 있다
한때는
그 잎을 흔들며
수줍게 웃기도 했다고
기억해 주는 이도 있다

 

바람을 맞기 시작한 건
땅속에 숨어 있던 뿌리 한 쪽
바람이 그리워 삐죽이 땅위로 내밀던 오후
그리고 조금씩
바람에 말라갔다

 

기억의 마지막은
뿌리의 아주 조금
땅위로 밀려 올린 것 뿐
바람은 뼈속으로 스며들어
물관 영양관 모두 내몰고
텅 빈 관속을 차지해 버렸다

 

오늘도 풍장 지낸 몸속에서
바람이 움직인다

- 시 〈풍장 〉전문

 

   시 〈풍장〉의 제목은 중의적 의미가 있다. 풍장風葬은 고대의 장사법으로써 “시체를 태우고 남은 뼈를 추려 가루로 만든 것을 바람에 날리는 장사법” 혹은 “시체를 한데에 버려두어 비바람에 자연히 없어지게 하는 장사법”을 의미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는 ‘풍물놀이’를 다르게 부르는 이름이다. 이 두 가지 의미를 대입시켜 위 시를 이해해도 좋지만, 전체적인 흐름이나 마지막 연 “오늘도 풍장 지낸 몸속에서/바람이 움직인다”로 볼 때, 이 시는 풍물놀이가 아닌 ‘죽음’에 대한 선험적 인식을 감각적으로 쓴 시이다.
   그러나 이 시에서 주목할 키워드는 ‘바람’이다. 잎을 흔드는 바람, 뿌리를 땅 위로 올리는 바람, 뼈 속을 스며들어 물관과 영양관을 내몰고 텅 빈 관속을 차지한 바람, 풍장을 지낸 시인의 몸속을 움직이는 바람은 자연 현상인 바람이며 허상인 인간의 실존은 아닐까? 이는 다른 시에서 또 다른 그의 시에서 자명하게 밝혀져야 할 것이다.
   시인 김덕희는 잊혀진 시인이다. 세상이 그를 잊었고 그도 시를 잊고 살았기 때문에, 세상과 시인적 삶도 잊혀진 시인이다. 그는 한동안 칩거하며 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해 침묵했고, 세상에 대한 침묵했다. 그러나 그를 다시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가볍게 던지는 그의 시어들 속에 잠언적 언어들이 있고 삶의 아이러니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시 속에서 전통적인 한국시의 표현구조가 있고 현대시의 새 지평을 열 수 있는 표현구조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유한근  --------------------------------------------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평론집 《문학의 모방과 모반》, 《현대불교문학의 이해》, 《한국수필비평》 등 다수. 시집 《사랑은 흔들리는 행복입니다》 외. 명상언어집 《별과 사막》. 동화집 《무지개는 내 친구》 등 저서와 논문 다수. 만해불교문학상,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신곡문학상 대상, 여산문학상 대상, 동국문학상 등 수상.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교수. 본지 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