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필과비평 2015년 3월호, 촌감단상] 찌그락 짜그락 - 김재환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에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단심가丹心歌>로 대꾸한 포은 정몽주, 누가 과연 옳은지 모를 일이다. 우중층한 잿빛 하늘에 눈보라 흩날린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산새도 숨 죽인 적막한 산막에서 찌그락 짜그락대며 한겨울, 설한풍의 세월을 엮는다. 가정의 화목과 부부간의 평화를 위해 심각하게 고민하며 화려한 변절을 꿈꾼다."
찌그락 짜그락 - 김재환
이를 닦기 위해 치약을 찾는다. 치약 튜브 한가운데가 쿡 눌러져 찌그러져 있다. 끝 부분부터 잘 접어 가지런히 눌러 정돈을 한 뒤 칫솔에 반쯤 짠다. 세면함에 가지런히 넣는다. 기분이 몹시 언짢다. 이른 아침부터 기분 상하지 않으려고 튀어나오는 화기를 억누른다. 저녁식사 뒤 이 닦으러 세면장에 간다. 치약은 또 패잔병처럼 중간이 삐틀빼틀 꾹 쭈그러지고 뒤틀려져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다. 화가 머리카락을 곧추세운다. 또 참는다. 가지런히 정리정돈하여 제자리 찾아 놓는다. 다음날 아침, 또 마찬가지다. 반복되는 치약 때문에 울화통이 터진다. 혈압이 오른다.
사용한 물건은 제자리에 가지런히 놓아 달라고 수없이 여러 번 부탁했었다. 소용이 없었다. 젊었을 때는 다그치면 며칠은 잘 지켜졌었다. 환갑을 넘기더니 점잖은 부탁도 충고도 경고도 마이동풍이 되어 전혀 먹혀들지 않는다. 양말이나 옷가지·모자·신발 등 모든 게 다 마찬가지였다. ‘나이 먹으면 아내한테 져 줘야 한다.’는 말이 정말 실감나게 다가왔다. 부단히 노력 중이나 수양이 덜 된 탓인지 심사의 파고를 다잡을 수 없다.
나는 정리정돈에 숙련된 사람이다. 성격 탓도 있겠지만 군軍 생활부터 훈련되어 30년 넘는 직장생활, 금융인으로 다져진 직업 탓일 게다. 책상, 서재, 옷장, 내가 사용하고 생활하는 모든 공간은 청결과 깔끔한 상태로 가지런히 정리정돈이 되어 있어야 한다. 모든 물건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서적으로 불안하여 안절부절못하고 견디기 힘들다. 그렇다고 결벽증 환자는 아니다. 모든 사물은 제자리에 있을 때 정결하고 우아하며 아름답고 멋진 법이다.
제 아비를 닮지 않아 그런지 늘 어질러 놓기만 하고 정리정돈이 영 젬병인 딸아이가 있다. 타이르고 나무라도 헛일이다. 태생이 그런가 보아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그래 그런지 딸아이의 집에 가는 일이 있어도 방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대한민국이 인정하는 법정노인이 되었다. 아내도 일 년 뒤엔 경로우대자격증을 자동적으로 갖게 된다. 아내는 “피곤하게 이것저것 따져가며 살지 말고 대충대충 편하게 살며 늙어가자.”고 한다. 내 지적을 달갑지 않게 귀찮아하며 짜증스러워한다.
그럭저럭 대충대충 구렁이 담 넘어가듯 사는 것이 정말 옳은 걸까? 자문자답하나 슬기롭고 현명한 답은 아닌 것 같다. 절친한 동무는 황혼이혼 당하지 않으려면 눈 감고 모른 척하란다. 우스개 아닌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충고를 한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이방원의 <하여가何如歌>에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단심가丹心歌>로 대꾸한 포은 정몽주, 누가 과연 옳은지 모를 일이다. 우중층한 잿빛 하늘에 눈보라 흩날린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산새도 숨 죽인 적막한 산막에서 찌그락 짜그락대며 한겨울, 설한풍의 세월을 엮는다.
가정의 화목과 부부간의 평화를 위해 심각하게 고민하며 화려한 변절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