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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좋은수필 2014년 2월호, 이 작가를 주목한다 평론] 숙임과 만짐 - 정승윤

신아미디어 2015. 2. 2. 23:43

"내가 아는 작가 추선희는 스타일리스트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해 보자면 스타일을 감추고 있는 스타일리스트다. 무심한 듯한 이야기에 의외로 숨겨진 의도가 있다. 화려한 수사는 없지만 둔중하게 전해져 오는 게 있다. 음식으로 치자면 슬로우 푸드에 가깝다. 겉보기는 범박하지만 씹을수록 깊은 맛을 준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한두 편 읽을 때 보다는 두고두고 여러 편을 읽어나갈 때 더 깊은 이해와 감동이 온다."

 

 

 

 

 

 

 

 숙임과 만짐        /  정승윤

 

   인간은 필요와 상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한다. 인간만이 취하는 가장 특이한 자세 중의 하나가 아마도 발톱을 깎는 자세일 것이다. 더욱이 발꿈치를 다듬기 위하여 취하는 자세는 다소 기묘하게 보일 법도 하다. 작가 추선희가 이 야릇한 포즈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요가의 자세와는 다르고 명상의 자세는 더욱 아니다. 몸이 뻣뻣한 사람으로서는 힘겹고 버거운 동작일 뿐이다. 글의 구성은 매우 단순하다. 일요일 아침, 신문지를 펼쳐놓고 발톱을 깎고 발뒤꿈치를 다듬는다는 이야기다. 신변잡기치고도 싱거운 이야기다.
   책을 덮고 나니 글을 읽었다는 느낌보다는 발을 들여다보았다는 느낌이 강했다. 그만큼 자세하고 꼼꼼하게 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특별한 문학적 수사도 없었고 발이 주는 상징성도 명확하게 서술되어 있지 않았다. 이 글의 얼개는 대강 이렇다. 자신은 평소의 성격대로 발에 대해 무관심한 편이다. 그래서 항상 발뒤꿈치가 거칠었다. 그런데 딸이 각질 제거기를 선물한 것을 계기로 일요일 아침이면 발을 다듬는 습관이 생겼다. 이 이야기 끝에 작가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을 맺는다.

 

   - 일요일 아침 나는 삶의 한 평화롭고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몸을 숙이고 마음을 숙인다.

 

   무심코 발 이야기를 듣다가 느닷없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비약이라기보다는 전도顚倒에 가깝다. 작가는 손톱과 발톱을 대조해 가면서 발에 대해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킨 다음, 발톱 깎기와 발꿈치 다듬는 일을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한다. 우리의 시선을 바짝 발 앞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그런 다음 갑자기 줌 아웃하여 한 여인이 몸을 숙이고 경건한 의식을 치르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손이 우리의 의식을 표현한다면 발은 우리의 무의식에 속한다. 발은 우리의 감춰진 상처이며 억압된 내면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발을 보여줌으로써 우리의 내면을 응시하게 한 것이다. 어떤 문학적 여과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발을 보여주었고, 발톱 깎기와 발꿈치 다듬기로 그 발을 직접 만지고 주무르게 하였다.
   작가가 몸을 숙이고 마음을 숙인 건 겸허의 동작도 하심下心의 자세도 아니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그것은 자기애自己愛이며 자기연민이며 내면의 상처에 대한 자기 위무이다. 그녀는 짐짓 ‘평화롭게’ 딴전을 피우고 있지만 모든 수그린 동작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자아에 대해서 ‘한 경건한 의식’을 치르고 있는 것이다.
   ‘얼굴만 보며 지내는’ 우리들에게 그녀는 자신의 발을 보여주었다. 아니 우리 스스로의 발을 들여다보게 해주었다. 발에 최대한 가깝게 우리의 얼굴을 들이대는 것, 이것은 어떤 작위作爲의 의식보다도 더 인간적인 의식일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는 작가 추선희는 스타일리스트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해 보자면 스타일을 감추고 있는 스타일리스트다. 무심한 듯한 이야기에 의외로 숨겨진 의도가 있다. 화려한 수사는 없지만 둔중하게 전해져 오는 게 있다. 음식으로 치자면 슬로우 푸드에 가깝다. 겉보기는 범박하지만 씹을수록 깊은 맛을 준다. 그래서 그녀의 글은 한두 편 읽을 때 보다는 두고두고 여러 편을 읽어나갈 때 더 깊은 이해와 감동이 온다.
   이 글에 대한 나의 해석을 작가는 자신의 의도와는 빗나간 지나친 자의적 해석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러한 자의적 해석의 책임의 반은 작가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이번만큼은 그녀의 글에 대한 문학적 이해보다는 그녀가 보여준 발의 그림만으로 만족하겠다.

 

 

정승윤  ----------------------------------------------

   정승윤님은 수필가, 《에세이스트》로 등단. 2006년, 2008년 공무원 문예대전에서 수필과 시로 행자부장관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