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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좋은수필 2014년 2월호, 이 작가를 주목한다] 숙이는 일 - 추선희

신아미디어 2015. 1. 26. 17:14

"일주일 동안 위만 쳐다보고 타인의 얼굴만 보며 지내다 그제야 눈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두 곳을 바라보면서 제거하고 깎는다. 마음이 미치지 못했던 그곳에 손이 미치고서야 비로소 목욕을 끝낸 기분이 든다. 일주일이 흘러갔다는 느낌, 다시 일주일을 시작한다는 기분이 스멀스멀 든다. 살아 있어야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다. 일요일 아침 나는 삶의 한 평화롭고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몸을 숙이고 마음을 숙인다."

 

 

 

 

 

 

 숙이는 일        추선희

 

   일주일 중 내가 몸을 가장 깊게 숙이는 시간은 대개, 일요일 오전이다. 휴일 아침 목욕을 마친 나는 거실 유리창 바로 앞에 토요일자 신문 한 장을 펼쳐놓는다. 빛이 풍성한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신문지 위로 아직 물기가 스며 있는 발을 올려놓는다. 그런 다음 동그마니 몸을 숙인다. 최대한 숙여 얼굴을 발 가까이 갖다 댄다.
   나의 발뒤꿈치에는 내가 얼마나 맨발을 좋아하는지 나타나 있다. 한겨울에도 집에서는 좀체 양말을 신지 않고 까칠해도 무엇을 바르지 않는다. 무엇에 무엇을 덧대고 치장하고 감추는 것은 몸이건 마음이건 싫어하는 성질머리가 있다. 불쑥 튀어나오곤 하는 까칠한 성격도 발뒤꿈치와 닮은 듯하다. 이 까끌까끌한 발뒤꿈치에 딸은 자신의 보드라운 발을 대고 문지르는 걸 좋아한다. 제 발을 이불 속으로 들이밀어 내 발뒤꿈치를 찾아 슬슬 문지른다. 늙은 등에 아기 손바닥이 닿는 느낌과 비슷할까. 나도 싫지 않다. 하지만 이제 그러한 풍경을 잃었다. 딸이 각질 제거기 광고를 보더니 제 엄마 생각이 났는지 엄마 발뒤꿈치 생각이 났는지 하나 사주었다. 그 후 발뒤꿈치는 나답지 않게 매끈해지고 말았다.
   발뒤꿈치에는 죽은 피부가 일주일 사이 켜켜로 쌓여 있다. 그것은 새 살에 의해 내부에서 밀려나 제거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잠시 내 살이었던 희고 보드레한 것들이 타조 알 모양 기계에 의해 벗겨져 먼지처럼 쌓인다. 나는 고개를 한껏 숙여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어가며 정돈한다. 기계의 미세한 동력 소리와 폴폴 날리는 각질의 모습이 나란하다. 행여 부드러운 살갗에 닿을까 조심조심 집중한다. 세상 잡사는 나와 발뒤꿈치 사이에 낄 틈이 없다. 서로 열렬히 대면한다. 발뒤꿈치는 전경이 되고 다른 모든 것들은 배경으로 물러나 앉는다. 담담하게 온몸의 무게를 받아 험해졌던 그곳이 점점 원래의 모습을 찾아간다.
   또한, 발톱은 말없이 자라나 있다. 원래 크고 두꺼운 것은 말수가 적은지 모른다. 손톱은 조금만 길어도 불편하고 1mm만 찢어져도 거슬린다. 기타를 치는 나는 손톱에 민감하다. 현을 누르는 왼손 손톱은 치켜들어가 바짝 깎여져야 하고 현을 치거나 당기는 오른손 손톱은 적당한 길이로 길어 있어야 한다. 손톱이 얇은 나는 강화제를 바르기도 하고 무거운 것을 들 때 행여 부러질까 장갑을 끼기도 한다.
   하지만 발톱은 이러한 관심을 받지 못한다. 까탈을 부린 적도 없고 좀 길어도 지내는 데 지장이 없다. 발톱 전용 깎기가 있지만 언제나 손톱깎이로, 언제나 손톱을 깎은 후에야 차례가 돌아온다. 이런 마당에 페디큐어의 호사는 언감생심이다. 그것은 딱딱하니 발에 힘을 주어 씩씩하게 걷도록 잘 버텨주었다. 한 직립인간의 몸이 기우뚱거리지 않도록 일주일 동안 수고하였다. 그런데도 말썽을 부린 적 없으니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제쳐놓았다. 부모가 자신들의 마음을 잘 아는 맏이를 그냥 믿고 그래서 살갑게 대하지 않는 것과 비슷하리라.
   엄지발톱부터 시작하여 막내 발톱까지 일주일 만에 제대로 마주한다. 손톱깎이를 쥔 손에 조금 더 힘을 주고 살점에 묻히지 않게 직선으로 정돈하는 것이 관심의 전부이다. 그래서 발톱에게 마음 빚을 갚는 몸은 그것에게 절하는 자세를 취할 수밖에 없으리라. 그 사이의 무관심을 되새기며 손톱을 깎을 때보다 더 깊이 고개와 몸을 숙여 살핀다.
   일주일 동안 위만 쳐다보고 타인의 얼굴만 보며 지내다 그제야 눈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두 곳을 바라보면서 제거하고 깎는다. 마음이 미치지 못했던 그곳에 손이 미치고서야 비로소 목욕을 끝낸 기분이 든다. 일주일이 흘러갔다는 느낌, 다시 일주일을 시작한다는 기분이 스멀스멀 든다. 살아 있어야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다. 일요일 아침 나는 삶의 한 평화롭고 경건한 의식을 치르듯 몸을 숙이고 마음을 숙인다.

 

 

추선희  --------------------------------------

   추선희님은 수필가. 번역가. 《현대수필》로 등단, 수필집 《명함》, 번역서 《처음 만나는 명상레슨》, 《쉬는 마음》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