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계간문예 2014년 봄호, 수필] 의자 - 지홍석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고 한다. 수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대로 쓰지도 묘사하지도 못하면서 미련을 가지고 애써 수필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래저래 오늘은 참으로 심란한 하루가 될 것만 같다."
의자 / 지홍석
의자의 격이 떨어진다. 조립을 끝내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하다. 그렇다고 반품할 수도 없는 일이다. 처음부터 좀 더 꼼꼼히 살펴보고 주문을 했어야 했다. 사무실의 다른 의자를 모델삼아 금액을 더 줬는데도, 색상과 디자인은 물론 플라스틱의 재질과 강도, 의자가 뒤로 젖혀지는 스프링의 탄력까지 떨어진다. 거기다가 배달되기까지의 과정까지 더해져 이래저래 마음이 상한다.
언제부터인지 늘 가슴이 답답했다. 트림이 자주 나오고 소화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최근엔 어깨가 뻐근하고 온몸이 뒤틀렸다. 허리까지 아파오자 더 이상 참기가 어려워 원인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다 사무실용 의자가 상당히 오래되어 바꿀 때가 다 되었다는 알게 되었다. 의자를 구입한 지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데 의자라고 그 기능이 처음 그대로일 리는 없다.
의자를 바꾸기로 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을 시작했다. 하루 8시간이상 의자에 앉아 업무를 보다보니 몸이 경직될 때가 많다. 가끔씩은 앉은 상태에서 몸을 뒤쪽으로 젖혀 기지개라도 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무실에 일하는 다른 사람의 의자를 몇 번 앉아보았더니 무척이나 편했던 것 같아 모델로 삼았다.
비슷한 모양이라고 가격이 같은 건 아니었다. 회사와 메이커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작게는 몇 천 원에서 다섯 배 이상의 차이가 나기도 했다. 마음에 드는 의자를 주문하고 3개월 무이자로 카드결제를 했다. 가격은 6만 원 중반, 배송기간이 3일정도 걸린다고 했다. 결제한 지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출고해 발송되었다고 문자로 통보해준다. 요즘은 모든 게 빠르고 편리하다. 금방 점심시간이 지났는지라 빠르면 내일 정도에 받아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산간벽지가 아닌 광역시라 충분히 가능할 것도 같았다.
이튿날 출근을 해 의자를 기다렸다. 컴퓨터 화면으로 본 모양보다 더 좋을지, 조립을 어떻게 해야 할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언제까지 택배가 되겠다는 연락이 없다. 그러나 오후에는 도착이 되지 않을까, 내가 선택할 정도의 안목이라면 주문이 밀렸을 수도 있지 않는가. 온갖 생각이 머리에 스치고 지나가는 사이 오후 다섯 시가 훌쩍 넘어 버렸다.
“띵 똥!”
메시지 도착 신호음이 들린다. 낯선 전화번호라 얼른 휴대폰을 확인해보니 의자판매업체에서 보낸 문자다.
“ㅇㅇ의자입니다. 신학기철 주문량 급증으로 인해 배송이 다소 늦어지고 있습니다. 내일과 모레는 공휴일로 인해 월요일에 도착이 될 예정입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죄송합니다. 편안한 주말 되세요 ^&^”
조금은 허탈했지만 어쩌겠는가. 주문이 많다는 건 그만큼 좋은 제품일터 월요일까지 기다리는 게 뭐 대수일까?
월요일이 되었다. 그저께 조금 긴 등산을 했던지라 조금 늦게 출근하고 싶었지만 일찍 나왔다. 혹시 의자가 오전 일찍 배달이 될 수도 있어서다. 그런데 오후 세 시가 넘었는데도 택배차량은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드디어 진득하지 못한 성격이 한계를 넘어버려 성정性情에 불이 붙고 말았다.
“아니,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그렇게 넓었나요. 목요일에 배송을 했다는 물건이 5일이나 되는데도 배달이 되지 않았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죄송합니다. 신학기철이라 배송이 밀려서…….”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금요일에 문자 보내면서 토요일과 일요일은 공휴일이라 안 되고 월요일날 받아 보실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럼 보내지도 않은 물건을 보냈다고 거짓말한 겁니까?”
“택배회사에 연락하고 체크해서 내일은 무조건 오전에 배달하라고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의자 하나 받는 데 일주일이나 걸린다면 누가 의자를 주문하겠습니까. 전화 끊읍시다.”
의자를 주문한 지 6일째 되는 화요일이다. 오늘도 배달이 되지 않는다면 취소하리라 마음먹고 기다렸지만 점심시간이 지났는데도 함흥차사다.
“의자가 아직도 안 왔는데 어찌된 일이죠? 그리고 먼저 연락을 주면 안 되나요. 꼭 손님이 답답해서 돈 들여가면서 전화를 해야만 됩니까.”
한 번 더 확인해 보고 전화를 주겠다는 확답을 받고 전화를 끊었지만 마음이 영 불편했다. 그 후 30분이 흐른 후 전화 대신에 주문한 의자가 먼저 배달되었다.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고 했지만 배달된 의자는 실망만 두 번이나 준 셈이다. 그렇다고 이제와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선택도 주문도 내가 했으니 그것은 고스란히 내가 짊어져야 할 몫이다. 좀 더 진중하게 색상을 체크하고 구성 품을 살폈더라면 이런 결과를 초래하진 않았을 것이다. 속상하고 후회스런 마음에 의자에다 몸을 기대고 눈을 감고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본다.
순간 이번에 의자를 주문하고 조립한 과정이 수필쓰기와 무척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완성된 의자를 한 편의 수필작품으로 본다면 주문을 하고 배달이 되고 조립하기까지의 과정이 수필의 스토리가 되고, 의자를 구성하는 원재료와 부품들이 낱말과 문장, 단락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의자의 디자인과 색상은 문장을 돋보이게 만드는 묘사가 되는 것이 아닐까.
처음 주문할 때 분명히 모니터 화면 속의 의자는 좋아 보였다. 그러나 막상 주문되어 온 의자를 조립하고 꾸며 놓았을 때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수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스토리가 좋고 외형적으로 좋은 작품이 될 것 같아도 제대로 쓰고 꾸미고 구성하지 못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못한 작품이 되고 마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무엇 하나 쉬운 게 없다고 한다. 수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대로 쓰지도 묘사하지도 못하면서 미련을 가지고 애써 수필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래저래 오늘은 참으로 심란한 하루가 될 것만 같다.
지 홍 석 --------------------------------------------
《월간문학세계》 <구주산에서 본 일본>으로 등단(2008년 4월). 《수필과 비평》에 <쥐다래나무> 신인상으로 재 등단(2010년 7·8월). 2010년· 2011년 산림문화공모전 입선과 동상. 구미수필 동인, 영호남수필문학회 사무국장(전), 대구문인협회, 수필과비평 작가회의,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매일신문 “산사랑 산사람”에 글과 사진을 5년째 연재중(2010. 1~2014 현재), 수필집 : 《도마 위의 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