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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 문예연구 2014년 봄호, 신작시] 나나니벌 외1편 - 강영환

신아미디어 2015. 1. 17. 13:55

계간 『문예연구』에서 강영환님의 신작시 2편을 소개합니다.

 

 

 

 

 

 

 나나니벌 외1편        /  강영환

 

방충망에 나나니벌이 붙어 있다
나가려는 것인지 들어오려는 것인지
움직일 기미가 도무지 없다
누가 들여보냈을까 투명한 날개는
완강한 방충망을 뚫지 못한다
안이냐 바깥이냐 그건 문제 아니다
그에게 안과 밖은 중요하지 않다
그는 지금 경계 위에 서 있으므로
이쪽과 저쪽 혹은 삶과 죽음이라든가
그것을 재보는 건 안에 있는 나다

 

경계는 허물어지지 않는다 단지
날고 싶은 벌이 있을 뿐이다
나냐 나나니냐 그건 문제 아니다
또 다른 경계 밖에서 파리 한 마리가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같은 경계 위를
서성거리고 있는 몸을 나나니벌과 함께
내가 보고 있다 바라보는 건 경계일 뿐
나나니벌도 어둠도 파리도 아니다 결국
경계 위에 선 내 눈을 뽑아낸다

 

 

 

고양이똥

 

길고양이가 잔디밭에 똥을 누고 갔다
검은 똥 위에 앉은 모시나비 한 마리가
날개를 접었다 폈다 하며 먹고 있다
험악한 짐승이 다가서도 떠날 줄 몰랐다
지렁이가 굵은 몸을 풀 아래 누이고
검은 고양이똥을 노리다 들켰는지
똥 속에 머리를 반쯤 파묻고 울었다

 

비 그친 산록에 피어난 안개가
된똥을 감추기 위해 술렁거리며
빈 마을에 내려서고 있을 즈음
나비가 먹고 남긴 똥막대기는
작은 벌레들이 다 들고 가서
모래알 부스러기로 남은 등껍데기만
길고양이 발자국을 지우고 있다

 

 

 

강영환  -----------------------------------------
   경남 산청 출생. 1977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등단. 79년 『현대문학』시 천료, 시집으로 『칼잠』,『푸른 짝사랑에 들다』,『울 밖 낮은 기침소리』,『공중의 꽃』외. 「얼토」 회원. 부산작가상, 이주홍문학상, 부산시문화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