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간 계간문예 2014년 봄호, 수필] 민꺼풀 - 이순종
"어떤 작가는 정형성의 일탈이야말로 글의 미학이라 하였는데, 아름다움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아름다움은 반듯하고, 틀에 짜인 모양보다 약간 정형에서 벗어나는 것, 일테면 백옥 같은 콧등에 나비인 양 살포시 내려앉은 깨알만 한 까만 점이 더 고혹적이고 더 애간장을 녹이지 않나 싶다. 희한한 것은, 코 점이 있는 유명연예인을 보며 그런 일탈마저도 따라 하는 ‘점 박기’ 성형을 한다 하니 인생은 참 요지경 속이다. 그러니 훗날에 민꺼풀이 대세가 될지 또 어찌 알겠는가. 요는, 이즘 사람들이 ‘따라쟁이’처럼 유행병을 심하게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민꺼풀 / 이순종
요새는 자기 피알(PR)시대이다.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소셜네트워크(SNS)나 블로그,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 매일매일 자신의 일상을 사진으로 알리기에 주저함이 없다.
우리 가족도 예외가 아니다. ‘카톡’ 사진이 며칠 사이로 바뀌는 게 예사다. 어느 날인가 아내가 가족사진을 올려놓았기에 가만 들여다보았더니, 다섯 식구의 얼굴이 모두 닮았다. 특히 아내와 세 아이의 눈매가 불행인지 다행인지 여지없이 똑 닮았다.
유전자의 힘, 아내는 애당초 쌍꺼풀이 없다. 아내 눈꺼풀은 그야말로 가을에 밤송이가 저절로 벌어지듯 그냥 생긴 대로 생겼다. 그나마 우리 집에서 유일하게 쌍꺼풀이 있는 나로서는 간혹 으쓱해서 자만하곤 하는데, 아내는 그때마다 하는 말이,
“그렇게 생기다 말 쌍꺼풀이면 없는 게 나아요.”
취객이 오줌싸놓은 것처럼 제멋대로 생기다 만 쌍꺼풀 따위를 어디에 대냐고 툴툴거린다.
‘그래도 이왕지사 한 놈이라도 나를 닮았더라면 시대 흐름에 부응하고 퍽이나 좋았을까?’ 속으로 웅얼거리지만 차마 말을 내뱉지 못한다.
우리나라는 누가 뭐래도 성형천국이다. 요새 아이들은 중고등학교 때부터 난리다. 방학 때를 이용하여 소위 ‘원정 성형’이 커리큘럼의 한 부분처럼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태다. 지인의 딸도 얼마 전에 남도 어디엔가 유명한 성형외과에서 쌍꺼풀을 하고 왔단다. 딸애가 아르바이트해서 돈을 저축하고, 일부는 부모가 대주어서 다녀왔다는 것이다. 시술이 잘되어 딸이 매우 흡족해하더라는 말과 함께 쌍꺼풀은 수술도 아니라나 뭐라나. 그러면서 근래에는 소위 턱을 깎아대는 ‘양악수술’이 대세란다.
한 유명연예인이 양악수술을 성공하여 널리 회자되면서 갸름한 턱을 갈망하는 여자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 수술이라는 게 턱뼈를 자르거나 붙이고 더러는 대패로 나무 깎듯이 깎아 내는 수술이라고 하니, 콧대를 세우고, 눈매를 고치고 하는 수술 정도야 아예 수술 축에 끼지도 못한다. 생각하기도 끔찍하건만 아름다움을 향한 여인들의 본능이라니 뭐 딱히 할 말이 없다.
아이들이 사춘기여서인지 부쩍 거울 들여다보는 시간이 많고 조목조목 외모에 신경 쓰는 만큼이나 내 마음 또한 묵직하다. 더욱이 딸아이가 두 명이나 되는 나는 은근 걱정이다. 나중에 커서 원하는 외모를 갖지 못할 때 공연히 아빠의 벌이로 불똥이 튀지나 않을까 하는 노파심에서 말이다.
사실 성형은 혐오스럽거나 보기에 덜 좋은 부위를 교정하거나 제거하기 위해 시술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미디어시대이다 보니 스크린에 나온 연예인의 모습이 누구나의 연인으로 모델링 돼버린다. 그 연예인에 닮아가는 것이 미인이고 미남이라 인정되는 세상이다. 개성상실의 시대이다. 길에서 만나는 여인들을 보면 공장에서 찍어내는 판박이가 따로 없다. 솔직히 텔레비전에 나오는 그룹 소녀가수들 얼굴이 다 똑같아서 나는 당최 누가 누군지 구분할 수가 없다.
나도 딱 한 번 성형을 한 적이 있다. 미간에 콩알만 한 크기의 흉한 점을 근 사십 년 정도 달고 다녔다. 눈 위에 있는 점은 복점이라 하여 없애지 않는 것이 좋다는 어른들의 말도 한몫 하였다. 양미간에 사마귀처럼 툭 튀어나와 보기에 혐오스럽고 세수할 때마다 걸리적거려서 영 불편했는데에도 그러려니 하며 살았다. 속설대로 눈 위에 점을 자칫 잘못 건드려서 불행한 일이 찾아들까 하는 염려와 신체발부 운운하는 유교적 관념에 감히 거역하지 못한 소심한 성격 탓에 그냥 불편을 감수하고 살았다. 그러던 차에 역설적으로 내가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 마음을 바꾸어 먹었다.
‘내 지금 환경에서 더는 나빠질 상황이 없다. 오히려 얼굴을 바꾸어서라도 인생을 바꾸어보자.’라고 마음을 고쳐먹자마자 행여 누가 말릴세라 후다닥 해치워 버렸다.
혐오스럽게 달고 다녔던 점을 십여 분의 단 한 번 짧은 레이저 시술로 제거하기까지 사십 년이 걸렸다. 나는 대만족하였다. 그리고 점으로 인한 더 이상의 악운도 행운도 찾아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성형에 조금 관대한 편이다. 성형은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능동적 행위가 아닌가 싶은 것이다. 혐오스럽고, 미운 부분을 예쁘게 해준다는데 왜 말려야 하는가 말이다.
가인佳人의 사회적 기준이 편향된 이상 쌍꺼풀은 정상이고, 민꺼풀은 결핍이다. 그럼에도 나는 쌍꺼풀보다 민꺼풀이 더 좋다. 똑 닮은 사람들의 획일적인 유형이 마치 틀 속에 넣어 억지로 만든 ‘네모수박, 세모수박’처럼 인공의 냄새가 나서 금세 진력나게 한다. 지나친 성형문화에 따른 미의 획일성, 인공으로 가공하여 모두 닮은꼴을 지향하는 개성상실 시대가 아쉽다. 내가 민꺼풀에 더 정감을 갖는 이유가 아내의 선한 민꺼풀 눈매가 더 살갑게 느껴져서 그러하지 않나 싶다. 비록 세련돼 보이지는 않아도 민꺼풀의 수수함과 순한 마음이 그대로 투영되어 좋다.
어떤 작가는 정형성의 일탈이야말로 글의 미학이라 하였는데, 아름다움도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아름다움은 반듯하고, 틀에 짜인 모양보다 약간 정형에서 벗어나는 것, 일테면 백옥 같은 콧등에 나비인 양 살포시 내려앉은 깨알만 한 까만 점이 더 고혹적이고 더 애간장을 녹이지 않나 싶다. 희한한 것은, 코 점이 있는 유명연예인을 보며 그런 일탈마저도 따라 하는 ‘점 박기’ 성형을 한다 하니 인생은 참 요지경 속이다. 그러니 훗날에 민꺼풀이 대세가 될지 또 어찌 알겠는가. 요는, 이즘 사람들이 ‘따라쟁이’처럼 유행병을 심하게 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순 종 ----------------------------------------
≪수필과비평≫ 등단. 명언에세이 : ≪내 마음속 99개 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