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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수필과비평 2014년 2월호, 테마수필: 여성 이야기] 다시 여성으로 - 김재희

신아미디어 2015. 1. 12. 17:19

"다른 사람에게는 내가 여성임을 거부할 수 있어도 자식에게는 절대적으로 어미임을 거부할 수 없는 일이다. 천륜의 굴레 중에 어미 자리에 속하는 천륜이라는 사실 앞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여자가 천시받는 시대에 태어났을망정 모성애를 품을 수 있는 여성으로 태어났음을 섧게 생각하지 않으며 다시 태어나도 나는 여성으로 살고 싶다."

 

 

 

 

 

 

 다시 여성으로       김재희

   여자라는 이유로 서럽게 기억되는 일들이 많다. 많은 부분이 큰딸이라는 사실 때문에 있었던 일들이다. 순서로 따지자면 위에 오빠 한 분이 있었으니 둘째이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그 순서는 나와 무관했다.
   오빠를 위해서는 양보해야 한다면 동생들을 때문에는 양보당해야 했다. 집안 청소며 설거지는 다 내 몫이었고 동생들과 다투기라도 하는 날이면 언제나 내가 대표로 야단을 맞아야 했다. 또한 내리 다섯이나 되는 동생들을 다 업어 키워야 했다.
   지금껏 살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학교 문제이다. 오빠와 나는 3살 터울이라서 학교 진급을 같이 하게 되었다. 오빠가 대학을 갈 때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을 하는 때였다. 이름 있는 여고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아들인 오빠를 서울로 보내기 위한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나를 지방 학교에 장학생으로 주저앉히셨다. 무척 아쉬웠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을 가면 될 것이라고 위안을 삼았다. 그러나 건강이 문제가 되어서 꿈을 이루지 못하였고 그것이 마지막 학력이 되고 말았다.
   내가 딸이 아닌 아들이었어도 그랬을까. 물론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시대를 잘 못 타고 난 불운인 것을. 그래도 스스로 자신의 길을 개척해 나갈 수 있었다면 좋았으련만 무슨 까닭인지 늘 병치레만 하느라고 그런 일마저도 쉽지가 않았다.
   때때로 여자인 것이 무척 싫기도 했다. 친정 집 울타리에서 벗어나 한 가정을 이루고서도 남녀의 차등에 대해 숱한 불만을 느끼며 살았다. 그렇다고 내게 특별히 내세울 만한 능력이 없는 현실이었기에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생활이었다.
   주위에는 잘난 여자들도 많았다. 그들이 누리는 세상 속은 참으로 빛나 보였다. 그만한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고난과 역경은 언제나 뒷전이었고 빛나 보이는 앞면만 부러웠다. 그들에게 숨겨진 고통이 영광보다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도 그저 부러울 뿐이었다. 그런 반면 나에게 절실한 것은 언제나 건강이었다. 내 몸이 편해야 가정이 편하고 가족이 편안했다. 그제야 나는 가정주부가 가장 우선으로 꼽아야 하는 것은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에 이르게 되었다. 모든 것을 버리기로 했다. 그저 단순한 여성으로 살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야속하기도 했다.
   그런 중에서도 내가 여성이기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면 바로 모성애의 본성 때문이었을 것이다. 임신했을 때의 설렘, 태동을 느낄 때의 감동, 아기를 품고 젖을 먹일 때의 흐뭇함, 한두 가지씩 달라져 가는 모습과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즐거움 등등은 그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단어 중에 어머니처럼 포근하고 정 깊은 단어가 있던가. 먼 옛날 사진 속 어머니들이 아무리 후줄근하고 못나 보여도 치마 끈 붙들고 어리광 부리는 어린애 앞에서는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존재였다. 나 또한 남 앞에서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일지언정 어린 자식들 앞에서만큼은 귀한 존재였다. 그 순간들의 감정을 겪어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사는 보람을 느낄 수 있었고 여성으로서의 존재성을 실감할 수 있었다.
   태아의 세포가 엄마의 세포와 연결되어 함께 지냈기에 자식의 모든 것을 대신 할 수 있다는 모성애. 그런 영원불변의 사랑은 여자에게서는 불가능해도 어머니라서 가능하다는 것 아니던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주면서도 받는 것에는 손사래 치는 마음이야 말로 우리 어머니들의 진정한 마음인 것이다.
   그것이 어디 사람에게만 있는 일이랴. 숱한 동물들의 세계에서도 빼 놓을 수 없는 일이다. TV에서 본 사자 한 마리에게 깊은 감동을 받은 적이 있었다. 동물들은 배가 고플 때에만 먹이를 찾는다.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잡은 먹잇감이 아직 양수막도 걷히지 않은 갓 태어난 새끼라는 걸 알고는 그 앞에서 어미의 본능이 살아나는 것이다. 한입에 물고 가려다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그 새끼를 핥아주고 다른 동물들이 가까이 오면 으르릉거리면서 지켜주고 있었다. 새끼는 영문도 모르고 보호를 받고 있다가 찾아 온 제 어미에게 돌아갔다. 그제야 유유히 그 자리를 떠나는 사자의 숭고한 행동에 그만 눈물이 나왔다. 배고픔을 참아가며 제 자식인 양 지켜주다가 어미 품에 돌려보내고 떠나는 사자의 뒷모습이 그렇게 성스러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암컷만이 누릴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감정이리라. 어찌 신이 주신 그 특권을 거부하거나 가볍게 여기리오.
   다른 사람에게는 내가 여성임을 거부할 수 있어도 자식에게는 절대적으로 어미임을 거부할 수 없는 일이다. 천륜의 굴레 중에 어미 자리에 속하는 천륜이라는 사실 앞에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여자가 천시받는 시대에 태어났을망정 모성애를 품을 수 있는 여성으로 태어났음을 섧게 생각하지 않으며 다시 태어나도 나는 여성으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