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좋은수필/좋은수필 본문

[월간 좋은수필 2014년 1월호, 신작수필 16인선] 능안길의 시계 - 박성실

신아미디어 2014. 12. 19. 11:46

"나는 그 시계의 엄청난 규모와 아름다운 조형미를 감상하면서 갑작스레 밀려오는 감동으로 눈을 뗄 수 없었다. 목발 형상의 시침과 분침, 그리고 지팡이 형상의 초침. 그것은 캐나다의 사회복지제도에서 1순위는 언제나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기 위해 설치된 것이라고 했다. 순간, 꽃시계 속에서 혜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삶이 이국 땅 어디에선가 아름답게 피어 있을 거라는 반가운 생각과 함께 헤어진 옛 친구에 대한 그리움까지 솟구쳤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능안길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능안길의 시계        박성실

 

   산책을 하다 비탈길을 오를 때면 오래전에 잠시 머물렀던 능안길이 생각난다. 그곳은 비탈지고 구불구불 골목도 많았다. 대학교에 입학하여 1년 동안 한 시간 반씩이나 걸리는 거리를 통학하다 봄 학기를 앞두고 학교 부근에 방을 얻어 자취하게 되었다. 처음 만나 인사를 드리던 주인아저씨의 이마엔 숨가쁘게 오르던 능안길의 골목처럼 깊은 주름이 새겨져 있었다. 낡은 기와집 안채에 잇대어 지은 허름한 구멍가게로 생계를 꾸리는 것 같았다.
   네댓 평 됨직한 안마당, 툇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석유풍로에 밥을 지을 때면 주인댁 두 딸도 바삐 오가며 부산을 떨었다. 부엌이 없는 자취생의 초라한 살림살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상황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 것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처마 밑 기둥에 걸린 괘종시계 소리는 안채와 바깥채까지 울려 퍼지며 수시로 시각을 일깨워 주곤 했다.
   매일 오르내리는 북아현동 골목길 담벼락이나 전봇대엔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란 구호가 적힌 포스터가 어지럽게 붙어 있었다. 차츰 어수선한 골목에도 익숙해지고 봄 햇살도 따스함을 더해갔다. 어느 날 오후, 녹슨 철 대문을 열고 마당에 들어선 내게 낯선 이가 살며시 웃으며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이제 오니? 나, 혜자라고 해.”
   그녀는 해가 잘 드는 마당으로 난 건넌방 문을 열고 앉아 있었다. 짧은 파마머리에 하얀 피부, 신비로운 빛이 감도는 눈동자…. 한 달여 만에야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것도 놀라운 일이었지만, 잉그리드 버그만을 쏙 빼닮은 그 얼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날부터 내가 일찍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방문을 빼꼼히 열고 몇 마디씩 얘기를 나누었다. 작은 얼굴에 비해 어깨가 유난히 넓어 보였다. 며칠 후 댓돌 옆에 놓인 목발을 보고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의 모습이 못마땅하다는 듯 헛기침을 하며 지나쳤고, 아주머니는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말없이 딸내미 방문을 닫아주곤 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무심한 시계 소리만 째깍거리며 안마당을 가득 채웠다.
   내가 거처하던 방의 문은 창호지 바른 미닫이였기에 늦은 밤까지 책을 보는 날엔 으레 아저씨의 걱정 어린 소리가 마당을 건너오곤 했다.
   “아, 전기세 많이 나오겠네!”
   궁리 끝에 창문과 방문에 두꺼운 담요를 둘러치기도 했다. 그러나 연탄불을 꺼트리는 날엔 말없이 탄불을 주시는 아주머니를 보며 시린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안채는 언제나 인기척을 느낄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 그녀는 동갑내기가 바깥세상에서 물어오는 이야기를 들으며 무척 재미있다고 했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과 남학생들 얘기를 해줄 때면 두 눈이 더욱 반짝거렸다. 마주치는 날이 잦아질수록 내 귀가 시간을 더욱 기다리는 눈치였다. 학교생활이 분주해지면서 안마당 툇마루에 걸터앉아 나누는 잠깐의 시간도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대문을 열기 전부터 그 눈길이 의식되기도 했다. 미안한 마음에 중간고사를 마친 후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광화문의 한 극장에서 만난 〈전쟁과 평화〉의 오드리 헵번. ‘나타샤 왈츠’에 맞춰 춤추는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우리는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날은 다방으로 가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었고, 혜자의 눈빛은 그때까지도 꿈에서 깨어나지 못한 듯했다.
   종갓집 맏며느리인 아주머니는 딸만 넷을 두었는데, 넷째는 사내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끝내 남동생을 보지 못했다고 했다. 셋째인 혜자는 어릴 때 소아마비를 앓아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고, 두 번의 큰 수술 끝에 비로소 목발을 짚고 설 수 있었다고 했다. 능안길 아래에 있는 여고를 졸업하기까지 두 분의 등에 업혀 다녔다던 혜자. 그녀의 몸무게에 비례했을 삶의 무게를 등에 얹고 비탈길을 오르내렸던 주인집 부부의 모습에서 짙게 주름진 아저씨의 얼굴과 멈추지 않고 깜빡거리는 아주머니의 눈이 떠올랐다. 목발에 의지한다고 해도 다른 이의 도움 없이 문밖에 나갈 수 없는 자신에겐 그날의 외출이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라며 수줍게 말했다. 집에 돌아온 후 혜자 아버지의 꾸지람을 들어야 했지만, 맑고 진솔한 느낌으로 다가온 그녀에게 더욱 마음이 쓰이기 시작했다.
   혜자를 데리고 음악다방 구경도 시켜주며 다시 얘기할 기회가 있었다. 큰언니가 결혼 후 캐나다에 이민을 갔는데 서울에 있는 가족을 초청해 곧 그곳으로 간다고 했다. 자신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낯선 외국에 가서 살 생각을 하면 몹시 불안하다면서 우울한 모습까지 보였다. 겨울방학이 시작되면서 집에 가기 위해 짐을 챙겨 나오던 날, 눈시울이 붉어진 혜자를 뒤로하고 돌아서는데 시계 소리도 멈춰버린 듯 안마당엔 적막감이 감돌았다. 그 후 두어 번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이내 소식이 끊겼다.
   얼마 전, 가족과 함께 미국 동부지역을 여행하던 중에 캐나다의 나이아가라 폭포까지 가게 되었다. 근처에 있는 공원에 들러 매년 여름이면 이만 송이의 꽃으로 장식한다는 꽃시계를 보며 모두 환성을 질렀다. 꽃처럼 활짝 핀 표정으로 인증사진도 찍었다. 나는 그 시계의 엄청난 규모와 아름다운 조형미를 감상하면서 갑작스레 밀려오는 감동으로 눈을 뗄 수 없었다. 목발 형상의 시침과 분침, 그리고 지팡이 형상의 초침. 그것은 캐나다의 사회복지제도에서 1순위는 언제나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각인시키기 위해 설치된 것이라고 했다. 순간, 꽃시계 속에서 혜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녀의 삶이 이국 땅 어디에선가 아름답게 피어 있을 거라는 반가운 생각과 함께 헤어진 옛 친구에 대한 그리움까지 솟구쳤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다. 능안길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는 것을.

 

 

박성실  --------------------------------------------------

   박성실님은 수필가. 《좋은수필》로 등단.